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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진 Aug 24. 2019

길 잃은 자의 자세

그 길은 곧 새로운 길이 된다

캐나다 도착 후 3일 차에 있었던 일이다. 기대되는 첫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캐나다까지 인솔해주신 선생님이 캐나다 대학교에서 나의 한국 학교로 곧 교환학생을 오는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첫 캐나다 친구들과의 만남이라니! 꽤나 기대되는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학교 수업은 대체로 오후 3시 반이면 마쳤기 때문에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나름 넉넉하였고, 그전까지 나는 학교 근처 마트에 잠깐 들르기로 하였다. 1층만으로 넓직한 마트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러 약속시간에 임박하였다. 그런데 어떡하나, 한국에서 사 온 유심칩이 먹통이 되어 데이터를 쓸 수가 없었다. 약속된 장소로 가려면 구글맵이 필요했고, 구글맵을 사용하려면 학교로 돌아가서 와이파이를 연결하는 방법뿐이었다. 장본 것들을 이리저리 급하게 가방에 쑤셔 넣고 마트를 나와서 학교로 전속력으로 돌아갔다. 선선한 날씨였지만 땀이 삐질 났다. 학교 입구까지 어찌 도착했지만 와이파이를 쓰려면 학교 안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아득하게 먼 길을 가는 사이에 이미 약속시간에 늦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나에게는 레스토랑 이름과 레스토랑이 학교와 가깝다는 정보가 있었다. 아 그러면 이렇게 해볼까? 생각을 바꾸어보았다.



솔직히 조금은 두려웠어


'그냥 길 가는 사람한테 물어볼까? 구글맵 한 번만 쓰게 해 달라 하면 안 될라나?'

내 안의 도전정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곳에 온 지 3일 차 밖에 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본다는 데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 캐나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약속 시간에 늦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일단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고, 대충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생각을 했다. 방과 후 시간이었고 애초에 땅이 무지 넓다 보니 사람이 적은 길인데 저 멀리 두 명의 여자가 걸어왔다. 내 또래 나이 정도의 학생인 것 같았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Hey Excuse me,

Can I ask you something?"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로 시작했던 것 같다. 이어서, "내가 어떤 식당에 가야 하는데 데이터를 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데 너의 구글맵을 쓸 수 있겠니?"라고 했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일단 내가 위기상황(?)이라는 걸 알리고 자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말이 그냥 막 나왔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명의 친구 중 한 명의 휴대폰으로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레스토랑은 정말 코 앞에 있는 곳이었고 충분히 약속시간 내에 걸어갈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내뱉고 가려고 하는데, 그 두 친구 중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얘가 가다가 또 길을 잃으면 또 물어봐야 하니까 함께 가주자"라고 하였다. 그들과 내가 만난 지점에서 식당까지 단 5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들은 나를 위해 한 바퀴를 빙 돌아가는 수고를 감수하고서 길을 찾아주었다. 그들의 배려심에 정말이지 감동한 나는 "Thank you"와 "You are so nice"를 앵무새처럼 연발하며 함께 걸어갔다. 길을 걸으며 나는 여기 도착한 지 3일 차고, 4주간 이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거라는 TMI까지 흘겼다. 이런저런 아주 소소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얼마 되지 않아 두 친구와 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헤어졌다. 사실 그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름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나에게 기꺼이 베푼 친절과 배려는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아직 남아있다. 이 사건을 시점으로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나의 막무가내 말 걸기 스킬은 점점 늘어나서 이후 기억에 남을만한 재밌는 순간들을 만드는 데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두려움이 오는 순간은 가장 좋은 시작점


내가 만약 그때 말을 걸지 못했다면? 저녁 약속시간도 늦었을 것이고, 두 친구와의 기분 좋은 추억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말을 걸기 전에 느꼈던 불안과 막막함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두려움을 길게 끌지 않고 그냥 시도했다. 심지어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배려를 선물 받게 되었다.


 두려움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를 알려주는 것 같다. 지금 브런치 글을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 7월 말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교환학생 신청을 위해 IELTS 시험을 준비하다가 1주 전쯤 시험을 취소하였다. 실력이 부족한 나 자신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시험공부가, 임박하는 시험날짜가 나를 옥죄였기 때문이다. 한 번 쳐보는 데에 의의를 두자고 하기엔 25만 원이라는 시험비용이 부담되기도 했다. '못 먹어도 Go'하지 못 한 나 자신을 외면하며 며칠을 빈둥거렸다. 분명 나는 두려웠다. 원하는 점수를 받고 싶은데 돈만 날리면 어쩌지? 시험을 취소한 후 밀려오는 해방감은 짜릿했지만 나의 일과에 뭔가를 채우고 싶었다. 시험 취소 후 백수가 되었다는 두려움은 나를 브런치 작가의 길로 인도하였다. 끝까지 시험 준비를 했었다면 물론 좋은 경험이었을 테지만 나는 그 기회비용으로 해방감과 25만 원을 얻었으니 시험공부를 미룬 후회는 이쯤 멈추고 싶다.


사실 그동안 너무나도 캐나다를 그리워했다. 시험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 또한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으로서의 영어와 시험공부로서의 영어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소통으로서의 영어로 한 달간 즐거운 추억을 쌓아놓고선, 지루한 공부로서의 영어로 바로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쓰고 보니 지금 내가 캐나다 회상 일기를 쓰는 이유가 명확해져 간다. 내 생애 가장 멋졌던 순간들을 잊기 전에 꾹꾹 담아두는 일, 지금 아니고서는 못하는 일 아닐까.



두 친구와 만났던, 내가 용기를 내었던 장소이다.
여전히 구글맵을 쓸 수 없었던 나는 저녁에도 길을 잃어 머나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길을 잃었기에 멋진 풍경을 본다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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