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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Oct 26. 2023

세련된 노동의 미학_심현석

공예가 심현석 

세련된 노동의 미학 심현석     

(2013년 경, 심현석 작가의 전시 '조연도구'에 대해 썼던 글)


     

짧지 않은 인연이다. 

서로가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딱히 빗금으로 채워 넣을만한 교집합조차 없던 두 사람이 작은 공간을 빌려 함께 전시를 했던 것이 벌써 9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있어 그때의 전시는 서로 다른 두 작가가 만나 하나의 공간을 이뤘다는 전시 본연의 취지보다는 심현석이라는 사람을 친구로 곁에 두게 한, 

누군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라지만 

나에게는 그것을 넘어 그가 사랑하는 형제와 그의 조카까지 마주할 수 있게 해 준, 

본편보다 더 멋진 프롤로그였던 셈이다.     


박기열. 심현석展 이미지     ' Fri & sat (金&土) ' 2008 / 내방안 갤러리

내 주위엔 작품만큼이나 작가 심현석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은 편인데 그들 중 대다수는 작품과 작가를 동일시하는 경우인 반면, 내가 그에게 관심을 두는 진짜 이유는 외형적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밀도를 갖춘 작품에 비해 본인 스스로 대단한 예술관이나 인생철학을 표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표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견이나 철학이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심현석은 그 누구보다 성실한 하루일과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자신의 입장 삼아 시각화 시켜 증명할 뿐이다. 그리고 독립적이라 함은 학교로부터, 또는 사람들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하는데 학교나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당수의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그것은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서 독립적인 삶이 그에게 도움이 될지 손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학교와 단체의 한가운데 머물며 입만 털 던 내 눈에는 그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금속으로 만든 수제 카메라로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던 심현석은 몇 해 전 일상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제작해 선보였다. 

은으로 만든 수제 카메라

공예가이지만 사진을 또 하나의 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도 그가 만든 카메라는 겉으로는 큐브형태의 미니멀리즘 건축물처럼 보였고 속으로는 어린 시절 자신이 고장내버린 어머니의 카메라에 대한 추억까지 내포되어 명료하게 카메라의 제 기능마저 수행해내고 있으니 매력적인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기법으로 더 깊게 들어간다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니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금속공예를 전공했던 아내와 함께 사는 나는, 기능은 차치하고라도 앞에서 언급한대로 단순하고 각이 진, 그래서 자칫 밋밋해 보이는 그의 카메라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만큼 까다로운 안과 밖의 꼼꼼한 땜질을 견뎌야 하는지와 겨드랑이 사이에 토치를 끼우고 양손을 동시에 사용하는 창의적인 몸짓이 오랜 숙련을 견딘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시간이 주는 선물이라는 것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떨어진 단추를 꿰맬 때 필요한 바늘과 급하게 야식집 전화번호를 받아 적어야 할  때 없어선 안 될 볼펜 등 장터 만물 좌판에 이미 수두룩하게 깔려있는 물건들을 만든 것이다.

이 도구들은 컴퓨터나 자동차 엔진처럼 우리 삶의 굵직하고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들이 아니라 서브의 개념 혹은 작은 역할을 하는 어머니의 장롱 속, 할머니의 경대 속 물건들이었다.

내게는 마치 조연(助演)들로만 이루어진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통념상 주연(主演)의 위치는 모두가 원하고 그런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본질보다 더 그럴듯한 포장들이 필요하고 그러니 거품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연들은 자신의 역할 안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기본적으로 연기력이 탄탄하고 어느 한쪽으로 포커스가 쏠리지 않으니 “주인공 없는 영화를 무슨 재미로 보나”라고 했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어느새 스크린의 모퉁이까지 시선이 머물고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집중해서 다시 들여다보니 제 기능에 충실한 조연도구들 안에서 비로소 거품 없이 담백한 작가의 감각과 일상을 바라보는 조금은 고독한, 하지만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은이라는 차가운 재료들이 그의 손을 거쳐 미세한 각도로 살짝 접히고 섬세히 오려지기만 해도 현실적 부피감이 단번에 느껴지는 반 입체의 장신구들로 탄생하는데 거기에는 착용이 가능해야 하는 장신구의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 외에도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자유롭게 발상할 수 있는 작가의 이력도 한몫을 한다. 

처음 대학에 입학해 자신의 색을 가진 작가로 성장하려면 입시미술의 잔재를 빨리 청산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 고질병은 입시미술에 오래 노출되지 않을수록 빨리 치유된다. 내가 아는 심현석은 그림을 끝내주게 잘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정형화된 화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작품을 만들기 전 그가 그린 디자인 단계의 드로잉만 봐도 안다.  

어린 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처럼 작가가 아니라 다른 인생으로 살 수도 있었던 소년은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자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삶을 원했을 것이다. 또한 뒤늦게 미술대학을 선택하면서 진학을 위한 최소한의 훈련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히려 입시미술에 짧게 노출됐던 것이 그가 정형화되거나 과하게 장식적이지 않은 디자인 감각을 기반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추구하며 거창한 예술에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일상이나 소소한 에피소드를 시각화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런 이유로 디자인의 다분히 계산적이고 도식적인 공식이 적용된 카메라와 장신구를 만들던 그가 꽃을 든 소년, 귀여운 강아지와 돼지 형상 등 자신의 드로잉을 그대로 옮겨 붙인 듯한   오브제와 장신구를 만들었을 때도 나는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기보다 언제든 그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라 생각했다.     

 때론 최소한의 디자인을 이용해 최대한의 시각적 효과를 구현하는 또 다른 작품들의 표피만 보면 작가가 조금은 냉정하고 계산적일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 들이는 노동력과 시간,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런 선입견은 기우에 불과하다.

대학 때 인연을 맺은 은사와 20여 년이 넘도록 함께 작업실을 공유하며 인생의 동료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반려견 노루는 그의 성정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이다. 

심현석과 노루 (현재 노루는 하늘나라에)

요즘 같은 시대에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 안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고려하기 마련인데 그는 방치되어 버려진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새끼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후 이쪽, 저쪽 양해를 구해가며 학교와 작업실에 동행을 한다. 그리고 매일 사진으로 노루를 기록함으로써 사진과도 밀접한 자신의 창작행위를 다양한 방법으로 넓혀가고 있는데 그 모습은 자신의 강아지로 멋진 사진들을 남겼던 개념 예술가 윌리엄 웨그먼(William Wegman)과 그의 페르소나 만 레이 (바이마라너/weimarane)의 우정과도 중첩된다.    

 

그와 속내를 터놓기까지는 약간의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별로 어렵지 않다. 

뉴욕에서 막 건너온 교포출신 아티스트 같은 분위기를 하고 있는 심현석은 때때로 고향집에 들러 원숙한 솜씨로 낫질을 하거나 지게를 지기도 하고 작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활에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한다는 예술가의 대원칙을 몸소 실천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결국 그가 가진 털털함과 허술함이 이전까지 그의 작품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게 했던 방석 밑 퍼즐 한 조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가평에 있는 집이자 작업실에서 텃밭을 돌보는 중
심현석 작가와 나 (조연도구 전시) _ 사진 by 이지은 도예가


누구보다 빠르게 걷지만 그 누구보다 성실히 오랫동안 작업하는 작가 심현석은 매일매일 자신이 만든 카메라에 담을 새로운 피사체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일상의 순간과 소박한 이야기들을 작품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자.      





심현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merag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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