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딘는] 우리말 맛있는 우리글 #9

받아쓰기와 나머지 공부 그리고 음운 변동

by 이학성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던 기억 다들 있으실 겁니다. 받아쓰기를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고 나머지 공부의 기억이 저의 어린 시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참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나 봅니다. 저의 딸아이도 받아쓰기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받아쓰기를 해야만 할까요? 소리 나는 대로 그대로 적는다면 받아쓰기도 필요 없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적은 대로 소리 내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김훈 작가님의 자전거 여행에서도 [숩]이라고 발음하지만 ‘숲’이라고 적는다고 하였고 이를 음절의 끝소리 규칙이라고 하였습니다. 숲과 숩을 잘 생각해 보죠. ‘ㅍ’은 ‘ㅁ’과 발음되는 위치가 같습니다. 입술로 공기를 막았다가 입술을 벌리면서 소리가 나는 자음이지요. 하지만 밭침의 자리 즉, 종성의 위치에서는 ‘ㅍ’을 발음할 때 입술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숲’을 발음하고 나면 입이 다물어져 있죠? 바로 그겁니다. ‘ㅍ’을 제대로 소리 내기 위해서는 입안에 모아두었던 공기를 입술을 벌리면서 강하게 내뿜어야 가능한데 종성의 위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ㅂ’으로 소리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비음과 유음을 제외한 나머지 자음들은 종성에 올 때 ㄱ, ㄷ, ㅂ 소리 중 하나로만 발음됩니다. 그래서 우리말의 종성 위치 즉, 음절의 끝에서 발음될 수 있는 자음들은 ㄱ, ㄷ, ㅂ 소리와 비음, 유음입니다. 결국 ㄱ, ㄴ, ㄷ, ㄹ, ㅁ, ㅂ, ㅇ 7개만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종성의 자리에 두 개의 받침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할아버지 손에 자라났습니다. 도시가스 보일러는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죠. 연탄보일러를 본 것도 초등학교를 지나서 처음 보았답니다. 제가 살던 집은 오래된 한옥이었고 방에는 구들장이 깔려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땔감을 옮겨 불을 지피는 어머니 소리에 눈을 뜨곤 하였죠. 주말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낭그하러 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도 익숙했던 ‘낭그’라는 말을 십 년도 넘게 지나 대학교 수업시간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무의 옛말은 어쩌면 ‘남’에 ‘ㄱ’더 붙어 있었을 수도 있다는 말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수업 내내 딴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음을 연달아 발음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자음 두 개를 연이어 발음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가령 ‘닭’을 예로 들면 ㄹ과 ㄱ을 모두 발음할 수 없지요. 그래서 ‘닭’도 [닥]으로 발음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현상을 ‘자음군 단순화’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꼭 1년에 한 번씩은 신라면의 발음과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이름을 각각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신라의 표준 발음은 [실라], 신라면의 표준 발음은 모른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 답에 아이들은 무척이나 실망하죠. 표준 발음은 표준어를 어떻게 발음하냐의 문제입니다. 백만 개도 넘는 어휘가 등재된 국어사전에 신라면이라는 단어는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상표를 다 등재할 수는 없을 테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사전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표준 발음이라고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와 관련성이 있는 규정은 있습니다. 표준 발음법 제20항에 ‘ㄴ’은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로 발음한다고 되어있고 신라는 [실라]로 발음하는 것으로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다만’이라며 생산량[생산냥]으로 발음한다고 되어있죠. 즉, ‘ㄴ’과 ‘ㄹ’이 이어질 때 ‘ㄴ’이 ‘ㄹ’로 바뀔 수도, ‘ㄹ’이 ‘ㄴ’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라면은 [신나면]이 될 수도 있고 [실라면]이 될 수도 있지요. 칼날처럼 ㄹ뒤에 ㄴ이 이어져 있거나 생산량처럼 ㄴ뒤에 ㄹ이 이어져 있을 때, ㄴ이 ㄹ로 바뀐다면 유음으로 바뀌었으니 유음화, ㄹ이 ㄴ으로 바뀌었다면 비음으로 바뀌었으니 비음화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니 ‘신라’와 ‘신라면’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의 답은 ‘신라’는 유음화, ‘신라면’은 유음화이거나 비음화라고 달리 답할 수 있게 되겠죠.


이렇게 글로 쓰는 것과 달리 발음되는 경우는 참으로 많습니다. 국물이라고 쓰고 [국물]이라 발음하는 비음화, 앞서 다룬 신라와 같이 ‘ㄴ’을 ‘ㄹ’로 소리 내는 유음화, 해돋이를 [해도지]로 발음하는 구개음화, 국화를 [구콰]로 발음하는 자음 축약 등등 참 많은 예가 있지요. 이러한 것들은 우리는 음운의 변동이라고 말합니다. 음운의 변동이란 말 그대로 음운이 바뀐다는 것이고 바뀌는 것에는 새롭게 생기거나 사라지는 것, 두 개가 모여 새로운 하나가 되는 것들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하나의 음운이 다른 음운으로 바뀌는 교체, 음운이 사라지는 탈락, 두 개의 음운이 나라로 줄어드는 축약, 없던 음운이 생기는 첨가 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발음을 쉽게 하고자 하는 경향의 결과물인 것이지요.

하지만 쉽게 발음한다고 모두 맞는 발음일 수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꽃바구니, 숟가락, 신문, 전화’ 같은 것들이 있지요. 이 단어들은 무심코 여러 번 발음하다 보면 [꼽빠구니], [숙까락], [심문], [저놔]로 발음하게 됩니다. 물론 표준 발음은 [꼳빠구니], [숟까락], [신ː문], [전ː화]입니다. [꼳]을 [꼽]으로 발음하면 뒤에 이어질 ‘ㅃ’ 발음과 같은 자리로 첫음절의 종성을 발음하게 되니 쉽게 발음이 가능한 것이죠. 숟가락이나 신문도 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조음 위치가 변화하는 발음은 구개음화를 제외하고는 표준 발음이 아니라는 점 기억해 둘만 합니다. 또한 ‘ㅎ’ 소리는 울림소리 사이에서 잘 사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역시 주의해야 할 경우입니다.

이 수많은 경우를 하나하나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국어시간에 배웠거나 아직 배우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에 맞게 발음하고 쓸 줄 아니까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글과 말의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소리 나는 대로 글을 쓰게 된다면 받아쓰기 걱정은 없어지겠지만 쉽게 읽어낼 수 없게 됩니다.

‘감만으로는 감의 품질을 따질 수 없다.’라는 문장의 뜻은 무엇일까요? 감 자체로 감의 품질을 평가할 수만은 없고 생산방식이나 생산지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느낌만으로는 감의 품질을 따질 수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값이 비싼지 싼 지에 따라 감의 품질을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소리 나는 대로 글을 쓰게 된다면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의 가치’와 같은 표현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맞춤법에 맞게 쓰는 학습의 시간이 힘들 수는 있지만 보다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언어생활을 위해 어쩌면 그 시간은 중요했던 것이지요.

얼마 전 딸이 책을 읽다가 문득 질문을 해왔습니다. “아빠도 [여권]이 있어?”

“응, 있어.”라는 대답을 하기 전에 “[여꿘]이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먼저 말하고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어른에게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당연한 발음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말해버린 저를 자책했습니다. 딸아이는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여권’으로 쓰여있는데 왜 ‘여꿘’이라고 읽어야 하는지를 물어왔던 것이죠. 사실 된소리와 관련된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새 신을 [신꼬]라고 읽습니다. 하지만 [신고]라고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갈등, 절도라고 쓰고 [갈뜽], [절또]로 읽으며, ‘할 수 없다’라고 쓰고 [할 쑤 업따]로 발음하죠. 병원 간판은 모두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치과, 내과, 이비인후과로 쓰고 모두 [꽈]로 발음하죠.

아이에게 경음화(된소리 되기)가 무엇이며 사잇소리 현상이 무엇이고 한자어일 경우에는 된소리로 발음되는 것들도 있다와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아이에게 “글자랑 다르게 발음하는 것들이 뭐가 더 있는지 찾아보자.”라고 둘러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받아쓰기를 하는 아이에게도,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에게도 말과 글씨가 다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덧붙여 '맛있다'의 발음은 [마딛따] 또는 [마싣따]이며, '멋있다'의 발음은 [머딛따] 또는 [머싣따]입니다.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잘 생각해 보신다면 [마딛따], [머딛따]가 원칙적인 발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음 습관을 무시한 원칙은 강요일 뿐이니 [마싣따], [머싣따]라는 발음도 허용이 된 것입니다.

시장에서 매매되는 가격을 '시가'라고 한다. 표준 발음은 [시ː까]이고 '시가'로 표기해야 한다.


‘간판에서 틀린 표기를 찾아보시오.’라고 질문하면 정확히 알든 그렇지 않든 일단 ‘싯가’라는 표기가 틀린 것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일단 정답은 ‘싯가’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왜 틀렸죠?’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기에서 자신 있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된소리와 관련된 내용 하나를 덧붙여 보고자 합니다. 바로 사잇소리, 사이시옷입니다. 이것만 알아도 글을 쓸 때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사잇소리와 사이시옷을 이해하기 위해서 처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바로 글씨입니다. 사잇소리는 소리와 관련된 개념이고 사이시옷을 시옷을 적어 넣는다는 표기와 관련된 규정입니다.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면 사이시옷을 적도록 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다음으로 사잇소리 현상은 어떤 말과 어떤 말이 결합하여 하나의 말을 만들 때 그 사이에 소리가 끼어드는 경우를 말합니다. 가령 ‘코’라는 말에 ‘노래’라는 말이 결합하면 [콘노래]라고 발음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이에 없던 [ㄴ] 소리가 덧나게 되죠. 이렇게 [ㄴ] 소리가 덧나기도 하지만 ‘초’에 ‘불’을 더하면 [초뿔][촏뿔]처럼 된소리가 되거나 [ㄷ] 소리가 덧나고 된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ㄴㄴ] 소리 즉 [ㄴ]이 두 번 덧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에 ‘잎’을 더하면 [댄닙]으로 소리 나는 것이 그 예가 됩니다. 그럼 사잇소리 현상의 경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초+불=[초뿔][촏뿔] /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가 되는 경우

② 코+노래=[콘노래] / [ㄴ] 소리가 하나 덧나는 경우

③ 대+잎=[댄닙] /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

위와 같은 경우를 사잇소리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시죠. ‘시가’는 어떤 경우에 해당하나요? 분명히 [시까]라고 발음하니 ①번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났으니 사이시옷을 적어야겠죠. ‘싯까’가 맞는 표기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두 말이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적어도 하나는 우리말이어야 사이시옷을 적도록 되어있다는 점을 추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가는 과연 무슨 말들의 결합일까요? 시가는 시장(市場) 가격(價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순우리말은 하나도 없는 한자어들의 결합이었던 것이죠. 그러니 사이시옷은 적을 수 없습니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합성 명사를 이루는 과정에서 적어도 하나는 순우리말이면서 ①, ②, ③의 경우 중 하나라도 속한다면 사이시옷을 적는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촛불, 콧노래, 댓잎으로 적는 것이고 치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로 적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된 수업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신문에서 ‘소장이 법원에 갔다’라는 예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연구소의 소장이 법원에 갔는지 공소장이 법원에 갔는지 참 어렵습니다. 이런 말들은 생각해 보면 참 많습니다. 수학 문제에서 ‘소수의 인원’과 사회 문제에서 ‘소수의 인원’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 것이고, ‘짬뽕의 대가’는 맛집일 수도 지불해야할 금액일 수도, 누군가의 집에는 호수가 있을 수도 있고 호수만 있을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곳간, 셋방, 숫자, 찻간 등의 일부 말에는 한자어들의 결합임에도 사이시옷을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분명 적으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미 변별이나 다른 어휘와의 관련성 등을 이유로 예외로 적도록 한 것이죠.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려운 이야기로 더 어렵게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해결책을 모색하긴 해야 할 듯합니다. 현실적인 언어 사용을 고려하여 사이시옷을 적는 어휘들을 더욱 늘려야 할까요? 아니면 한자 교육을 강화하여 의미 전달에 어려움이 없게 하여야 할까요? 고민이 필요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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