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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Jun 01. 2023

[머문 자리] 아카시아 향, 너 때문이야!





앞산에 핀 아카시아 향이 잔두리를 집어삼켰다. 5월만 되면 앞산에 아카시 나무는 하얗게 핀  꽃향기를 어쩌지 못하고 온 동네로 뿜어냈다. 모내기철이라 바쁜 어른들은 진한 아카시아 향에도 아랑곳없이 분주하게 들녘으로 움직였다. 식이가 새참 막걸리 주전자를 들어다 주고 마루 끝에 막 걸 터 앉는데  향숙이가 왔다.


“식아, 너 뭐 해?”

“어, 그냥.”

 “우리 아카시아 파마하러 가자.”


아카시아꽃이 필 즘이면 식이와 향숙이는 야트막한 앞산을 자주 올랐다. 식이네 집에서 보이는 앞산은 그리 크지 않은 낮은 산이다. 앞에는 병풍처럼 낙엽송이 큰 키를 자랑하며 죽죽 뻗어 있고, 산 가장자리로는 아카시아 나무와 꿀밤나무 등이 있었다.


향숙이는 식이의 대답을 미처 듣기도 전에  벌써 앞산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식이는 ‘치, 누가 달리기 선수 아니라고 할까 봐. 빨리도 뛰어가네.’ 생각하며 향숙이를 불렀다.


“야, 같이 가.”


 향숙이가 뒤를 힐끗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카시아 나무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식이와 향숙이는 바튼 숨을 헐떡이며 뛰어갔다.  온 동네를 취하게 하는 진한 향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온다. 식이보다 키가 큰 향숙이는 아카시아꽃을 따 식이한테 내밀었다. 그러고는 향숙이도 꽃줄기를 하나 들고 아카시아꽃을 따 입속으로 넣었다. 꽃을 따 씹으니 향기와 함께 달짝지근한 꽃물이 입안에 돈다. 둘은 아예 풀 위에 철퍼덕 앉아 꽃을 따 먹었다.


“꽃 실컷 따 먹었으니 이제 우리 파마해 볼까? 니 먼저 해 줄게.”


 향숙이는 윗옷 주머니에서 참빗을 꺼냈다.


“빗은 언제 들고 왔냐?”

“헤헤  집에서 미리 준비해서 왔지. 자, 내 앞에 앉아봐.”


 식이는 향숙이 앞에 앉아 얌전히 머리를 맡겼다.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는 향숙이의 폼이 꼭 미용사 같았다. 식이는 잎을 다 떼 낸 아카시아 줄기를 향숙이에게 건넸다. 향숙이는 미용사라도 된 양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잡고 아카시아 줄기로 또르르 말아 올렸다. 식이는 동글동글 말아 올린 머리카락이 엄마 파마처럼 뽀글뽀글 잘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식이가 향숙이 머리를 또르르 말아 올렸다.  식이와 향숙이는 그렇게 아카시아 파마를 했다, 아카시아 향에 취해.



아카시아꽃이 한창일 때면 친구가 유난히 더 보고 싶다. 바람에 실려 온 아카시아 향 때문이리.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방인이 되어 구름을 벗 삼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을까. 신발은 신고 다닐까. 한 여름에 더운 줄 모르고 코트를 입고 다니는 건 아닌지. 어느 하늘 아래 자리하고 별을 보고 달을 쳐다보고 있을까.


숙아,


아카시아꽃은 이미 모두 지고 없단다. 그럼에도 오늘은 네가 참으로 그립구나. 네 이름 부르며 철없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어. 6월이다. 정처 없이 길 위를 걷고 있을지, 푸른 하늘 어느 별이 되어 있을지. 네 소식은 전혀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하나, 넌 내 친구였다. 세상 둘도 없는 친구! 바람 냄새가 난다, 네 냄새를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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