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배진 Sep 13. 2019

지금 비가 온다면 곧 해가 뜰 거야

나의 "지금"을 되새기기

캐나다에 있었던 4주 동안 학교에서 수업 외에 정말 다양한 액티비티들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재밌는 수업이라도 사실 진짜 추억은 교실 밖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언어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과 워터 슬라이드를 타러 가기도 하고, 말 농장에 가서 먹이를 주기도 하고, 허허벌판이었던 와일드 웨스트에서 보물찾기, 실내 암벽 등반, 카약 보트 타기 등등. 캠룹스 또는 근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다(?) 했던 것 같다. 오늘 회상해 볼 이야기는 카약을 탔던 날 일어난 일이다. 7월에는 대체로 해가 쨍쨍한 캠룹스 지역이라는데, 내가 머무르는 동안은 비가 꽤 자주 왔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조금씩 비가 떨어지던 날이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려고 보니 배차시간이 너무 긴 터라, 학교까지 30분을 걸어갔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이미 몇몇이 도착해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흥미로운 문화 차이가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비가 쏟아질 만큼 와도 리얼 캐내디언들은 후드나 캡 모자를 쓰거나, 그냥 머리 위로 맞고 다닌다. 한국에서는 보슬비만 내려도 다들 우산을 꼭 쓰고 다니는데 말이다. 한국인이라면 종종 들어봤을 '비 맞으면 머리 빠진다'라는 설화(?)가 널리 퍼져있어서 그런가 추측해본다. 한 번은 친구에게 왜 너네는 우산을 쓰지 않냐고 물어봤다. 생각 외로 정말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귀찮아서. 또는 비가 더럽다고 여기지 않아서 그런다고 하더라. 확실히 캐나다에서는 자연환경이 깨끗하다는 데에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예로 식수로 수돗물을 마시는 문화도 있다. 실제로 환경적 영향이 있었는지, 캐나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부가 엄청 좋아지기도 했다. 이것을 인식하고 난 후로부터는 비가 와도 결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캐나다 법을 따라야 하는 법. 아침에 비가 온다 싶으면 우산을 챙기는 대신 후드를 챙겨 입었다. 이전에는 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기선 비 오는 날씨가 조금 좋아졌다. 말하긴 웃기지만, 무심하게 쓴 후드 위로 비를 맞는 날에는 나름 캐내디언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는 곧 큰 버스를 함께 타고 거의 2시간을 달려 North Barriere에 도착했다. 점점 빗물이 거세지고 있었다. 비가 엄청 내리는데 호수 한가운데서 카약을 탄다고 하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2시간을 버스로 달려온 게 아까워서라도 타고 싶었다. 챙겨 온 여분의 옷을 입고 보트를 탈 채비를 했다. 



안개에 반쯤 가리어진 산, 그리고 그 아래 깔린 호수,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졌다. 비가 오지 않았어도 좋았겠지만 그러면 반대로 이 장관을 보지 못했겠지. 사실 당시에는 그 순간을 즐기느라 뭐가 어떻든지 말든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내 눈앞의 멋진 풍경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카약을 타고난 후에는 비가 점점 약해지더니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는 해가 떴다. 점심을 챙겨 먹은 에너지 넘치는 영혼들은 하나 둘 공놀이를 시작했다. 캐치볼이나 배구나 피구를 했다. 나는 배구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함께 놀았다. 그러다가 옆집 캠핑카에 놀러 온 아이들이 합류해서 우리들과 승부를 냈다. 6살, 7살 배기 꼬마들인데도 나와 거의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이고 뭐고 이 악물고 배구공을 쳐냈던 기억이 난다. 비 온 뒤 해가 조금씩 들어선 잔디 위에서의 공놀이, 여유롭던 그날의 오후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가 즐겁게 아침과 밤을 맞이하고, 우리의 삶이 꽃이나 풀처럼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어 삶의 탄력이 더해지고 별빛은 더 찬란해 보이며 영원히 지속될 듯이 느껴진다면 성공한 삶이다. 자연 전체가 축하할 일이고 우리는 잠시 자신을 축복할 명분이 생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그때의 주변 환경과 우연에 기대어 일어난 일들은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었다. 순간순간이 찬란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내 눈 앞의 즐거움에만 오롯이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왜 캐나다에서의 나날들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는지 알 것만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1개월 하고 보름 정도가 지났다. 벌써 개강을 했고 학교생활을 적응하고 있다. 어째도 지루한 학교생활에 회의감이 드는 이때에 나는 다시 회상 일기를 쓰고 있다. 처음 회상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던 때는 8월의 한가운데였다. 그토록 싫어하던 매미소리가 저물고 어느 정도 쌀쌀한 바람이 분다. 워낙 여름을 싫어하는 나는, 후덥지근한 날씨와 함께 매미가 엄청나게 울어댈 때에 도대체 언제 가을이 오려나 떠올려보았었다. 사실 이 생각은 매미에게도, 태양빛에게도, 궁극적으로 나에게 별 이득이 되지 않는 생각이다. 내가 불평을 놓는다고해서 8월의 매미는 조용해지지도 않았고, 뜨거운 여름 햇빛에 그늘이 지지도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내가 싫어했던 그것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 하고 있었고, 나는 정작 '가을은 언제 오나'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을은 올 텐데 말이다. 당시의 나는 할 일을 미루면서 더 나은 날씨와 환경만을 바라며 실존하는 현재를 멀리 미뤄왔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을 다하며 울어대던 매미보다 내가 더 못난 생명체였다는 걸 이렇게 또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만약 내가 카약을 탔던 그때에 더 나은 날씨가 아니었음을 원망하며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항상 되돌아오는 진부한 '현재를 즐기자'는 생각이 옳음을 수백 번 깨달았음에도 망각의 동물인 나는 일기를 쓰며 또다시 새겨낸다. 내가 지금 어떤 꿈을 꾸든, 어떤 미래를 그리든 간에 지금 이 순간은 단 한번뿐인 때이고, 무얼 하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다시 새겨본다. 


그래!

그러니까 과제하러 가자.



꼬마들과 만나서 친구들과 함께 배구한 곳. 높게 솟은 나무가 아주 멋졌구나.


귀여운 꼬마들과 학교 친구 두 명. 너네 진짜 귀여웠어!



매거진의 이전글 길 잃은 자의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