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마도 영원히 그리워 할.
오전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수영을 다녀왔다. 늘 공복으로 수영을 하기에 집에 돌아오면 허기가 극에 달하는데, 요즘은 접영을 배우느라 체력소모가 더 크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친 몸으로 주린 배를 달래며 '아점으로 뭘 먹을까' 경건하게 고민하며 차를 몰았다.
공복의 거친 운동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나의 몸은 강렬하게 인스턴트를 원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방 수납장을 열었다. 진라면이나 오징어짬뽕 같은 국물라면이 먹고 싶었지만 하필 다 떨어지고, 짜파게티와 비빔면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오늘은 국물 필인데...
할 수 없이 비빔면 하나를 내려 냄비에 물을 얹었다. 그러다 불현듯, 늘 비빔면 하나는 뭔가 부족했던 본능적 감각이 떠올랐다. 오늘의 이 극한 허기의 상대로 비빔면 한 개는 어림도 없었다. 다시 수납장을 열어 비빔면 하나를 더 내리고 냄비에 물도 더 부었다. 물이 끓는 동안 우리집 그릇 중 제일 큰 냉면기를 꺼내 비빔장을 미리 붓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빌' 준비를 했다. 내 인생 최초로 비빔면 두 개를 끓여 먹을 생각에 몹시 신이 나 있었다.
펄펄 끓는 물에 면을 익히고 재빨리 채반에 받쳐 찬물로 정성껏 헹궈냈다. 비빔장을 미리 부어놓은 냉면기에 면을 조심스레 건지고, 채반에 붙은 면발 한 줄기, 작은 부스러기까지 남김 없이 옮겼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먹기만 하면 되었다.
오늘따라 양 많은 비빔면.
막상 산처럼 쌓여있는 비빔면을 보니 다소 낯설고 이상해 보였다. 양이 많아서 그런가. 희한하네. 하는 생각에 어쩐지 곧바로 먹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조금 주저했다.
그러다 오늘도 역시나 그 분이 떠올랐다. 비빔면을 먹는 날이면 결국은 내가 떠올릴 수밖에 없는 단 한 사람.
회사를 다니던 몇 년 전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상품의 런칭 방송이 성공적으로 온에어 됐고 관련자들끼리 회식자리에서 거나하게 한 잔 걸쳤던 그 날. 여흥을 뒤로 하고 올라탄 택시에서 나는 나의 귀갓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에게 귀가 보고를 위한 전화를 걸었다.
- 어어, 그래, 며느리구나. 이 시간에 무슨 일이고.
며느리라고? 맙소사.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경상도 말씨의 조금 놀란 듯한 음성은 내 귀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분명 나의 시아버지의 그것이었다. 머리털이 쭈뼛. 눈을 부릅뜨고 휴대폰을 다시 확인해보니 친정엄마의 저장 이름인 '아름다운 엄마'가 아니라 그 바로 밑에 저장되어 있던 '아버님'이었다, 세상에.
- 아, 하하하, 아버님, 저예요. 안 주무셨어요?
큰일이다. 톤이 한껏 올라가 있는 목소리가 내 귀에도 몹시 이상하게 들릴 정도였다. 아무리 정확하게 발음하려 해도 한껏 꼬부라진 혀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뻣뻣했다. 취기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망했다. 신혼의 어린 며느리가, 자정이 다 된 야밤에, 시아버지에게,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전화질이라니.
- 아버님 제가요, 퇴근하고 잠깐 회식을 했는데요, 그, 그냥 한번 전화 드려봤어요. 하하하. (잠시 정적) ...주말에 찾아 뵐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어떻게 수습을 했는지, 인중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꽐라'가 될 정도로 인사불성은 결코 아니었는데. 알코올이 침투한 손가락의 삑사리가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연락처 목록에 '아름다운 엄마'와 '아버님'이 붙어 있어서!
주말에 찾아 뵌 아버님은 잔뜩 어색한 표정의 나와는 달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 주셨다. 나만 안절부절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버님은 엷은 미소로 슬며시 몇 마디를 툭 던지셨다. 요새도 일이 많제?그래도 쉬엄쉬엄 천천히 하그라. 몸 상한다.
취기 오른 며느리의 명백한 실수였음을 모르셨을 리가 없었음에도, 아직 시부모님이 마냥 어렵기만 했던 '새아가'의 마음을 온온하게 녹여 주시던 그런 분이었다. 갓 시작한 결혼 생활, 낯선 시댁의 분위기에 잔뜩 얼어있던 며느리를 항상 우주처럼 넓은 세상으로 감싸 주시던 그런 분이었다.
나의 시아버지는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팔도 비빔면을 즐겨 찾으셨다. 그러다 한여름이 되면 거의 매일에 가까운 많은 나날의 야식을 비빔면으로 드셨다고 했다. 내가 결혼했던 그 해 여름에도 아버님은 비빔면을 찾으시는 날이 많았다. 일을 마치고 주무시기에 앞서 슬며시 입이 궁금해지면 어머님께 비빔면 한 그릇을 부탁하곤 하셨다. 하루는 시댁에 방문해 있던 내가 어머님을 도우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 어머님, 오늘은 제가 끓일게요.
- 아냐. 너희 아버님 드릴 건 내가 챙겨야 돼. 나중에 너도 너희 신랑 끓여줄 때 이렇게 해. 그대로 내지 말고, 고명이랑 양념을 좀 얹어서 더 맛있게...
솜씨가 좋으신 시어머니의 손과 입이 분주했다. 요리와 설명이 동시에 빈틈없이 이루어졌다. 면은 한 개 반을 삶고, 식초와 설탕과 참기름을 가미해 새콤달콤함과 고소함을 더하고, 오이는 채를 쳐서 무채와 함께 올리고, 때로는 삶은 계란을 곁들여 참깨로 마무리. 어머님의 야무진 손끝에서 나의 초라한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럴싸한 요리'가 뚝딱 탄생했다. 살림 초보 새댁이었던 내게 그 과정이 한 번에 입력되진 않았지만 그 후로도 여러 번 보고 들어 어머님의 '아버님 비빔면 레시피'는 저절로 숙지되었다. 어머님의 정성된 비빔면 한 그릇은 인스턴트 간식 그 이상의 의미였고, 아버님은 그 정성과 애정을 기쁘고 맛나게 잡수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런 성품을 가진 분이 실존하는 구나 하며 내가 진심으로 존경했던 그 분. 행여 며늘아기가 불편할까 싶어 먼저 배려해주시고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시던 그 분. 평소엔 엄하고 말씀이 많지 않으셔도 당신 아들보다 며느리인 나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표현해 주시던 그 분.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이것도 내 복이구나 싶어서 늘 감사했던 그 분.
하지만 무엇이 그리 급하셔 그토록 젊은 연세에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셨는지 모를 그 분의 '최애 간식'은 단연코 비빔면이었다. 당신이 느끼시는 정확한 간식 순위는 모르나, 적어도 내가 보고 느끼기엔 그랬다.
가족이 된 지 4년, 그리 허망하게 가실 줄 알았다면 멋들어지진 않아도 그 좋아하시던 비빔면 한 그릇 내 손으로 쓱쓱 비벼 대접해 드릴 걸. 맛은 좀 어설퍼도 당신 특유의 소리없는 미소로 흐뭇하게 잡수셨을 것을. 부질없는 후회로 두고두고 마음 아픈 못난 맏며느리, 당시에는 유일했던 며느리가 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비빔면을 먹을 때면 반드시 내 머릿속을 스치고 마는 유일하고도 당연한 그 분.
영원히 그리울 그 분.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산산이 흩어졌다. 그렇게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이내 젓가락을 들었다. 허나, 넉넉히 담겨져 있는 두 개의 비빔면은 당혹스럽게도 한 개를 끓여먹던 맛과는 달리 신통치 않았다. 면이 많아 익히는 과정에서 불었나 했지만 면이 불은 건 확실히 아니었다. 인스턴트 양념장의 맛이 크게 달라졌을 리도 만무했다.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입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그런 맛이었다.
평소처럼 한 개만 끓여 아쉽게 먹을걸 그랬다 싶었다. 줄어드는 면발을 아까워 하며 야금야금 아껴 먹을걸 그랬다 싶었다. 그 와중에 짐승처럼 배는 고파서 무미의 비빔면을 꾸역꾸역 입 속에 쑤셔넣었다.
오늘 공복에 먹은 푸짐한 비빔면은 의외로 그저 그랬고,
간만에 다시금 서글펐다. 애꿎은 양 탓을 했다. 두 개라서 그렇겠지. 미련하게 두 개나 끓여서.
입맛은 쓰고 가슴은 시렸다.
2019년 늦겨울
그 음식에 각인된 그 인연을 떠올리며,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