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괴로운 천식과 비염, 아토피
어렸을 때 격주로 소아과에 가서 천식약을 받고, 호흡기 치료를 하고, 꽤나 자주 밤에 응급실에 갔던 기억이 있다. 집안의 작은 딸인 나는 하얗고 창백하고 통통하고 허약한 아이였다.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시고, 힘든 내색 한번 보이지 않으셨던 우리 엄마도 가끔은 힘드셨을 거다. 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우리 아빠가 밤새 콜록거리는 나를 보고 “어떻게 좀 해 봐라”하고 화를 내시면 엄마는 당시 우리가 다니던 교회 새벽기도에 나를 데리고 가 끌어안고 기도를 하시기도 했다.
생후 4개월에 천식으로 인해 종합병원에 입원했었던 나는 그 후 ‘알러지성 천식’이라는 병명 아래 먹는 천식약과 호흡하는 천식약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생활했다. 숨이 차게 하는 운동도 일부러 하지 않았고 먼지가 나는 곳은 피해 다녔다. 엄마는 하루에 2, 3번씩 집안 청소를 하셨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 알러지가 시작되는 경우보다, 어렸을 때 이런 증상이 있으면 차라리 성인이 되어가며 완화 또는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에서 위로를 받았고, 다행히 커갈수록 정말 점점 천식 발작 횟수가 줄었던 것 같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된 4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 비쉬켁이라는 도시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매우 건조하며, 4계절이 뚜렷하고, 여름에는 매우 덥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바로 서늘함이 느껴지고, 겨울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하얀 눈과 머리가 띵한 추위가 있었던 그곳.
어른들은 당시 키르기스스탄을 보며 말씀하셨다. 한국의 70, 80년대를 보는 것 같다고. 높은 빌딩도 없고 휘황찬란하고 북적이는 장소도 찾아보기 힘들고, 규모 있는 마트보다는 전통 시장과 작은 상점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며 살았던 곳. 하얀 살갗을 가진 길쭉길쭉한 자작나무 숲 사이로 연회색의 높지 않은 아파트가 줄지어 있던 곳. 러시아인 듯하면서 몽골 같기도 한 그런 곳. 투박한 검은 빵에 동네 할머니들께서 집에서 손수 만들어 파는 버터와 크림으로 식사를 하던 곳.
키르기스스탄에 살면서 나의 천식은 너무나 좋아졌고, 완쾌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 보다 더 잘된 일은 심각한 아토피 피부염을 앓던 언니도 거의 다 나았다는 것.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정말 환경이 너무 심하게 파괴된 한국에서는 면역 관련 질환으로 괴로워하는 것 왜에 답이 없었던 것일까. 혹은 습한 곳보다 건조한 곳이 알러지 유발 물질이 살기 어려운 환경인 것일까. 아니면 정말 어렸을 때 천식과 아토피 등 면역 관련 질환이 나타난 언니와 내가 커가면서 나아진 것일 뿐일까.
여하튼 나는 지금도 거의 천식 발작은 없는 채로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자리 잡은 언니는 높은 온도와 습도, 수많은 야생 나무와 식물들이 있는 곳, 천연 늪과 호수가 많은 곳에서 알러지 유발인자가 많아 그런지 다시 아토피와 비염이 심해져 일주일에 한 번씩 알러지 주사를 맞으며 생활하고 있다. 언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정말 괴로워서 제발 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고 재촉하곤 한다.
현재 내가 2년을 계획하고 거주 중인 미국 일리노이 주는 키르기스스탄과 유사한 점이 많다. 내륙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상업 시설이 많지 않아 공기가 깨끗하다.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천식은 없었지만 심한 비염으로 인해 코를 넘어서 귀와 눈이 가려워 죽을 것만 같았던 나는 신기하게 일리노이에 도착하자마자 100% 비염 증상이 사라졌다. 온 집안에 카펫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집안에 동물과 카펫을 두지 않고 이불보와 베갯잇을 자주 갈고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깨끗한 환경에 사는 것. 그것이 해결 방법인 듯하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공기 질을 생각하면...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되기는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로서 주변에 알러지로 괴로워하는 아가들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 의학 관련 전문 지식은 없지만 스스로 겪어온 일들을 통해 내가 결론 낸 것은 정말 어린 나이에 면역 관련 질환이 나타난 아이일수록 성인이 되어가며 증상이 완화될 확률이 높다는 것과, 무조건 양의학으로 현재의 알러지 증상을 덮으려고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환경에 살아보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알러지라는 단어의 의미는 ‘알 수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든 알러지 증상의 원인을 추측할 뿐이지 100% 정확이 알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발 같은 환경에 노출된 채 약만 먹고 약만 바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아무나 이름도 낯선 키르기스스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미국에 가서 살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 할머니 댁에 방학 동안 가 있어 보기도 하고, 샤워도 며칠 건너뛰고 자연에서 생활해 보기도 했으면 좋겠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병자들만 하는 행동”이라고.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저질러 보자, 할 수 있다. 인생은 짧지 않다. 매우 길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자. 실험해 보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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