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면, 왜 두 동강 나지 않을까
스파게티 면, 왜 두 동강 나지 않을까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피에로 마리 퀴리 대학의 바실 오달리, 세바스찬 누커츠
Basile Audoly and Sebastien Neukirch of the Université Pierre et Marie Curie, in Paris
어른이 되면 좋은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어릴 때라면 엄마한테 뒤지게 혼났을 것들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죠.
아인슈타인과 투톱으로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도 어른의 특권을 적극 이용해서 하나의 역사를 써냈습니다. 파인만은 부엌에서 스파게티 면을 또각또각 부수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스파게티 면이 있으시다면 한번 부숴보세요. 손맛이 꽤 괜찮습니다. 그리고 부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다면, 파인만에 준하는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주시길 바랍니다.
스파게티 면을 구부려보면 어느 순간 그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똑 부러집니다. 파인만이 생각해봤을 때, 직관적으로는 스파게티 면이 두 동강 날 것 같은데, 면은 꼭 3조각 이상으로 부서지더랍니다. 파인만은 부엌에서 내내 마른 스파게티 면을 부러뜨리며 고민했지만, 그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과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봤지만, 이게 뭐라고 풀어내는데 수십 년이나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만만하게 볼 문제는 아니었던 거죠.
한참 뒤인 2005년, 프랑스의 과학자인 바실 오달리와 세바스찬 누커츠가 비밀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그 공로로 다음 해 괴짜들의 노벨상인,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소감에서 연구진은 ‘휜 스파게티를 놓으면 더 많이 휜다’ 고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들으니 이게 데체 뭔 소린가 싶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래 짤을 보시면 좀 더 이해가 될 거예요. 안쪽에 점선으로 그려진 원을 주목하세요. 원의 크기가 작을수록 더 많이 휜 것, 즉 곡률이 큰 것을 의미합니다.
스파게티를 휘는 건 면 양쪽에서 힘을 가하는 겁니다. 그런데 스파게티 면이 끊어지는 순간, 이제 한쪽은 갑자기 자유로워졌네요? 그래서 끊어진 쪽은 아주 빠르게 펴지려고 합니다.
면이 끊어지는 순간에는 면 전체가 같은 곡률로 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을 놓게 되면, 놓은 쪽은 아주 빠르게 펴집니다. 그런데 한쪽이 급하게 펴지면서 반대쪽은 오히려 더 꺾여버립니다. 논문을 살펴보면 자그마치 1.4배나 더 꺾인다고 해요. 이 과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스파게티 면은 보통 3~4조각으로 부서지는 거라고 합니다.
이거, 다르게 말하면 스파게티면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휘었다가 놓았을 때, 펴지면서 스파게티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이상으로 면이 부서지는 건 순차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첫 번째로 부서지는 순간과 그 다음 조각이 부서지는 순간 시간 차이는 정말 정말 적습니다. Smarter everyday라는 과학 유튜버가 부서지는 스파게티를 초고속 카메라로 봤는데요, 초당 4만 장을 찍었을 때 그제야 가까스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파인만은 1988년에 돌아가셨으니, 이만한 초고속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알아내기 힘드셨던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Secret of Snapping Spaghetti in SLOW MOTION - Smarter Every Day 127
연구진의 수상소감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당신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더 많은 돈을 돌려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내가 떠났다가, 엄마와 함께 올 수도 있다”며 더 큰 파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바실 오달리의 연구 목록을 보면 곱슬머리가 쳐지는 모양, 그리고 각종 매듭의 모양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집대성한 책, ‘탄성과 기하학 : 모발 컬에서부터 껍질의 비선형 반응까지’라는 책도 냈습니다. 이 책에는 곱슬머리가 자연스럽게 쳐져있는 모양을 비롯해서,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판, 껍질, 막대의 탄성에 대한 연구결과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연구들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컴퓨터 그래픽스나, 분자의 생체역학에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용실에서 어디까지 말아달라고 해야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웨이브가 나올지 완벽하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참고 자료
http://www.lmm.jussieu.fr/spaghetti/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