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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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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Mar 18. 2024

50. 배변교육

아기는 벌써 25개월에 접어들었다. 나는 이번 달 초에 복직했고 적응에 정신없는 와중에 아기는 갑자기 변기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니지, 사실 갑자기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작년 20개월 즈음부터 어른 변기에 관심을 가지길래 너도 하나 써봐라 하고 아기 변기를 하나 구입했다. 누르면 응가 성공~ 하는 소리도 나길래 아기는 대변을 보고 씻고 나오는 길에 그 변기로 물 내리는 시늉을 했다. 22개월 정도엔 어른 변기 물 내리는 것도 하길래 아기 대변을 스스로 내리는 것도 해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23개월에 처음으로 아기 변기에 소변을 봤다. 기저귀가 불편하다는 신호도 보내기 시작했다. 자꾸 허리를 긁고 기저귀를 벗고 싶어 했다.


보통의 부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배변교육을 일찍 시작할 생각이 없었다. 아기가 아직 단어로만 말하고 문장을 시작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도 가능하고 배변교육이 쉽다는 올해 여름으로 기저귀 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신호를 보고도 좀 나중으로 넘어가주기 바랐다.


우리 아기는 언어 발화에 비해 인지는 잘하는 편이다. 조금 자랑을 하자면 엘리베이터 숫자에 관심을 보여서 남편이 숫자를 가르쳐 줬더니 이제 숫자를 읽을 줄 안다. 1부터 10까지 순차적으로 세고 뒤로도 세고 아무 숫자나 보여줘도 센다. 문장으로 발화는 자유롭게 못하더라도 단어를 익히고 표현하는 것은 제법 가능하긴 했다. 그러니 서툴더라도 자기표현을 못 하는 건 아니란 소리였다. 배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아기의 의지는 충분했으나 내 준비가 안 된 거였다.


그랬더니 복직을 하자마자 그 정신없는 순간에 아기는 네가 안 하면 내가 스스로 한다는 마음이었는지 배변 가리기를 내 멱살 잡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변기에 오줌을 누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밤잠을 자기 전에 “쉬”라고 하며 스스로 앉아 오줌을 누더니 이젠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기저귀를 벗겼는데 요의를 느끼면 언제든지 변기에 갔다. 이젠 미룰 수 없단 생각에 지난주에 어린이집에 이야기를 했더니 원에서도 배변교육을 할 시기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오니 아직 우리 집에 수북한 기저귀가 떠올랐다. 우리 집엔 낮기저귀 5팩 그리고 밤기저귀는 무려 7팩이 남았다. 그래도 저걸 다 소진하긴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주말을 맞이해 보니 아기가 하루종일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기가 마려우면 가서 소변을 보는 모습을 보니 이제 팬티를 사야겠구나 싶었다. 어제저녁에 열심히 검색해서 배변팬티 6장과 일반팬티 10장을 사놓고 이제 목요일 즈음 팬티 교육을 시작해야지 했는데… 오늘 저녁엔 갑자기 변기에 대변도 봤다. 내가 본 수많은 배변교육 후기와 영상들에선 대변은 나중에 하는 거랬는데 이렇게 급발진해도 되나?


이렇게 아기 입장에선 순조롭고 내 입장에는 혼이 쏙 빠지는 배변교육은 이렇게나 빠르게 진행되는 게 맞나 싶다. 아니, 아기가 배변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아기가 도리어 나에게 “엄마, 이제 그만 미루고 내가 알아서 할게. ” 하는 기분이 든다. 아기야, 엄마의 중대 과제를 이렇게 수월하게 넘어가게 해 줘서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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