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같은 비가 좀 내렸다치면 언덕 아래 오거리가 잠식되어 황금색 - 다시 말해 똥물 같은 진흙탕물이 발목, 무릎, 허리까지 오는 거리를 걸었던, 까맣게 잊고 있던 날들이 이번 태풍 후기로 올라온 어느 쇼츠영상 덕에 되살아났다. 냉장고 포장용 스티로폼은 어느새 거대하고 하얀 배가 되고, 붉그죽죽한 예의 그 김장용 고무다라이는 근사한 보트가 되고, 물에 뜨는 무엇이라도 그 누군가의 배가 되어 누비던 - 일순간의 황하. Yellow river.
어린 나의 옆에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고 풍경 속의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즐겁게 웃고 있다. 등교길도 아니고 집에서도 꽤 먼 거리의 그곳을 어쩌면 지금의 워터파크나 캐리비안베이를 가는 기분으로 찾아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소독차 뒤 뿜어 나오는 하얀 연기를 한참이나 뒤따라 다니던, 그렇게 철모르고 행복했던, 몇십 년 전 이야기.
옛 그 흙탕물은 추억이 되었고 사건이 되었고 비극이 되었고 나는 훌쩍 커버렸다. 이번 태풍이 얼마나 셀까 온나라가 긴장하며 지켜보던 날, 왕복 8차선 한가운데 분주한 형광색의 한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뭐 하시는걸까. 단순한 물음들.
몇십년이 지나면 오늘의 일상을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이나 할까. 살아는 있으려나. 불금이니 와인 오픈하고 기다리며 늘어놓는 라떼이야기. 비가 오면 삭신이 쑤신다는, 어른들 옛말 튼린말 하나 없다는 이야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