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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아카데미쿠스 Feb 03. 2023

생존을 걱정하는 대한민국 효자 상품, 화장품

화장품 업계에 오래 몸담고 있었지만 숫자를 들여다보고도 잘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의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은 나라를 먹여 살리는데 큰 몫을 하는 성장동력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업계 종사자라면 K-뷰티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성장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국내 화장품 시장이 완전 개방된 것이 1986년이다. 개방 당시에는 수입 제품의 국내시장 공략에 대한 불안감이 컸는데, 불과 30년도 안되는 사이에 전세계에서 화장품을 3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10여년 사이 국내 소비자들의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 커졌고, 이에 부응하여 수많은 업체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에 없던 유형의 제품들도 내놓고 하면서 시장의 크기가 커졌다. 그 덕에 2012년에 7조원이었던 생산실적이 매년 두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1년에는 17조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에 큰폭의 수출 증가를 보였는데, 2021년에는 9.6조원의 수출액을 기록했고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의 26.7%를 차지하는 효자품목이 되었다.


K-Beauty의 빠른 성장은 한국인 특유의 창의력과 다이나믹함이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K-Pop, K-Drama의 인기, 중국시장의 폭발력이 더해지고, 패션업계의 SPA 사업과 맞먹는 스피드가 받쳐주면서 이러한 성장이 가능하게 됐다. 고마운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대장금, 강남스타일, 기생충 등 K-컨텐츠에 고맙고,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가까이 있는 것도 고맙고, 세계 어느 국가와도 당당하게 어깨를 맞댈 만큼 우리나라의 국력을 키워온 선배 기업인들에게도 고맙다.


화장품 업계는 단기간에 큰 성장을 이루며 국가 차원에서 응원을 받을 만한 위치에 섰다. 반도체, 전기자동차처럼 육성정책을 펴 지원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혼자 잘 커서 국가 무역수지 흑자의 4분의 1을 넘게 책임지는 착한 효자다. 대견스러울만 하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개별 기업들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 이제 우리 얘기를 해보자.      


대공황(Great Depression)     


1929년에 미국에서 시작했던 대공황 이전까지만 해도 산업화된 서방국가들은 효율적으로 많이 만들어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생산성이 점차 올라가고 있었고, 따라서 이제 세상이 굉장히 풍요로워질 것으로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경제학자들도 경기 호황의 끝이 오히려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포디즘(Fordism), 테일러리즘(Taylorism)의 기여로 생산효율성은 극대화 되었으나 이것은 만성적인 과잉생산의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고, 결국 대공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은 OEM/ODM 업체들과 브랜드사들의 분업 체계가 자리잡으면서 극대화된 효율성의 이점을 누려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잘 자리잡은 이 분업체계로 인해 너나없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현상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고, 지금은 분명히 과잉생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집집마다 안쓰는 볼펜이 한웅큼 넘게 굴러다니듯이, 이제는 안쓰는 화장품이 넘쳐난다. 판매처를 아직 찾지 못한 기업도 몇천개에 달하는 MOQ*만큼 제품을 만들어서 쌓아놓게 되고, 사용기한이 남았어도 고객들이 집앞 방앗간에서 막 만든 것처럼 신선한 제품을 선호하니 팔지도 못할 제품을 또 만드는 악순환을 겪는 기업이 천지다.

* 최소생산수량(Minimum Order Quantity)


두렵다. 과잉생산의 끝이 뭔지는 역사가 이미 보여주고 있다. 


                                * 대공황 시기의 실업자 사진


전세계 8위 수준의 시장규모, 수출액 세계 3위, 무역수지 흑자의 26.7%를 차지하는 화장품 산업은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분명 매력적인 효자 산업이기 때문에 ‘K-뷰티 혁신 성장전략’이 보여주듯 G3를 목표로 큰 기대를 갖고 육성 정책을 펴갈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극심해진 경쟁과 과잉생산의 현실 속에서 개별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해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미 업계에 있는 기업들은 생존을 걱정하는 이 냉혹한 상황 속에서도 화장품 사업 성공스토리에 대한 밴드왜건 효과는 지금이 한창인 듯 하다. 2022년 한해에만 7,164개의 사업자가 새롭게 화장품책임판매업 등록을 해서 총 28,015개가 됐다. 


이제 곧 화장품 회사 3만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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