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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Jan 28. 2019

써머의 여행 마그넷

사물일기 04

스물아홉의 써머가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서 마주한 것은 벽면 전체를 뒤덮은 마그넷이었다. 마치 하나의 아트워크 같은 광경이었다. 그때까지 써머는 컵이나 스노우볼, 열쇠고리를 모으며 여행을 기념했었다. 하지만 컵이나 스노우볼은 무거우며 깨지기 쉽고 보관하는 데에 부피를 너무 많이 차지했다. 스노우볼을 채운 물이 마를 때도 있었다. 열쇠고리는 가볍고 보관하기도 쉽지만 일단 넣어두면 꺼내 보는 일이 잘 없었다. 마그넷은 냉장고에 붙여두면 두고 보기에도 쉽고 가격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그때부터 써머는 마그넷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마그넷을 살 수 있는 곳은 다양했다. 특이했던 곳은 뉴욕의 록펠러센터 레고 플래그십 스토어였다. 레고스토어는 본사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전 세계 모든 레고스토어에서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직영 매장이다. 이곳에서는 해당 레고스토어가 위치한 도시가 레터링된 레고 피규어를 판매한다. 이곳에서 써머는 뉴욕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레고 자석을 하나 구입했다. 보통은 관광지에 꼭 있는 기념품 가게나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길거리 가판대, 동네 시장, 공항 등에서 마그넷을 구할 수 있다. 써머는 여행을 가는 도시마다 꼭 하나씩만 기념할 만한 마그넷을 골랐다. 지금 써머의 철제 서랍장에는 179개의 마그넷이 붙어있다. 


옛날에는 여권 도장에 집착했는데, 요즘은 잘 안찍어줘. 추억할 만한 도구를 찾았던 것 같아. 요즘에는 직구도 잘 되어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없는 게 없어.


써머가 마그넷을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선물을 고르며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떠올린다. 대부분 2천원에서 3천 원 정도 가격이고, 비싸도 8천 원 정도이기 때문에 주고받기 부담스럽지 않다. 미처 마그넷을 못 사왔던 도시에 가는 친구에게는 일부러 사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온 직장 동료가 카지노 칩 모양의 마그넷을 선물했다. 그날 써머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탁! 소리가 나며 자신의 컬렉션에 자석이 붙는 순간의 희열 때문이었다. 주변인들이 사주는 마그넷을 모으는 것에도 추억이 있고, 기념이 된다.  


써머는 여행지에서 마그넷을 사고 스스로에게 선물 한다.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인 셈이다. 새로운 공간에 존재한다는 상황을 기억하기 위한 도구로써, 특별한 탐닉의 대상으로써 마그넷은 그 시공간을 상징하며, 그 때 그곳에 있던 나와 지금의 나를 인식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그넷을 소비하는 것은 새로운 곳에 오게 된 것을 축하하는 방식으로 적절했던 것이다. 마그넷을 살 때 써머는 견고하고 품질이 좋은 것 보다는 촌스럽고 서툴고 어설프더라도 지역의 색깔이 묻어있는 것을 고른다. 그곳을 추억하기 좋은 마그넷을 고르는 것이다. 마그넷으로 추억하는 것이 사진으로 추억하는 것보다 재미있다고, 써머는 말한다. 


인도 갔을 때만 해도 필름을 인화하는 설레임이 있었는데, 메모리칩도 지금 가지고 있어. 지금은 스마트 시대가 되어서 사진이 있는데, 너무 접근이 쉬워서 재미 없지.

179개의 마그넷 중에 써머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개의 마그넷은 각각 샌프란시스코와 모리셔스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모으기 시작한 첫 번째 마그넷을 구입한 곳이었고, 모리셔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여행으로 신혼여행을 갔던 곳이었다. 신혼여행 전에는 남편과 한 번도 여행을 간 적이 없었던 써머는 머나먼 아프리카의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인 천차만별의 가격들 틈바구니에서 마음에 드는 마그넷을 찾느라 고생했다. 신혼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모리셔스 마그넷은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특별한 여행에 대한 증거를 남기고 싶은 것이다.


써머가 마그넷을 통해 증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경험이다. 써머가 다양한 국가와 도시를 방문한 경험의 순간을 작은 소비를 통하여 증거하기 위한 도구로 마그넷은 중요하다. 그렇게 써머의 마그넷은 사라지지 않는 어떤 느낌을  마음으로 기록한다.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으로서 마그넷이라는 물질을 수집하는 행위는 경험 수집을 보완하는 행위로서 적절하다. 써머는 결국 경험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써머가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갔을 때는 날씨가 많이 추웠는데, 기대하지 않던 행운을 찾았다. 기념품 가게를 발견한 것이다. 


너무 추웠는데 기념품 가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어. 종교시설이라 그런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딱 마그넷이 있는 거야. 성당 모양의 마그넷이. 그 따뜻함과 잘 어울렸어.


국내 여행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임진각 마그넷이나, 제주도에서 산 귤 마그넷은 생각지 못했던 디자인이었다. 누가 귤을 까놓은 줄 알았는데, 보통 마그넷에 도시 이름이나 랜드 마크가 그려져 있는 반면 특산품을 자석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신선했다. 누군가에게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면 제주도라고 반드시 이야기 할 것 같았다. 모아놓은 마그넷은 써머의 어린 조카들에게도 작은 즐거움이다. 마그넷 앞에 한참 앉아서 관찰하는 조카들의 모습이 못내 귀여울 터이지만, 아마 주지는 않을 것 같다. 


기억이지. 잊힐 수도 있잖아. 계속 보니까 좋아. 그 때의 기억이 나지. 상황들, 냄새나 소리 같은 것. 스페인에 가서 아침에 동네를 혼자 산책했어. 후렌치 후라이도 사먹고. 걸어 다니는데, 가게들이 서서히 문을 여는 거야. 엽서도 내놓고 신문도 내놓고. 설레더라고. 그때도 마그넷을 하나 샀어. 마그넷을 보면 그 순간의 기억이 나니까.
ⓒ 최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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