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라는 결핍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나서 200만 원가량의 돈이 수중에 사라졌다. 조금 잘 살기 위해서 온 캐나다에서 이런 일이 왜 나한테 왔을까라는 생각에 너무 억울했다.
순간순간마다 화가 났다. 나는 돈에 결핍이 있는 여자였다. 누구에게 이 백만 원은 작은 돈이지만, 나에게는 큰돈이었다. 캐나다에서 첫 주급 받고 돈이라도 썼으면 후회가 되지 않을 텐데 교회에 십일조 내고, 같이 일했던 친구 밥 한번 사주고 나니 모든 돈이 사라졌다.
이백 만원 실종 사건은 내 마음의 가난함을 더욱 자극했다. 우리 가족은 한참 돈이 필요할 시기에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가난했다. 학창 시절에 나는 늘 돈의 결핍을 달고 다녔다. 나에게는 언니와 동생이 있다. 언니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는 대기업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다. 집이 가장 가난할 때 언니가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언니에게는 모든 지원을 제공했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언니는 우리 가정에 한줄기의 빛이었으니까.
어느 날 중학교를 마치고 엄마가 나에게 "우리 집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실업고를 가면 안 될까?"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죽어도 실업고는 가기 싫었다. 이때 방송에서 나온 한 인문계 고등학교가 전액 장학금으로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강력한 추천으로 20명만 뽑는 고등학교에 지원을 하고 전액 장학생으로 뽑혔다.
전라도에서 시골 경상도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은 정말 적응이 안 되었다. 가난하지 않았으면 집 근처 고등학교 갔을 텐데 부모님이 용서가 안 됐다. 나의 학창 시절은 감사함보다는 돈이 주는 무서움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이때 향수병도 생겼다. 공부도 안 되고 친구들과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결국 내 몸에 어지럼증을 생기게 했다. 돈의 가난함보다 마음의 가난함이 더욱 무섭다.
나는 대입에 실패하고 나서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주얼리 판매, 편의점, 도미노피자, 초밥 집, 오피스 사무직. 돈을 벌고 나서 부모님 생활비에 늘 보태드렸던 것 같다.
마음이 가난하니 모든 쓴 뿌리들이 폭발해 버렸다. 보이스 피싱을 당하고 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면서 조금 잘 살려고 캐나다에 왔는데 "왜 나는 늘 가난해야 해?", "나는 늘 실패해?"라고 하면서 엄청 울었다.
엄마는 "200만 원이라서 다행이다. 감사를 선택해야 해. 2000만 원이 아니잖아. 200만 원이라서 다행이야."라고 말씀해 주면서 나를 다독였다. 나는 보이스피싱을 당하면서 돈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상황은 힘들지만 감사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