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쓰기
어른 둘과 아이 둘이 사는 집. 청소를 머릿속으로만 하는 반만 주부인 내가 사는 집은 깨끗할 날이 별로 없다. 마음먹고 치운 집은 넘쳐나는 짐으로 어느새 카오스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카오스는 그 속에서 일정한 질서를 가지게 된다. 무질서 속 질서란 이런 말인가 이해하며 집안을 둘러본다. 빨래가 반쯤 점령한 소파, 책 외에도 온갖 것들이 얹힌 책장, 항상 요리 중인 것만 같은 싱크대, 바로바로 정리하지 않는 거실의 장난감들. 그것들을 쳐다보며 상상의 청소를 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만, 나의 상상은 아주 가끔 현실이 되고 대부분은 망상에 머문다.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받았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기념일마다 꽃을 챙기기 시작했다. 감사한 일이다. 무언의 강요와 수령의 환희가 10년 동안 남긴 결과이다. 올해의 생일은 주말에 놓인 연유로 무려 인편배달로 꽃다발이 도착했다. 포장을 풀고 이케아에서 구입한 연둣빛 화병에 물을 담고 송이송이 꽂아 식탁 한켠에 올려두었다.
생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꽃이 한층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이리저리 몇 컷을 찍어본다. 주변의 혼돈을 최대한 배제하고 화병과 식탁과 벽면만을 담는다. 차분하면서도 화사하다. 아름답다. 소확행이 이런 것이 아닐까. 지치고 힘든 삶 속에서 찾아내는 작고 반짝이는 행복이 이 난잡한 집안 한켠에 놓인 화병과 닮았다. 그날도 나는 소확행을 발견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훗날 이 사진을 보게 된다면 그날의 피로와 고단함은 휘발되고 어여쁜 한 장면만이 남아 나의 일상으로 기억될거라 믿으며. 희로애락 속에 희와 애만 선명하게 남아 삶을 지속할 용기와 환상이 유지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