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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두두 Oct 22. 2022

일기를 낭독했다.

시작도 전에 눈물부터 차올라서 혼났다.

“아… 못하겠는데요…아… 울 것 같아요.”


한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엄마들의 글쓰기’라는 수업의 타이틀이 매력적이었다. 본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라는 말과 함께 30분간 가진 프리 라이팅 시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막 휘갈겨 쓰며 흘려보낸 30분의 시간이 끝나고 하신 말씀에 심장이 벌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가면서 낭독을 해볼게요. 낭독을 하면 낯선 감정을 느끼실 거예요. 그래도 꼭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낭독이라니. 낭독이라니.

단어부터가 낯설다. 낭독이라 함은 초등학교 때나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날짜나 알 수 없는 번호 조합으로 부르는) 호명으로 겨우겨우 했던 것들이 기억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날 쓴 내 글은 낭독이라는 감성적인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글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뒤꽁무니를 쫓는 이야기들이 있다. 지독하게도 꾸준히 날 따라다니며 교묘하게 날 괴롭히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감정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 만나 수다 속에 숨겨 툭툭 내뱉는 걸로는 해소되지 않는 것들. 오롯이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 쓴 글도 그중 하나였다. 

심지어 퇴고 하나 없이 써 내려가, 자기 연민에 푹 절여진 부정의 감정들이 뒤엉킨 글이었다. 이걸 이 사람들 앞에서 읽는다고? 하필 마지막 순번이다. 이제 안다. 긴장되는 일은 후딱 해치우는 게 마음 편하다는 것을. 손이라도 들고 먼저 할게요!라고 말할걸 그랬다. 죄송하게도 앞서 9명의 분들이 낭독하시는 글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분들의 글들에선 일상의 아름다움과 반짝임이 담겨 있었다. 꼭 그날의 날씨 같았다. 하늘은 파랗고 가을볕은 짙었다. 내 글은 뭐랄까. 이 맑은 날씨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와 소나기를 부아아아앙 뿌려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하.


낭독이 주는 낯 섬보다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 감정 과잉 인간의 눈물. 울면 어쩌지… 분명 엄마들의 글쓰기라 몇 명은 울거라 예상했는데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이럴 수가. 분명 나도 다른 분들처럼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고 싶었다. 결국 종이를 들어 글을 바라보자마자 감정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예상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글을 그렇게 쓰면서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었는데… 한 글자도 읽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하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읽지 않아도 좋아요. 괜찮아요.”라고 하시려나… 하는 일말의 기대는 금방 사라졌다.


“오늘 보고 말 사람들이에요. 꼭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지금보면 울만한 글도 아닌데, 왜이렇게 눈물이 났는지 알 수 없다)



작가님의 따스하지만 단호한 응원으로 눈물로 시작해 콧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한, 눈물 섞인 고백이었다. 결국 그날의 글쓰기 수업은 내 눈물로 마무리 지어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으… 죄송해요. 내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이어진 작가님의 코멘트에 안심이 되었다.



“사무친 이야기를 쏟아내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세요.

사무친 이야기는 나의 행동에 모든 결말이 되고, 핑계가 됩니다.”



키보드로 두드려 쓰는 글들에는 자꾸만 자기 검열이 덧붙여졌다. 쓰고는 있지만 포장을 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주어진 30분 동안 어떤 이야기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날 아침에 쓰던 글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 글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이어 나갔다. 분명 전혀 정리되지 않은 일기 같은 글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조금씩 되지만, 꼭 그때로 돌아가면 그렇게나 스스로가 안쓰럽다. 그 시기의 날 품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수업 장소에서 빠져나오는데 뻑뻑했던 눈앞이 맑아지고 밝아졌다. 신기하게도 후련해졌다. 낭독 후 받은 위로 섞인 말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걸 원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날 끌어안아준다. 이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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