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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Aug 10. 2020

버드맨, 나르시스

나는 꿈꾸는 얼굴과 현실의 얼굴이 항상 다르다. 하지만 언제나 고통에 일그러진 현실의 얼굴을 선택한다.


‘언캐니 밸리’라는 말이 있는데, 동물보다는 동물 인형에, 장난감보다는 토이 스토리의 캐릭터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처럼 인간과 닮아갈수록 호감이 가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갑자기 심하게 거부감을 느끼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나 <파이널 판타지>, 영화 <캣츠> 등의 실패 원인과도 밀접한 듯하다. 하지만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수준이 되면(스필버그의 영화 <A.I.>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처럼) 호감도는 극적으로 상승하여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 수준과 비슷해진다. 친숙함과 가까운 낯선 두려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어떤 얼굴을 꿈꾸는 나는, 어쩌면 이 환상 속의 얼굴이 더 낯설고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분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봤던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를 해석할 때 많이들 사용하는데, 단순하게 말하자면 존재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모티프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벗어나고 싶거나 어쨌거나 특정 자아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분리하여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바라보게끔 하는’ 장치다. 연극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인데, 아마 이러한 ‘인지’를 통하여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나의 선택을 이해하려는 것인지도, 혹은 구원을 꿈꾸는 것인지도.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영화 <버드맨>에서 비상이라는 은유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언제나 나는 ‘일그러진 현실의 얼굴’을 선택하기에, 주인공 리건(마이클 키튼)이 연극 무대 위에서 자신의 코를 총으로 쏘고 예기치 않게 살아남아 예기치 않던 호평을 받고 결국 극장 건물로부터 날아오르는 ‘비상’이, 이 영화의 제목이 ‘리건’이 아니라 ‘버드맨’인 이유가, 어떤 해방감을 주는 것 같아서다.

행복한 얼굴은 두렵고 낯선데, 그래도 그 표정을 자꾸 바라보고 싶은 복잡한 심경을 무척 길게 이야기했네? (머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생에 얻고자 하던 것을 얻었는가?
그랬지.
무엇을 원했는가?
스스로 사랑받는다 부르는 것, 지상에서 사랑받는 나를 느끼는 것.

-레이먼드 카버, 조각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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