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복치남편 Dec 29. 2023

네가 태어나던 날

나도 다시 태어났다

나은에게,


네가 태어나던 날에 아빠는 많이 아팠단다. 물론 배 아파 널 낳던 엄마의 고통에 비하면 민망할 정도기는 하지만 말야. 평생 안 걸리던 독감을, 그것도 네가 태어날 것을 대비해서 예방주사까지 맞았는데 떡하니 걸려버리고 말았지. 아마도 아빠도 네가 태어난 날 다시 태어나려 아팠던 것 같아.


보기에는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굵어 언제나 어른이었던 것 같은 아빠도, 사실 네가 태어나기 전날까지는 어른이 아니었어. 아기나 소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나이였지만 어른이라고 스스로 말하기에는 모자란 상태였단다.


그러다 그날이 온 거야. 그날의 서울은 보통의 겨울 날씨처럼 구름이 조금 있었고, 신비로운 안개가 조금 있었지. 네가 태어나던 새벽에는 영하 4도였대. 나은이가 나올 것 같다는 말에 네가 아주 작을 때부터 널 진찰해주신 선생님이 새벽에 뛰어오셨대. 정말 많은 사람이 네가 태어날 새벽을 준비했어. 


사실 네가 태어나기 전날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 들렀단다. 엄마가 네가 나올 것 같다고 느꼈나 봐. 이미 네가 나오기로 약속한 날은 지났기에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싸고 병원으로 간 거지. 그런데 병원에서는 네가 나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했어. 경험 많은 간호사 선생님은 차라리 집에서 좀 쉬다 오라고 하셨지. 엄마는 독감으로 콜록대던 아빠가 걱정되어 다시 집으로 가기로 했대.


그렇게 해가 져서 어두워졌고, 아빠는 엄마 곁에서 살짝 잠들어 버렸어. 그런데 엄마가 아빠를 흔들어 깨우며 네가 나올 것 같다는 거야! 아빠는 비몽사몽간에 엄마 손을 잡고 다시 병원에 갔어. 엄마가 입원한 뒤에도 병원에서는 아직 네가 나오려면 멀었다는 거야. 우리 딸은 역시 슈퍼스타라서 태어나기 전부터 팬들 애간장을 태울 줄 알았나?


병원 입원실에서 애타게 널 기다리던 시간은 포근했어. 어둑한 조명 아래서 엄마 아빠는 나은이가 태어나면 분명히 효도할 거 라고 말했지. 그리고 새벽에서 아침이 되어갈 즈음 문이 벌컥 열리며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선생님은 나은이를 세상으로 나오게 할 테니 아빠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지. 아빠는 문밖에서 귀를 대고 너를 애타게 기다렸어. 하나님 부처님 조상님 안 찾은 님이 없을 정도로 기도했단다.


널 처음 안은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림 나은 엄마

3.45kg, 55cm, 오전 5시 9분. 네가 태어난 시간의 기록이야. 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간호사 선생님이 입혀주는 위생 모자와 가운을 입었단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빠에게 가위를 주며 나은이의 탯줄을 잘라주라고 했어. 아빠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잘랐어. 최대한 이쁘게 잘라주려고 노력했단다, 믿어주렴. 물론 의사 선생님이 전문가의 손길로 이쁘게 마무리해주셨지. 


간호사 선생님께서 너를 하얀색 수건으로 감싸고 엄마에게 처음 안겨주었어. 태어난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주신다고 했지.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안겨 우리는 같이 첫 번째 사진을 찍었단다. 지금 다시 보니 엄마는 탈진해서 간신히 웃고 있고, 아빠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네.(웃는 연습을 미리 해둘 것을! 아쉬워...) 그리고 너는 사랑스럽게 눈을 꼬옥 감고 있단다. 그 사진이 너의 첫 번째 사진이기도 하지만 나은 아빠의 첫 사진이기도 해. 널 처음 본 순간 아빠는 이제 널 위해 살기로 했거든.

매거진의 이전글 넌 새싹이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