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의 무기는 귀여움이다
노벨상의 패러디, ‘이그노벨상’은 황당무계 연구 연보(Improbable Research)라는 하버드 과학 잡지사에서 수여하는 상입니다. 매년 10명의 ‘먼저 웃고, 그 다음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업적을 이룩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합니다.
노벨상과 인연이 없는 우리나라에도 수상자가 넷이나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민족사관고등학교 한지원 군은 '길을 걸을 때 커피를 들고 걸으면 반드시 넘친다, 해결책은 컵의 위를 잡고 뒤로 걷는 것이다.'라는 연구로 2017년 이그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연구 주제가 재미있죠? 이그노벨상에 대해 좀 더 와 닿게 쓰자면 ‘와, 진짜 미쳤다!!', 혹은 ‘헐... 미쳤네...’ 가 절로 나오는 업적을 이룩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자의 케이스로는 ‘맥주병으로 머리를 내려 치면 머리가 깨질지 맥주병이 깨질지’를 증명해서 평화상을 받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연구 결과, 맥주병으로 충분히 머리를 깰 수 있으며, 따지 않은 새 맥주병보다 빈 맥주병이 더 강하다고 하네요.
후자의 경우는 대량 석유 유출 사태로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다는 상식을 깼다'는 업적으로 화학상을 받은 영국의 BP사가 있을 텐데요. 이 사례도 다른 측면에서 좋아합니다.
이전에 이 흥미로운 상에 대해 소개하는 기사를 쓴 적 있습니다. 그러나 재밌는 부분이 너무 많다 보니 이 상의 매력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상하지만 멋있어..' 이그노벨상 상금 '10조 달러'
여기서는 기사에 담지 못했던 이그노벨상의 위트를 하나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이그노벨상을 수여하는 사람들은 긴 수상소감이 관객을 지치게 만든다는 걸 잘 파악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상을 받는 사람들의 수상소감을 단 ‘60초’로 제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해도, 제한시간을 넘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는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무기를 사용합니다. 바로 ‘귀여움’입니다.
수상자 등 연설가가 소감을 60초 이상 이야기하면 만 8세의 여자아이가 나와서 “그만해요, 지루해요”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이 아이는 ‘스위티 푸’라고 부르는데요. 느낌을 살려 번역하자 귀요미 응아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위 사진은 2009년 시상식에서 스위티 푸를 맡았던 아이가 맡은 바 역할을 다하는 장면입니다. 2009년 스위티 푸는 “그만!!! 해요!!! 저는!!! 지루해요!!!”라고 당돌하고 인상적으로 소리쳤습니다.
“그만!!! 해요!!!!! 저는!!!! 지루해요!!!!” 만약 “그만!!!” 수상자 “해요!!!!!”가 말을 계속 “저는!!!! 지루해요!!!!”하려고…“그만!!!!” 해도 도저히 할 수 “해요!!!!” 없… “지루!!!!” 겠죠. “해요!!!”
참고로 위 사진에서 쫓겨나고 계신 분은 수상자는 아니고, 시상식을 빛내주기 위해 연설을 준비해 온 키노트 스피커였습니다. 그래도 이그노벨상에서 모든 사람은 스위티 푸 앞에서 평등합니다.
그래서인지 수상자들은 60초 안에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 혹은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 해 낼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오는 것 같습니다. 맥주병으로 머리를 치면 머리가 깨질지 연구한 스테판 볼리거는 설탕으로 만든 촬영용 맥주병으로 자기 머리를 내려첬고, 칼 삼키는 묘기와 부작용에 대해 연구한 댄 마이어는 시상식장에서 칼을 삼키는 묘기를 직접 보여줬죠.
한편 스위티 푸를 위한 뇌물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젖소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한다'는 연구로 시상식에 참가한 피터 로빈슨은 젖소 인형과 우유 한 병을 준비했습니다. 뇌물을 받은 스위티 푸는 더 힘을 내서 “그만!!!!!!!! 해요!!!!!”라고 힘차게 소리를 질렀고, 피터 로빈슨은 두 손을 내저으며 퇴장했습니다.
데킬라로 다이아몬드를 합성한 자비에 모랄레스와 미겔 아파지카는 스위티 푸에게 커다란 멕시코 모자와 작은 데킬라 한 병을(!) 선물로 줬죠.
웃고 나서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이그노벨상의 수상작들처럼, 60초의 수상소감 제한시간과 스위티 푸 시스템도 사람들을 한바탕 웃게 만듭니다. 그리고 말리기도 뭐하고, 그냥 두기엔 부담스러운 긴 수상소감을 이그노벨상의 60초 수상소감과 스위티 푸가 얼마나 멋지게 이를 해결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말리기도 그냥 두기도 애매한 것들 투성이인 일상에서, 스위티 푸처럼 모두 웃으며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는 않을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The 17th First Annual Ig Nobel Prize Cerem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