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갇혀있기엔 너무 컸던 창업의 꿈
#1. "아버지는 뭐하시니?" 로 시작한 회사생활
2019년 여름,
26살이던 나는 아는 분의 추천을 받아 한 유통회사에 신입 마케터로 취직했다.
"아버지는 뭐 하시니?"
형식적인 면접에서 회사 부회장님이 하셨던 질문이다.
'아직도 이런 질문을 하는 곳이 있다니..'
나름 유명한 회사의 계열사였음에도 두서없던 면접처럼 회사 전체 시스템이 주먹구구식이었다.
중소기업이라도 배울 건 있을 거라며 작은 기대를 걸어봤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7개월 만에 큰 병을 얻어 퇴사를 하게 되었다.
신입이기에 딱히 중요한 일을 맡지 않았음에도 정시에 퇴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무언가 일을 시켜서 열심히 해놓으면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신입사원부터 부장님까지 전부 임원과 오너의 비위 맞추기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듯했다.
마치 이곳은 성장도 꿈도 목표도 없는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그저 내 젊음의 시간과 얼마 안 되는 돈을 맞바꾸고 있는..
#2. 뭉게구름을 보고도 우울한 건 퇴사각의 신호!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봤는데 아주 예쁜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있었다.
예쁘다고 사진을 찍고 있는 와중에도 내 마음이 너무 우울한 게 느껴졌다.
'아, 진짜 이렇게 사는 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구나'
실제로 일이 끝나고 집에 가서 죽고 싶다며 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들은 그냥 평범하게 잘만 다니는 회사를 나는 너무 유난을 떤다는 부모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일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부터 일어나는 순간까지 다음과 같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남의 배를 불리기 위해(그것도 이미 충분히 돈이 많은 회사를 위해..)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니!
이 자원을 내 사업에 쓰면 정말 중박이라도 나겠어!
난 여기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일을 하기엔 너무 아이디어와 재능이 많아!
그렇게 퇴사할 타이밍을 재보던 중 한 달에 한 번 그날마다 심한 통증과 빈혈에 시달리게 되어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3. 난소에 10cm 혹이 생겼네요. 당장 수술해야합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건 뭐 하기 싫어도 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양쪽 난소에 각각 5cm가 넘는 낭종이 생겨 두 난소가 붙어버리게 된 응급상황이었다.
나는 회사에 즉각 퇴사 의사를 밝히고 형식적으로 마지막 한 달을 버틴 후 바로 요양에 들어갔다.
결국 로봇 복강경술을 통해 수술을 했고 3개월은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이렇게 살다간 수명만 단축될 듯싶어
지금부터라도 당장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4. 몸이 아파도 칼질할 때는 아픈 줄 모르겠어
사실 나는 회사 생활 내내 주말마다 가죽 공방을 다니며 가죽공예를 배우고 있었다.
이전에 핸드백 제조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가방을 만드는 과정이 어찌나 재밌어 보이던지.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며 가죽 브랜드를 창업하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다.
다만 가죽공예는 수강료 뿐만 아니라 재료비 자체도 다른 공예에 비해 너무 비싸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술 후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수업에 가면 너무 재밌어서 아픈 줄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가지 않는 날에도 집에서 연습을 하며 수업 날만 기다렸다.
가죽공예는 힘이 약한 여자가 하기 힘든 과정이 참 많다.
칼질, 본드칠, 망치질 등 힘도 많이 써야 하고 험하고 위험한 과정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난 생기가 넘쳤다.
몸이 안 좋으니 갔다 와서 3-4시간을 뻗어있었는데도 행복했다.
그때 알았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와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일인지가 나를 버티게 해준다는 것을.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