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에 대한 묵상
순 큐티 나눔이 길어져서 또 브런치에 적는다. 어차피 매번 묵상하게 되는 말씀이니까 여기에 박제해 놔도 나쁘지 않을 듯. 나와 같이 칭찬에 목마른 자들이여 함께 묵상합시다.
은은 도가니에서, 금은 풀무에서 단련되듯 사람도 칭찬으로 사람됨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잠 27:21)
이 말씀은 매번 읽을 때마다 마음을 찌르는 말씀이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듯 나도 칭찬을 갈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신혼 초에는 아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칭찬 me”라는 표현을 숱하게 썼을 정도로 칭찬, 혹은 인정을 많이 받고 싶어 했다 (지금은 알아서 잘해준다).
칭찬이 왜 시험의 도구가 될 것일까. 간단하게는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듣다간 자기 주제파악 못하고 교만덩어리가 되어 경거망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17절)'라는 말씀이 같은 장에 있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철이 철을 갈듯이 친구, 혹은 동역자가 남기는 따끔한 충고는 정신을 들게 만드니까.
그런데 이 21절 말씀은 칭찬을 도가니나 풀무 같은 익스트림한 것과 비교하고 있다. 아마도 풀무가 금 아닌 불순물들을 다 집어삼키고 순수한 금만 남기는 것처럼 칭찬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말인즉슨, 칭찬이 나를 삼키던가 아니면 내가 그 칭찬에서 살아남던가(?)인 것 같다.
칭찬은 나의 어떠한 ‘드러남’에 대한 ‘인정’이다 - 행동이든, 말이든, 외모든. 그리고 그 칭찬이 기분이 좋은 이유는 내 존재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정은 사람을 살리고 격려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자존감도 높아지고 자신감도 뿜뿜 하게 된다. 진심 어린 칭찬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 어떤 포인트에서 칭찬이 나를 삼키는 것일까. 곰곰이 묵상해 보니 그 칭찬이 '나의 의'가 되는 순간부터인 것 같다. 내가 잘나서, 내가 지혜로워서,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등등. 나의 의가 중심이 되어 칭찬을 소화하는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칭찬을 다시 받기 위해 비슷한 행위를 반복하게 되며 20절 말씀처럼 인간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이 칭찬을 받기 위한 노력의 굴레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칭찬,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20대에 대전의 한 대형 교회에서 몸을 불살라 섬겼던 내가 그랬다. 인정하기가 어렵긴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이 칭찬의 함정을 알고 있었고 난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렇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태는 한 번 깨닫는다고 영원한 까방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매일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점검받고 새롭게 하심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은 20대의 나는 몰랐었다. 정말 열심히 사역하고 기도도 열심히 했지만 내 내면 안의 '나의 의'가 조금씩 축적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 97% 영광을 돌리고 3%를 커미션으로 챙기는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3%로가 차곡차곡 쌓여 100%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귀는 참 영리하다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칭찬에서 정제된 금같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묵상 중에 그 길은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라는 감동을 주셨다. 아..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구나 (마 6:33).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었고 난 그저 무익한 종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선한 행위에 대한 주체는 하나님이었고, 난 단순히 그 통로가 된 것이기 때문에 그 기쁨에는 참여하지만 그 영광을 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는 세례 요한처럼.
정말 오늘의 묵상이 '하나님의 의'로 종결될지는 몰랐다. 매번 하나님의 나라에만 초점을 두어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생각을 많이 못했는데 정말 적절하게 말씀을 해 주신 것 같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인 (칭찬으로부터 오는) 인정욕과 교만함에 삼킨 바 되지 않기 위해 매일 하나님의 의를 덧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심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