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라이트(Moonlight), 정체성을 이뤄내는 가시밭길 성장일기
제 속에 뿌리내려 저와 공명하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하나하나 꺼내보는 공간입니다. 추상적 평론은 어차피 잘 못해서 구체적 감상을 지향하느라 영화 대사나 흐름이 많이 공개돼 있어요! 스포일러 주의!!
글 말미에 스포 없는 짤막한 감상평이 있어요 :)
문라이트(Moonlight), 2016
감독, 극본: 베리 젠킨스(Berry Jenkins)
원작: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터렐 앨빈 맥크레이니(Tarell Alvin McCraney)
밤의 시골길을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도시의 어둠은 일말의 빛이라도 품지만 그곳은 단 한 줌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허나 딱 하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 어둠을 밀어내는 존재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달빛이다. 보름을 향해 달이 찰수록 어둠은 더욱 기세를 펴지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빛은 하얗지 않고 푸르스름하다. 푸른 빛으로 각성한 전사들이 어둠의 무리를 몰아내는 영화 같은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달은 쳐다보면 사실 하얗고 달빛도 그러할 텐데, 이상하게도 빛이 차오를수록 푸르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영화, <문라이트>는 달빛의 푸르름 아래, 존재와 정체성을 놓고 자신의 마음속 어둠을 비추고 솔직해지려는 한 흑인의 성장통을 시리도록 아프게 그려낸다.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시간적으로 유년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이 된 후이다. 각 부분에는 소제목이 붙는데 유년기는 주인공 샤이론의 별명이었던 'Little', 청소년기는 본명 'Chiron', 그리고 성인 이후에는 뒤에서 설명할 별명 'Black'이다. 세 시기를 꿰뚫는 테마가 있다면 바로 정체성이다. 다만 그 자체로 한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는 흑인으로서의 인종 정체성은 이 영화에서는 자리를 내준다. 흑인이라는 소수자성에 겹쳐진 또 하나의 소수자성, 바로 동성애라는 성정체성에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특수한 영역의 정체성이 주제가 아니다. 그저 한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그 정체성으로 인해 고민하고 아파하며 겪는 시린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샤이론은 어렸을 때부터 괴롭힘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호모 새끼'라고 부르며 샤이론을 못 살게 군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에게 쫓겨 도망치던 샤이론은 판자로 막힌 어느 빈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몸을 피한다. 숨어 있던 와중, 한 남성이 노크를 하더니 판자를 뜯고 들어온다. 여기서 뭘 하냐고 묻던 그는 답을 듣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뭐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상냥하게 덧붙인다. 샤이론은 잔뜩 움츠린 채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이내 그를 따라나선다.
그의 이름은 후안. 여자친구인 테레사와 함께 살고 있고 샤이론을 발견했던 그 구역에서 마약 판매를 총괄하는 일을 한다. 무엇보다 그는 어린 시절 샤이론의 멘토가 된다. 샤이론은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지만 엄마를 싫어하고 또래는 자신을 괴롭혀 의지할 곳이 없다. 괴롭힘을 당할 때 만나 자신을 이끌어 준 후안에게 어린 샤이론은 무뚝뚝하게나마 의지한다.
엄마가 있는 집에 머무르기 싫어 후안을 찾아간 샤이론은 후안과 함께 바닷가에 가 수영을 배운다. 물에 뜨는 법을 배우고 혼자 물살을 헤치는 방법을 샤이론에게 가르친 후 후안은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Let me tell you somethin': it's black people everywhere, you remember that, okay?
흑인은 어디에나 있어, 알겠지?
Ain't no place in the world ain't what got no black people, we was the first ones on this planet.
전세계 어딜 가도 흑인이 없는 곳은 없어. 우린 이 행성의 첫 인간들이야.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샤이론이 나중에라도 차별 받을까 걱정이 됐던 듯 후안은 흑인이 어딜 가나 있으니 다른 인종과 똑같고 오히려 흑인이 인류의 첫 인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Was a wild lil' shorty just like you, used to run around with no shoes on when the moon was out.
나도 너처럼 어렸을 때 쪼만했어. 달이 뜨면 신발도 없이 뛰어다니곤 했지.
This one time... I ran by this old, old lady, was just a runnin' and a hollerin' and cuttin' a fool, boy.
한 번은, 정신없이 장난치며 뛰어다니다 한 할머니를 마주쳤어.
And this old lady, she stop me and she say to me, 'Look at you. Running around catching up all this light. In moonlight’ she say, ‘black boys look blue. You blue,’ she say.
할머니는 날 멈춰세우더니 '달빛 쫓아다니는 모습 좀 봐. 달빛 아래서는 아이들이 푸르게 보여. 너도 그렇단다'라고 했어.
‘That’s what I’m gone call you: Blue.’
그리고 그러시더라. '넌 푸르른 아이야'
달빛 아래 흑인 아이들이 왜 푸르게 보였을까. 검은색은 어떤 색을 품어도 검다. 하지만 색이 아닌 빛 아래서는 다르다. 푸른 빛 아래서 아이들은 푸르고 보랏빛 석양 아래서 아이들은 보랗다. 우리는 색에 갇힌 세계가 아닌, 빛에 비치는 세계를 인지한다. '본질'이라 부르는 색이 어떠하든 빛 아래서는 동등하다. 다시 말해 색은 본질이 되지 않아도 된다. 푸른 달빛을 쫓아다니던 아이는 그래서, 검은 아이가 아닌 푸르른 아이가 된다.
글쎄, 다른 이유도 있을지 모르겠다. 모든 존재는 긍정적이라서 푸른 빛으로 지칭했을지 모른다는 사뭇 거창한 이야기도 가능은 하고(와닿진 않지만) 억압 받고 괴롭힘 당하던 인종의 역사를 우울(Blue)로 표현했을 수도 있고(왠지 아이에게 그런 분위기를 품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시골의 어둠을 밀어내듯 주변의 어둠을 없애주는 빛과 같은 존재가 그 아이들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여러분에겐 그 푸르름이 어떻게 다가갔는지 궁금하다.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샤이론은 후안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렇지만 아이에겐 점점 더 큰 시련이 찾아온다. 바로 어머니와의 갈등. 수영을 배운 날, 집에 돌아갔지만 처음 보는 수상한 남자가 엄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 둘은 뒷방으로 들어가고 샤이론은 왠지 모를 수상함을 느낀다.
샤이론의 어머니는 사실 마약을 한다. 그것도 후안이 파는 마약을 받아서. 길거리에 세워둔 차에서 몰래 마약을 하는 사람을 쫓아내려고 다가간 후안은 그 사람이 샤이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전에 자신의 아들을 데려다준 후안을, 그도 알아봤지만 오히려 화를 낸다. 네가 판 마약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는데 너는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듯. 네가 내 아들을 이제 책임 질 거냐고 그렇게 따지는 그에게 후안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한편 샤이론은 엄마의 생소한 모습을 본 후 후안의 집에 찾아온다. 엄마가 싫다는 말을 되뇌던 샤이론은 이내 전혀 예상치 못한 한 가지 질문을 한다.
What's a faggot?
호모가 무슨 뜻이에요?
* 영어로 faggot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은 후안은 조심스레 말을 갈무리하는 듯 시간을 들여 대답한다.
A faggot is ... a word used to make gay people feel bad.
호모는 동성애자를 나쁘게 부르는 말이야.
간신히, 조심스레 답한 후안에게 샤이론은 더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Am I a faggot?
저 호모에요?
No. You can be gay, but you gotta let nobody call you no faggot.
아니, 동성애자일 수는 있지만 누구도 널 그렇게 부르게 두지 마.
How do I know?
그럼 제가 (동성애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You just do. I think. You'll know when you know.
그냥 알게 되는 것 같아. 알게 될 때가 있을 거야.
한바탕 무서운 폭풍이 예고됐다. 이미 어렴풋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린 샤이론과, 그 아이가 지나갈 험난한 길을 느낀 멘토 후안의 이야기 장면은 왠지 모르게 이미 시린 색깔의 필터가 걸려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하나뿐인 엄마에 관해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Do you sell drugs?
마약 파시죠?
Yeah.
맞아.
And my mama... she do drugs, right?
우리 엄마도 마약하죠?
Yeah.
그래.
사실이 아니길 바랐던 듯 샤이론은 대답을 듣고 집을 박차고 나간다. 정체성의 씨앗을 깨닫고 다행히 그 씨앗이 깨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멘토를 만났다. 하지만 그 멘토는 마약을 파는 사람이고 자신을 돌봐야 하지만 내팽개치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구렁텅이로 넣은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가 가진 불안정한 정체성은 그보다 더 휘청거리는 가정환경을 만났고, 의지하던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의 실망으로 인해 갈피를 못 잡게 되었다. 그렇게 조그마한 아이(Little)의 성장통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러 샤이론은 청소년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괴롭힘은 여전하다. 난폭한 동년배들은 언어적, 신체적 괴롭힘으로 샤이론의 성 정체성을 짓밟고 유린한다. 너를 언젠가 '따먹겠다'는 그 '장난'을 들을 때마다 샤이론은 매순간 비수에 찔린 듯 아파하고 자리를 피하고만 싶어 한다.
엄마도 여전하다. 이제 아예 망가져 버린 엄마는 아들에게 기분이 안 좋으니 제발 마약할 돈을 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이제 자기를 사랑하지 않냐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 샤이론에게 상처를 준다. 손님이 오니(예상컨대 마약을 같이 할 사람) 오늘은 다른 곳에서 묵으라며 어이가 없게도 아이를 내쫓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후안도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테레사의 곁에서 샤이론은 조그마한 안식을 얻지만 더욱 더 심해진 성장통을 차마 공개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다. 결국 고민과 고뇌, 극복은 샤이론 자신이 해야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공감해주는, 자신과 비슷한 입장의 누군가가 곁에 없는 상황에서 샤이론은 헤맨다.
다행인 건, 자신을 잘 대해주는 친구 케빈이 있다는 사실. 케빈은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샤이론과 장난을 치는 친구이고 최근에는 샤이론을 'Black'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복도 뒤편에서 몰래 연애행각을 벌이다 걸렸다는 이야기(수위 높은)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킬킬대는 케빈은 그나마 샤이론을 미소 짓게 만드는 친구이다.
생각이 복잡할 때 샤이론은 바닷가를 찾는다. 어린 시절 후안에게 물결을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고 푸르른 달빛 아래 오롯이 푸를 수 있는 흑인 아이에 관해 들었던, 모든 추억이 있는 곳이다. 후안은 이제 없지만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경험은 샤이론에게 거름으로 남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케빈을 만난다. 샤이론은 놀라지만 케빈은 여기가 마리화나를 피우는 개인 공간이라며 농을 던진다. 샤이론은 자신을 항상 블랙이라고 부르는 케빈에게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묻고 케빈은 그냥 '너에게 붙인 별명'이라고 답한다. 맘에 안 드냐는 케빈의 질문에 샤이론은 그냥 아무에게나 별명 막 붙이는 게 생소하다고 답한다.
마리화나를 함께 피우며 둘의 이야기는 점차 깊어진다.
That breeze feel good as hell man.
바닷바람 진짜 좋다.
Yeah, it do.
맞아.
Sometimes round the way, where we live... you can catch that same breeze. It just come through the hood and it's like everything stop for a second... 'cause everyone just wanna feel it. Everything just gets quiet, you know?
가끔 가다 우리 사는 곳 근처에도 비슷한 바람이 불어. 이웃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아. 모두가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게 너무 조용해져.
And it's like all you can hear is your own heartbeat. Right?
그래서 심장소리밖에 안 들리지. 맞지?
Yeah...
맞아...
놀랍게도 케빈과 샤이론의 감성은 같은 주파수에 머물렀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방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샤이론에게, 케빈은 모든 어려움이 다 흘러가듯 물방울이 돼 물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싶은 거냐고 공감해준다. 이렇게 공감 받는 경험에 익숙하지 않는 샤이론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뭐냐고 케빈에게 묻고 케빈은 너가 이렇게 반응하길 원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답한다.
I wanna do a lot of things that don't make sense.
나는 말도 안 되는 많은 일을 하길 원해.
샤이론은 말이 잘 통해서 그랬는지 은근한 속내를 밝힌다. 아마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말했으리라. 세상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그 한 마디가, 시혜적인 태도를 일으키면서도 동시에 그 태도를 억제하게 만든다.
But tell me, like-like what? Like what "lot of things"?
말해봐, 어떤 많은 일인데?
케빈도 말이 잘 통해서 그랬는지 그 일에 호기심을 갖는다. 너무 캐지 말라며 대답을 회피하는 샤이론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케빈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이어, 둘은 입을 맞춘다. 그렇다. 케빈도 샤이론과 같았고 둘의 감수성은 너무도 잘 통했으며 그 모든 상황은 둘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탈바꿈했다. 특히 그 입맞춤을 통해 샤이론은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하나의 진리와 같은 거대한 사실을 깨달았고 그렇게 세상을 헤쳐갈 우군을 얻은 듯했다.
과대해석일지 모르지만 케빈이 지어준 블랙이라는 별명에서 얼핏 샤이론을 향한 지지가 읽히기도 한다. 한편으로 블랙은, 다른 누군가가 붙였다면 샤이론을 피부색으로 정의해버린 폭력적인 별명일 수도 있다. 허나 케빈의 별명은, 성 정체성과 관련된 그간의 부정적 지칭에서 샤이론을 해방시키고 보이는 그대로의 샤이론을 그저 투명하게 부르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둘의 우정과 사랑을 응원하는 너무나도 편파적인 해석이려나?
어찌 됐든 이어가보자. 그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수월하지 않다. 샤이론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케빈에게 같이 장난을 치자며 끌어들이는데 야속하게도 그 대상은 샤이론이었다. 그리고 그 장난은 바로 때려눕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어쩔 수 없는 무언의 압력에 케빈은 이를 꽉 물고 샤이론을 때리고, 이전에 괴롭힘을 당할 때와 달리, 비장한 표정을 하며 계속 일어나 다가오는 샤이론에게 제발 그냥 누워있으라고 조용히 말한다. 결국 샤이론은 패거리 모두에게 얻어맞고 상처를 입는다.
물리적인 상처만 있으면 좋으련만, 처음 마음이 통했던 소중한 사람에게 맞은 아픔은 절대 물리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나와 저 친구는 하나인데, 그 하나를 억지로 나눠버린 억압에 샤이론의 마음은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선 상처는 샤이론의 속에 불을 질렀고 샤이론은 회복된 뒤 교실을 찾아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주동자를 의자로 내리친다. 안타깝지만 언제나 그렇듯 교묘하게 샤이론을 괴롭혀 오던 주동자는 피해자가 되고 샤이론은 경찰에 잡혀간다. 경찰에게 끌려 학교를 나오면서 샤이론은 케빈을 마주치고 경찰차에 탄 샤이론은 케빈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떠나간다.
다친 곳엔 새살이 나지만 그 살은 다른 곳의 상처까지는 보호해주지 못한다. 샤이론의 아픔을 조금은 감싸줄 수 있는 새살이 나타났지만 슬프게도 샤이론이 다시 상처입는 상황을 막지는 못했다. 자신이 비로소 세상과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는 사실을 케빈을 통해 알았지만 이내 그 현실은 무너졌고 다시 섬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어 생긴 또다른 성장통은 샤이론을 고뇌하게 만든다.
성인이 된 샤이론. 주동자를 때린 후 샤이론은 감옥에서 이를 악 물고 자신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인정 받고 싶었던 정체성을 외면하기 위해 날마다 악착 같이 살았다. 그리고 출소해, 자신의 멘토 후안이 했던 일과 같은 일을 맡는다. 마약판매를 총괄하면서 살게 된 것. 신기하게도 후안이 자주 쓰던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쓰면서 다니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마약을 하던 어머니는 꿈에까지 나와 샤이론을 괴롭힌다. 운동까지 해서 몸은 튼튼하지만 여전히 트라우마는 남아있다. 이제 어머니는 마약을 끊고 재활센터에 머무르지만 아직도 불안정해 샤이론에게 시도때도 없이 전화해서 보러 오라고 말한다.
비록 일은 불법이고 위험하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위치에 온 듯한 샤이론. 그렇지만 샤이론을 다시금 뒤흔드는 전화 한 통이 온다. 바로 케빈으로부터. 테레사에게서 번호를 받고 연락했다는 케빈은 작은 식당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서 이전에 샤이론과 함께 들었던 음악을 누군가가 틀었고 그렇게 생각난 샤이론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전화번호를 얻었다는 것.
말은 차분하게 하지만 눈과 마음은 쉼없이 흔들리던 샤이론에게 케빈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며 샤이론의 근황을 묻는다. 대충 얼버무리던 샤이론에게 케빈은, 언제 한 번 먹으러 오라며 전화를 끊는다.
샤이론은 어머니도 만날 겸 일단 길을 나선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만났지만 해묵은 앙금이 있어 어색하고 부드럽지 않다. 그래도 이제 마약을 하지 않는 어머니는 아들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아들이 마약판매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화를 내기도 한다. 어머니가 화를 낼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샤이론은 자리를 뜨려 하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참회한다.
I love you, baby. But you ain't gotta love me.
널 사랑한단다. 하지만 넌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Lord knows I did not have love for you when you needed it, I know that. So you ain't gotta love me... but you gon' know that I love you.
너에게 내 사랑이 필요할 때 주지 못한 걸 알아. 그렇지만 내가 널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주렴.
샤이론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용서한다. 성장통을 겪을 때 연고를 발라주지 못하던 어머니와의 갈등은 이제야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사실 모르겠다. 진정 용서했을까. 아니면 후안과 비슷한 처지가 된 샤이론이 세상을 넓게 보면서 마약에 찌든 사람을 용인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샤이론의 눈물이 용서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의 기구했던 어린 시절이 너무 불쌍해서 흘린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샤이론의 시린 성장통을 상기시킨다.
어머니를 만난 후 샤이론은 케빈을 찾아간다. 케빈은 잠시 놀라지만 이내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특선요리를 만들어 준다. 좋은 술과 함께 둘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눈다. 케빈은 실수를 해 아이가 생겼지만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고 마약유통에 손을 댔다가 복역하기도 했다. 샤이론은 연애관계가 어땠고 일을 뭘 하는지 밝히지 않으려 하지만 음식까지 만들어줬는데 얘기는 해달라고 하는 케빈의 등쌀에 밀려 직업 이야기만 간신히 하게 된다. 마약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케빈은 표정이 굳었고 그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샤이론의 대답에 말도 안 된다고, 그건 네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물어보는 샤이론.
Why'd you call me?
나한테 전화는 왜 했어?
I told you, man... dude came in... He played this song, man...
말했잖아... 어떤 사람이 와서 그 노래를 틀었다니까.
그동안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묻어뒀을 뿐. 전화를 받았을 때 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쳤고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이끌려 케빈을 찾아왔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그냥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건네던 케빈에게, 샤이론은 꼭 물어봐야 했던 말이다.
케빈은 일어나서 샤이론을 떠올리게 된 그 음악을 튼다. Barbara Lewis의 <Hello Stranger>. 낯선 이에게 오랜 만이지만 다시 만나 반갑고 이렇게 들러 인사를 해줘 고맙다는 가사는 마치 케빈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부드러운 모습으로 샤이론을 기억하던 케빈에게 지금의 샤이론은 조금 낯설지만 그래도 만나서 좋다는 이야기가 가사에 녹아있다. 장사를 마친 후 샤이론은 케빈을 태워다주며 케빈의 집으로 향하는데, 이제 케빈이 물어볼 차례.
What man, come on, you just drove down here?
여기 그냥 온 거야?
여기 왜 왔냐고 물어보는 케빈의 질문에 이번에는 샤이론이 '그냥'이라며 둘러대고 그러는 사이 둘은 케빈의 집에 도착한다. 샤이론은 감옥 이후에 자신이 그 시절을 잊고 얼마나 단단해지려 애썼는지를 말하고 케빈은 조금씩밖에 못 벌지만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해왔지만 이제는 아이도 있고 직업도 있어 이전에 하던 그런 걱정은 없다는 말을 한다.
듣고 있던 샤이론은 조심스럽게, 복잡한 표정으로 더 이상 꺼내지 않으려 했던 깊은 속마음을 내뱉는다.
You the only man that's ever touched me.
너 이외엔 그런 관계를 가진 적이 없어.
이전의 걱정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하는 케빈과 달리, 샤이론은 다시 이전의 성장통이 되살아났고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케빈이 벗어난 지난 날의 걱정에 자신과의 관계가 포함돼 있는지를 묻는 듯, 샤이론은 그 외에 다른 사람과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강조한다.
잠시 놀란 표정으로 샤이론을 바라보던 케빈, 이내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눈을 마주치는 둘. 장면이 바뀌고, 어두운 가운데 서로에게 기대 있는 두 사람.
그리고, 푸른 달빛 아래 바닷가. 파도 치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어린 시절의 샤이론. 시련을 헤쳐나가기 위해 파도만을 살다가, 이제서야 비로소 고요한 모래 위에서 뒤를 돌아보는 샤이론. 아니, 리틀.
사실 <문라이트>는 시작하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제가 감히 들여다볼 수 없는 깊이가 들어있었어요. 사람의 인생을 아우르는 성장통만 해도 소화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시린 아픔이 함께 있으니 바라보기도 어려웠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영화관에서 크레딧이 다 올라간 줄도 모르고 앉아있던 기억이 나요. 곱씹어보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았고 다시 듣고 싶은 대사가 넘치는데 제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 자꾸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단상이 되게 야속했어요.
이 영화는 성장통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성장통이 같진 않지만 이 영화의 성장통은, 워낙 굵직한 정체성을 다루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느 성장통과는 다르게 보이긴 합니다. 사실 흑인이라는 인종 정체성만 해도 주요한 사회적 이슈와 연결되고 그 문제가 너무 크고 복잡해서 그밖의 요소는 잘 고려하지 않게 되잖아요?
그렇지만 분명 흑인도 퀴어일 수 있습니다. 실상 거대한 '문제적' 요인들이 모두 겹칠 수도 있다는 뜻이죠. 그럼 그 사람은, 다른 인종으로부터 겪을지 모르는 불합리함과 차별에 대항해야 하지만 성 정체성 때문에 같은 인종의 대부분으로부터 배척 받을 수도 있어요. 그는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온갖 아픈 상황에서 연대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럴 사람을 찾기 어려워지는 그런 상황을 겪을지도 몰라요.
정체성에 정체성이 겹치니 결국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우리가 커온 과정을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성향이고 뭘 좋아하는지 부분부분 알아가고 깨달으면서 때로는 사회와 부딪치곤 하잖아요? 그 모든 과정은 다 내 정체성의 조각을 하나씩 찾아 맞추는 거죠. 그래서 다양한 정체성들이 주제로 겹치는 이 작품은 곧 인생이자 성장일기입니다. 다만 샤이론의 성장일기에는 푸른 달빛 속 시린 아픔이 녹아있었구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그 대단한 흥행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 <라라랜드>를 누르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백인들의 잔치라고 불리던 아카데미에서, 흑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는 두 번째로, 영화 <노예 12년> 이후 3년 만에 작품상을 받은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수상실적을 보고 영화를 고르지는 않지만 심사위원의 눈이 삐지 않았다면 이 작품에 상을 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정도는 느꼈습니다.
계속 존재, 정체성에 관한 영화를 주제로 삼고 있었어요. 제 맘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초점의 작품들도 얼른 적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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