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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Mar 14. 2024

잘못은 인정해야 끝이 나

아이와 제대로 맞닥뜨린 하루

루하 38개월


매일매일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지는 우리 집 꼬마는 벌써 3년 하고도 2개월을 살았다. 하지만 사랑스러움과 함께 증가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자기주장이다. 요즘 루하의 별명은 삐돌이다. 틈만 나면 삐지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거부당하면 바로 입은 튀어나오고 눈은 도끼눈이 된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참기 힘들다는 게 함정).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재밌는 것을 하면 또 금방 풀어지는 걸 보면 아기는 아기구나 싶다.


루하는 우체국 직원이 모는 USPS 미니 트럭을 매우 좋아한다. 종종 우리 아파트 옆에 우체부 아저씨가 미니 트럭을 세워놓고 휴식을 취하실 때가 있는데 그때와 루하 외출 시간이 맞는 날은 루하가  미니트럭을 찬양하는 시간이다. 진짜로 찬양한다. 미니 트럭 주위를 배회하며 "우와~ 미니트럭이다~~", "우~~ 와~~ 미니트럭이 있네!!" 등 화려한 액션과 더불어 찬양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미니트럭이 떠날 때까지 내버려 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점점 고집이 세지고 떼가 늘어나는 루하에게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훈육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우체부의 휴식시간과 루하 외출의 때가 맞아 루하의 미니트럭 찬양시간이 돌아왔기에 충분히 미니트럭을 음미할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저씨가 차 안에서 식사를 하시느라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 옆을 루하가 자꾸 왔다 갔다 하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루하에게 이제 들어가자고 했고 당연히 루하는 거부했다. 그럼 보통 다음 단계로 아니야를 외치는 아기를 들쳐업고 안으로 들어간다. 일종의 강제집행이다.


강제집행을 당하여 일단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지만 유리 너머로 보이는 미니트럭을 루하는 너무너무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루하에게 조건을 걸었다. 아빠가 나가서 들어오자고 하면 바로 들어오는 조건이었다. 약속 후 두 번째 미니 트럭 투어를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흘러 루하에게 들어가자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아니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날씨가 급 쌀쌀해지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의 강제집행을 통해 아파트 안으로 루하를 데리고 들어왔다.




루하는 기분이 상했는지 나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멀뚱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몇 번을 타야 한다고 말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톤을 조금 높여봐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루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반항은 계속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야 하는데 조금 따라오다가 또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다. 오라고 해도 망부석 모드다. 아빠 혼자 들어간다고 하고 나 혼자 집으로 쏙 들어와 봤는데도 따라오지 않는다. 제대로 삐졌다는 거지. 예전 같으면 그냥 안고 집으로 들어갔던가 더 좋은 것(아이스크림 같은)으로 유인하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어 훈육을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루하와 한 시간 반을 씨름했다. 짧게 끝내려고 했으면 체벌을 했겠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최대한 인격적으로 승부를 보길 원했다.


일단 아내가 루하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고 난 루하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루하야, 루하가 화가 나고 슬프겠지만 아빠와의 약속을 어기고 아빠 말을 듣지 않은 건 잘못한 거야. 아빠 한데 죄송해요라고 이야기하면 아빠가 루하를 용서해 줄게."


하지만 눈물 콧물 흘리며 아니란다. 자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한다.


"루하야, 루하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아빠가 잘못한 것이라고 하면 잘못인 거야. 루하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끝이 나. 아빠한테 죄송하다고 하면 아빠가 용서해 주고 안아줄게."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절대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실랑이가 30분이 넘어가던 와중 아내가 지나가면서 속삭였다. 루하 입장에서 죄송하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격한 상황에서) 너무 힘들 수 있으니 잘못한 거 맞지라는 질문에 '네'라고만 답하게 하면 더 쉬울 거라고. 그래서 내 대사가 조금 바뀌었다.


"루하야, 루하가 아빠랑 미니트럭 보러 나갈 때 아빠가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오겠다고 했지?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잘못한 거야. 그리고 아빠가 따라오라고 했을 때 고집부리고 떼쓴 것도 잘못한 거야. 잘못은 인정하고 사과해야 끝이 나. 루하가 잘못했지? '네'라고 대답하면 아빠가 용서해 줄게."


하지만 그 쉬운 '네'를 끝끝내 하지 않고 이 작은 꼬마는 뻐팅겼다. 오히려 "그럼 루하가 잘못한 게 없어?"라는 질문에 눈물콧물 우는 와중에도 "네!"라고 대답한다. 이해를 못 해서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 납득되지 않아 대답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지금 세 살 아기를 상대하는지 아니면 머리가 다 큰 십 대 청소년을 상대하는지 잠깐 헷갈렸다.


이래서 체벌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체벌을 한다는 원칙을 루하에게 제시한 적도 없거니와 이미 나의 강경한 목소리에 루하는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루하가 가드를 풀기 전까지 계속 앉혀놓고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한 시간 반이 넘어가고 있었고 루하의 낮잠 시간도 넘어가고 있었다. 울다 떼쓰다가 지쳐 자고 싶지만 내가 잘못을 인정하기 전에는 절대로 못 눕게 했기 때문에 루하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잘못은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루하에게 꼭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에 나도 물러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서럽고 피곤한 아기가 잘못을 인정하게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난감했다. '하나님 이럴 땐 어찌해야 하나요?'라고 기도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래서 루하에게 말했다:


"루하야, 루하가 잘못했으면 아빠를 안아줘. 그럼 아빠가 용서해 줄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루하가 나에게 안겼다. 너무 피곤해서였는지 아니면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하는 것이 더 쉬워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이 사건은 일단락됐다. 나에게 안긴 루하를 그대로 루하방으로 데리고 와서 눕혔다. 루하에게 루하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루하를 사랑해서 아빠가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루하가 낮잠을 자도록 문을 닫고 나왔다. 루하와 같이 누웠던 아내의 말에 의하면 루하가 누운 이후로 울지는 않았지만 한참을 훌쩍이다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재택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때문에 다시 일을 하러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직 어린 아기인데 너무 몰아갔나, 아니야 그래도 해야 할 일이었어, 하지만 지혜로운 훈육이었을까 등등 여러 생각들과 어찌 됐건 사랑하는 자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나도 많이 힘들었다. 울적했다. 정말 훈육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배워가나 보다.

루하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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