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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진 Aug 22. 2019

홈스테이 첫날의 악몽

예상치 못한 고양이 털 사단


연착을 포함하여 약 2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이 곳, 캐나다. 광활히 펼쳐진 하늘이 나를 반겨주었다. 유독 비행기 안에서 잠을 푹 잤고, 두 번의 비행기 연착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나거나 불만이 생기지도 않았다. 출발이 좋았던 셈이다. 뭐 모든 일이 그렇듯 몇몇 성가신 순간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밴쿠버로 가는 비행기에서 근처에 앉은 아이가 몇 시간 동안 우는 바람에 조금 지쳤었고, 미리 채식 기내식 신청을 하지 않아서 밥은 거의 굶다시피 한 채로 도착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게 깨끗하고 넓은 하늘을 마주하는 순간 모두 잊혀졌다. 사실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에는 내가 지내게 될 공간이나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하다 못해 캐나다 생활은 어떨까, 홈스테이 집과 가족들은 어떨까 등등 한 번쯤 상상해볼 만한 것들에 대해 그다지 깊게 고민하거나 기대감에 부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어서 더 그랬던 걸까?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가히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차라리 악몽이길 바라


밴쿠버에서 캠룹스까지 1시간 반 가량 비행기까지 타고 나서야 드디어 홈스테이 가족과 마주하였다. 홈스테이 맘과 10살 딸아이와 아이의 친구가 나를 마중 나왔다. 한국에서 홈맘과 이미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긴 했지만 실상 초면이기에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홈맘의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였다. 3층짜리의 조그만 복도식 빌라 형식의 집이었다. 열쇠를 문을 열고 집에 도착하였는데, 나는 다소 놀란 구석을 숨길 수 없었다. 집의 위생상태 때문이다. 집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바닥에 아무 데나 놓인 장난감들과 엄청난 고양이 털이었다. 화장실 세면대에는 머리카락을 대충 닦아서 그대로 둔 수건, 널브러진 화장품들이 무결하게 놓여있었다. 혼자 쓰는 내 방은 다소 정돈되어 보였지만 침구류를 포함한 온갖 가구 위에 고양이 털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사실 나는 이미 고양이 두 마리가 사는 집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심지어 고양이들과 같이 지낸다는 사실에 들떠있었지만 고양이 털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홈스테이 맘이 내게 사용할 타월을 주었는데 그 타월에는 정체모를 갈색의 이염이 군데군데 되어있었다. 그 갈색 이염의 정체는 추측건대 고양이 똥 같았다... 차라리 고양이 똥이길 바랐다. 그렇게 홈스테이에 도착한 후 단 몇 분만에, 이곳의 위생개념은 내가 줄곧 믿어오던 것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멍한 상태. 그게 다였다. 이미 대학교 자체에서 매칭 된 홈스테이이고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구와 침구를 어느 정도 닦아내고 짐을 풀었다.


일단 너무 피곤하니 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욕조에 들어서서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돌려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방향으로 수도꼭지가 돌아가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욕조의 하수구는 막혀버렸고 복숭아뼈까지 오는 비눗물을 첨벙이며 샤워를 끝냈다. 이후 홈맘에게 물어보니 욕조 물은 천천히 내려간다고 했다. 이외에도 발 닦는 용 수건이라도 어떻게 저렇게 더러울 수 있을까, 그걸 또 어떻게 얼굴과 몸에 사용하는 수건과 함께 걸어둘 수 있을까 등등 차마 친구에게 말로 꺼내기에도, 지금 여기 글로 쓰기에도 무례한 생각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도착한 이날은 7월 1일, 캐나다에서 꽤나 큰 축제 날인 캐나다 데이였다. 하나 집의 강력한 첫인상에 충격을 받아 기가 빨리다 보니 피곤함이 몰려왔고, 결국 캐나다 데이 축제를 즐기지 않고 홀로 남겨진 집에서 저 멀리 터지는 불꽃놀이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보냈다.



돌아보니 인생사 새옹지마


사실 캐나다에서 처음에 적응하기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도 인간관계도 아닌 홈스테이에서의 위생상태이다. 머문 지 2주에서 3주 정도 지나서는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더라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초반에는 피치 못할 문제가 있다면 상담 후 홈스테이 변경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담당 선생님과 상담까지 했지만 결국 바꾸지는 않았다. 힘들었다면서 왜 바꾸지 않고 버텼을까 생각해보면 일단 홈스테이를 바꾸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다시 짐 싸기,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왜 바꾸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등-이 귀찮았던 게 크고, 홈스테이 가족들이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것에서 만족을 하고자 했다. 만약 옮긴 곳에서 아무리 집이 깨끗하더라도 집주인이 내게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다른 장점도 있었는데, 따뜻한 물 샤워를 위해 쾌적한 학교 수영장을 다녔고 매일 저녁 수영도 하고, 따뜻한 물 샤워도 하는 1석2조의 결과를 얻었다. 몇 주 뒤 집에도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첫 2주까지는 잠옷에 묻은 고양이 털을 떼어내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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