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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Aug 21. 2018

난 아직도 엄마가 필요하다

30대 중반, 결혼 7년차의 마마걸 이야기


아이들이 잠든 밤, 설거지를 끝내고 잠시 소파에 몸을 뉘였다. 귀 언저리가 아릿했다. 귀에 딱 붙어 착용한지도 잊고 있었던 작은 귀걸이가 소파 팔걸이에 닿은 때문이었다. 겨우 고개를 들어 귀걸이를 빼면서 고민했다. 몸을 일으켜 제자리에 갖다두고 다시 와 누울 것인가, 아니면 누운 채로 손이 닿는 가능한 한 가장 먼 구역에 잘 놔두고 내일 아침까지 이 한 쌍의 꼬맹이들이 무사히 옥체보존하고 있길 기대할 것인가.


당연히 난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당연히, 분실했다.

 

그 날 난 소파에서 잠들어 다음 날 아침까지 딥슬립 해버렸고, 먼저 일어난 아이들이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놀아제낀 탓에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불현듯 떠오른 귀걸이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한 짝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소파 부근 위 아래를 빠르게 스캔해 봐도 나머지 한 짝은 온데간데 없었다.


둘 중 하나였다. 바닥으로 떨어져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 갔거나, 아님 소파 등받이와 좌방석 틈 사이로 들어갔거나.


먼저 나는 재빨리 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몸을 숙여 소파 밑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작은 귀걸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이쪽 저쪽 눈을 굴려봐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 남은 유력한 귀걸이 은신처는 소파 틈새다. 소파 틈 사이에 손을 넣는 행위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일 Top 5 안에 들 것이 분명하다. 기껏해야 먼지나 과자 부스러기, 또는 애들 장난감이나 작은 문구류 정도가 만져질 텐데 손 끝으로 전해질 그 느낌이 너무 끔찍하다. 그러다 그 두려움은 마치 벌레라도 만져질 것 같은 공포로 번진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손을 넣어 휘젓는 공포는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리는 로마 '진실의 입'에라도 손을 넣는 양 소름이 돋는다.



"마!"


어김없이 나는 엄마를 부른다.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던 엄마가 물끄러미 나를 본다.


"소파에 귀걸이 들어갔나봐. 손 좀 넣어서 찾아줘봐."

"뭐? 너가 찾아. 니 물건 간수를 그렇게 못하면 어떡하냐."

"안돼 엄마, 나 너무 무서워. 엄마가 좀 찾아줘. 제발, 제발!"

"됐어. 별 걸 다 시켜. 이번엔 니가 찾아. 니가 나이가 몇 살이냐?"




여행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집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던 집순이가 나다.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생활, 직장생활까지 난 가족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살았다.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 가보지 않은 토종 한국인으로 단 한번도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나이 서른에 결혼이라는 걸 하면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지게 됐고, 친정과 무려 오십 킬로미터쯤이 떨어진 곳에 신혼집을 얻었다.


하지만 다행히 하늘이 날 도왔는지 엄마는 내가 결혼한지 정확히 열 달 뒤에 우리집 옆 동네로 이사오셨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자동차로 십 분 내지 십오 분이면 넉넉히 문앞까지 도착한다. 우린 이제 넓은 의미의 이웃사촌 쯤은 된다. 그래서 우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지낸다.



엄마가 이사오신 후 아직은 신혼 때의 일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화장을 사용하고 나서 변기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아직은 서로에게 신비감이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아직 난 그런 민망한 못 볼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새댁이었고, 막힌 변기를 뚫어본 경험이 없는 무지렁이였으며, 심지어 당황지수가 급상승해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휴대폰이 내 손에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엄마!"

"응.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변기가 막혔나봐. 안 내려가... 와서 좀 뚫어줘. 흐엉..."

"얘가 뭐래. 이서방 없어?"

"있으니까 이러지. 최대한 침착하게 태연하게 티 안나게 처리해줘. 변기 막힌 거 절대 말하면 안돼! 너무 쪽팔려."

"으이구, 내가 너 안 미우면 사람이 아니다."


이른 아침 나의 긴급호출로 엄마가 헐레벌떡 우리집을 방문했다. 어머님,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놀란 신랑의 물음에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아니 이서방, 별거 아니야, 그냥 와봤어, 아하하, 하며 화장실로 직행한 엄마. 화장실에서 나가지도 못하던 나는 엄마의 너무나도 티나는 로봇스러운 대처에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나를 구원해줄 메시아라도 온 양 든든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강력한 막힘에 결국 엄마도 해결사가 되어주진 못했고, 모든 상황을 손수 정리한 신랑은 아직도 그 때 일로 가끔 나를 놀려먹곤 한다.)




엄마는 시집 간 막내딸의 바로 옆에서 위급상황 발생시마다 번개처럼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였고, 그건 결혼한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변기를 뚫어본 일은 엄마도 몇 번 해보지 않아 능숙하진 않지만 내가 부르면 즉시 달려와 주었던 것처럼. 두 아이를 키우면서 친정엄마의 손이 필요한 그 어느 순간이라도 나타나 내 손과 발이 되어준다. 흔히들 말하는 '친정찬스'나 '엄마찬스'는 어쩌면 나에겐 일상과도 같다.


친한 육아동지들은 나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고 한다. 친정엄마가 근처에 살면서 육아와 살림을 도와준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라고도 한다. 나도 안다. 엄청나게 큰 행운이라는 걸.


하지만 엄마가 내 옆에 산다는 건 때때로 내게 뼈 아픈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애 둘 키우는 게 아직도 버거운 나 때문에 그 고왔던 엄마의 얼굴에 주름이 느는 것 같고, 나 때문에 엄마의 관절 여기저기가 아픈 것 같다. 엄마가 나와 가까이 살지 않았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더 편히 살 수 있었다면 더 곱게, 더 젊게, 더 건강하게 사실 수 있을지 모르는데. 괜히 내 옆에 살면서 나를 도와주느라 더 예쁘고 멋있게 살 기회를 놓치고 계시는 건 아닌지.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엄습한다. 정작 엄마 당신은 혼자 외딴 섬처럼 사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느끼는 자책감은 그것과는 별개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엄마에게 더 의지하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막내딸을 보며 엄마 스스로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느끼실 수 있게. 엄마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잊지 않으시게. 난 아직도 엄마가 필요하고, 엄마 옆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반대로 엄마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난 알기에. 그게 내가 홀연히 '독립'해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난 엄마 앞에서는 아직 한없이 어린애이고 싶다.




카톡


첫 아이 학원 데려다주느라 잠시 밖으로 나와 있는데 메시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에서 엄마한테서 온 사진 한 장. 작은 귀걸이 두 짝이 나란히 반짝인다. 소파에 손 넣으니 바로 잡히는데 그걸 못 꺼내냐는 정감 어린 핀잔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빙긋 웃음이 난다. 


아직도, 난 엄마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절실히.




2018년 8월

조금은 시원해진 바람과 함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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