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좀 부럽다?
1. 아이가 내성적이라는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어릴때부터 아이는 도통 본인의 마음을 말하지 않는 아이였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뭘 했냐 물으면 모른다는 말로만 일관하던 답답한 아이였다. 초등 입학후 짖궂은 짝궁을 만나 하루하루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난 그 마저도 동네 엄마나 아이의 반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
말을 해야 안다. 표현해야 안다라는 말을 수시로 해주었지만 쉽지 않았다. 초2 학교 상담때는 상담도 전에 울어버렸다. 학생들을 파악하기 위해 한 설문 때문이었다. 모른다와 빈칸으로 도배한 그 종이를 보고는 울음이 안나올수가 없었다. 누가봐도 예쁘다고만 할때 나는 가장 힘들었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부모로 남을까봐 두려웠다.
2. 언젠가 미술학원에서 주말 야외 수업 장소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장소에 도착해 “안녕~이따가 봐~” 하고 밝게 인사를 하곤 살금살금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예뻐 차 안에서 한참을 바라봤다. 아이는 이미 도착해 무리 지어 있는 친구들과 수줍은 인사 후, 멀찌감치 떨어져 덩그러니 먼산을 보며 서 있었다. 일행이 아니오…하는 느낌으로다가. 그리고는 화단에 있는 꽃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뒷짐까지 지고선.
사실 겉도는듯한 아이의 모습은 예상했던 부분이라 충격이나 큰 걱정으로 다가오는건 아니었다. 오히려 “역시 우리 부부의 자식이군!” 하는 귀여운 마음으로 사진까지 찍어 남겨두었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에 어릴적 날 괴롭혔던 내면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니,갑자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대상이 궁금해졌다. 정말 화단의 꽃일까. 본인이 등 지고 서 있는 무리 지어 있는 친구들일까.
어릴적 나는, 나의 시선과 마음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이 일치하지 않아 늘 힘들었다.
뼈속까지 아싸이면서 인싸이길 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부모일지언정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부분이란건 그저 도움되지 않는 잔소리 형태가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외면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걱정을 뒤로 하고 수업이 끝날 무렵, 한껏 들뜬 목소리로 친구들과 더 놀다가도 되냐는 아이의 전화에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이 웃음은 안도의 웃음이었을까. 나 걱정했나봐...
3. 아이는 1학년때, 2~4학년때 각각 두명의 단짝이 있었다. 어릴적 단짝이란게 그렇듯, 학년이 바뀌며 그 존재의 의미가 사라져버렸지만.
1학년 단짝 친구는 2학년이 되어 사이가 소원해지자 절교편지를 아이에게 전했다. 하트 중앙이 깨져있는 그림과 함께. 율이는 또 아무말 없이 그 편지를 혼자 방에서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3년간 붙어 다닌 단짝과 사이가 애매해지곤 아이는 올핸 단짝이라 할만한 친구조차 사귀지 않았다. 저학년땐 제법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도 하고, 인생네컷도 찍고, 떡볶이를 사먹기도 하더니 올해는 아예 그런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친구들이랑 통화를 너무 해서 걱정이다. 연락을 너무 해서 걱정이다.하는 다른 엄마들의 걱정과 달리, 울리지 않는 아이의 핸드폰을 보며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걱정이 밀려오곤 했다.
심지어 1학기 내내 급식을 먹고 5층 교실까지 혼자 올라 갔다는 아이에게 우스갯소리로 묻곤 했다.
“너 왕따는 아니지?” “넌 친구들이랑 안놀고 싶어?” 라고 물을때마다 아이의 괜찮다는 대답과 표정이 정말 괜찮은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가도 늘 불안한 엄마는 또 캐묻곤했다. 그러다 아이의 돌아온 대답에 다신 그런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 엄마, 내가 그때 왜 애들이랑 밖에서도 놀아보고 그랬잖아. 근데 그건 나랑 안맞더라고. 피곤하고 힘들어. 그냥 난 학원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그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 “
여전히 아이의 핸드폰은 굳건히 울리지 않는다.
4. 아이의 학교 상담주간이다. 사실 아이는 크게 손이 가는 타입이 아니라, 선생님들 입장에선 굉장히 예쁜 학생이다. 편하니까.
부모란 늘 아이의 부족한 면을 굳이 캐내어가며 찾게 되니,(굳이) 약점 하나 잡아내지 못하는 학교의 상담이 늘 수박 겉핥기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이번에도 별다를 것 없을거란 생각에 별 기대 없이 한 상담에서 아이에게 부러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 본인이 좋아하는게 뭔지 확실히 아는것 같다. 중심이 아이 본인에게 있어 주변에 쉽사리 휘둘리지 않는다. “
12살 아이의 상담에서 들을거라고 생각지 못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일찌감치 본인 스스로를 파악한 아이가 대견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알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곧장 부러움이 뒤따르기까지 했다. 온갖 주변것들에 사로 잡혀 끌려다닌, 나의 10대여. 아,역시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5. 아이는 여전히 시시콜콜한 일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아이는 나보다 단단하다. 내가 불안했을 뿐이었다. 나도 더이상 울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