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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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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Nov 24. 2023

43. 일상기록-14

21개월 아기

이사하느라 바빠서 아기 성장에 대한 기록이 18개월에 멈춰있다는 걸 발견하고 21개월 초입에 들어간 아기의 발달에 대해 써본다.


이 시기에 아기 발달에 대한 가장 큰 관심사는 언어발달이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 아기는 성장 속도가 썩 빠른 편은 아니고 오히려 한두 달 정도 느린 편이라서 주변 사람들이 "이제 말은 하냐?"라는 질문에 아직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엄마, 아빠, 맘마, 까까, 멈머(개), 코코(코알라인영), 야옹(고양이), 부(이불), 이이이아아아(양치질) 정도의 단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성어 위주의 말하기를 하고 있다. 으르르(사자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위이잉(비행기나 헬리콥터 소리), 띠이(주차장 출차소리), 떼떼(아파트 안내방송) 정도의 표현을 한다. 단어를 알려주면 아주 작게 따라 하는 흉내를 내거나 대충 ㄸㄸ 소리를 내며 회피하기도 한다. 


수용언어는 아주 잘 발달하고 있다. 통화하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가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면 반응하고 특히 먹을 것에 대한 대화이면 바로 자기 입에 넣어달라고 "아, 아!" 하는 통에 남편과 대화를 할 때 아기가 못 알아듣게 단어를 영어로 바꿔 말하기도 한다. 먹을 것 관련 떼를 쓰기 시작하면 집착이 아주 심해지기 때문에 사소한 대화에서 갈등요소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기와의 의사소통은 대체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생활 지시어를 잘 수행하고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단어와 몸짓을 통해서 나와 소통하려고 한다. 이전보다 요구사항이 더 구체적이고 정교화되어서 아기의 창의력에 놀라서 웃는 날이 많다. 


모방행동이 많아지고 역할놀이를 시작했다. 요즘 차로 한 시간 거리 안쪽으로 아기랑 갈만한 곳은 샅샅이 훑고 다니는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보고 오면 그때 봤던 것을 표현하기도 하고 인상 깊었던 것들은 혼자 따라 하기도 한다. 이미 내가 하고 있는 집안일은 마스터한 수준이다. 내가 아침에 청소기를 돌리면 자기도 청소하는 시늉을 내는데, 이사를 하면서 유선 청소기를 무선 청소기로 바꾸었더니 자기도 뽀로로 청소기의 몸체와 기둥을 분리해 달라고 해서 막대 부분을 가지고 다니며 나와 똑같이 무선 청소기를 사용하는 흉내를 낸다. 아파트 하자보수 기간이라 기사님들이 집수리를 해주고 가시면 그걸 유심히 보았다가 자기도 그 자리에 가서 해소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관심을 끌고 자기가 하는 것을 보라는 행동도 많이 한다. 이것을 어떤 육아웹툰 작가님은 '봐봐 지옥'이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딱이다. 나를 열심히 불러서 백번이고 천 번이고 자기가 하는 똑같은 행동을 보고 감탄하거나 놀라거나 자신이 원하는 역할수행을 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럼 나는 백번이고 천 번이고 감탄하고 놀라고 반복하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동에 '아니'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밥을 잘 먹다가도 안 먹겠다고 하고, 기저귀를 갈자고 하면 일단 거부하고 본다. 그 행동이 싫어서가 아니라 안 한다고 하면서 나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이때 나와 남편의 육아 방식이 달라진다. 나는 "하기 싫어? 그럼 하지 마." 하고 아기의 거부에 관심이 없는 척을 한다. 그러면 곧 '아니' 하는 행동을 그만두고 원래 하려던 행동을 한다. 남편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쪽이다. "와! 이거 정말 맛있겠다!" 하면서 잘 먹는 흉내를 내거나 "코알라(인형)는 기저귀를 갈고 싶다고? 그럼 코알라가 입자." 하는 식이다. 그러면 아기가 자기가 하겠다며 나선다. 둘 다 뭐가 맞다 하긴 어렵지만 나는 매번 남편처럼 내 에너지를 들여가며 육아하면 진이 다 빠져서 못하겠다.


자신만의 규칙이 생겼다. 이 행동을 할 때는 늘 해야 하는 것의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잘 때는 꼭 애착인형들을 다 안고 가야 하고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날 때는 눈부시지 않게 살짝씩 열어줘야 하고 외투는 끝까지 여미는 게 좋고 양말은 자기 손으로 고르고 싶다고 한다. 일상의 루틴을 자기 뜻대로 세운 규칙 내에서 행동하길 요구하곤 한다. 요즘 약간 후회하는 습관은 아기랑 카페나 차로 이동하거나 놀러 갈 때 아기가 조용히 앉아있고 나도 좀 쉬면서 놀고 싶으면 아기에게 간식을 주곤 했더니 어딜 가면 "까까"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해졌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과 가깝거나 너무 자주 요구할 때는 거절했더니 크게 울곤 해서 내 몸 편하려다가 더 불편해졌구나, 내 꾀에 내가 넘어간 기분이다.


자신의 감정표현, 요구, 주장이 강해질수록 아기가 사람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예쁘다. 아기랑 티키타카가 되는 게 신기하고 아기랑 노는 게 즐거워졌다. 밖에 나가서도 아기가 보이는 반응에 행복해서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고 아기에게 여기에서 느끼는 건 어떤지 물어보고 싶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새롭게 흡수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일상의 루틴을 잘 지켜나가니 내 몸도 많이 편해져서 이번엔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남편이 무려 9박 10일의 출장을 나갔는데도 몸과 마음이 훨씬 덜 지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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