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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Aug 20. 2018

임신부가 고꾸라지지 않는 진화적 이유

침팬지는 없는데 내게는 있는 것

어릴 적, 임신하신 친구 어머니의 배를 보며 '사람 배가 저렇게 커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도 임신부들의 커다란 배를 보면 지탱하고 다니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아이가 들어있는 큰 배로 다른 아이를 척척 돌보시는 분들을 보면 경외감이 들곤 합니다. 언젠가 제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저도 사랑스러운 배를 든든하게 지키면서 다니겠지요.


아기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기저귀부터 아기 밥, 쥐어줄 장난감, 유모차, 여벌 옷 등 한 보따리의 짐을 챙겨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기용 짐’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필요합니다. 대표적으로 아기가 안전하게 떠다닐 양수를 배에 같이 들고 다녀야 하죠.

 사랑스러운 임신부의 배, 그런데 정말 큽니다.

따라서 신생아의 평균 무게는 3kg이 조금 넘는 정도지만, 마지막 달이 되면 엄마의 몸무게는 임신 전보다 10kg 이상 증가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평균 6.8kg가 배에 집중된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무겁습니다. 큰 제철 수박 하나를 뱃가죽 안에 넣고 다니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무게 말고도 다른 문제점이 있습니다. 만약 6.8kg 더 무거워지고 튀어나온 배를 가지고 임신하지 않은 상태처럼 서있는 자세를 물리적으로 따져보면 앞으로 회전력을 받아 고꾸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무게중심이 몸 안이 아닌 몸 앞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발을 축으로 임신부의 몸이 앞쪽으로 회전하게 됩니다. 즉, 임신하기 전처럼 서있는다면 임신부는 매 순간 앞으로 엎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죠. 


임신하기 전처럼 서있다면 막달의 임신부는 앞으로 고꾸라집니다

그러나 임신부들을 보면 특유의 자세로 안정적으로 서있습니다. 이 자세를 신시내티대학의 캐서린 윗컴(Katherine K. Whitcome)과 하버드 대학의 다니엘 리버맨(Daniel. E. Lieberman), 그리고 텍사스 대학의 라이자 샤피로(Liza J Shapiro)가 파헤쳤습니다. ‘임신부가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를 말이죠.


왼쪽부터 다니엘 리버맨과 캐서린 윗컴. 출처:https://youtu.be/-dlkpBABDU8

앞으로 엎어지지 않기 위해, 임신부의 자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임신부의 자세를 따라 해 볼까요? 가슴은 그대로 두고, 아랫배를 앞으로 빼는 느낌으로 아래쪽 허리만 뒤로 젖힙니다. 해당 연구에서 임신부의 자세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엉덩이는 약 5.6˚ 틀어지며, 허리는 평균 18˚, 최대 28˚까지도 젖혀진다고 합니다. 이 자세가 바로 안정적인 임산부 평형의 비밀입니다.


이렇게 허리를 뒤로 젖힙니다




그런데 이 자세는 허리에 굉장히 무리를 많이 줄 겁니다. 특히 등과 가까운 쪽 척추 관절을 많이 누르게 되겠죠. 이 부분을 ‘후관절(Facet Joint)’라고 부릅니다.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 전보다 후관절에 무리가 훨씬 많이 갑니다. 임신부의 자세를 취하면 후관절이 받는 힘은 1.5배에서 2배 정도 더 증가합니다. 따라서 허리에 상당한 무리를 주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임신부들은 허리 통증을 달고 삽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여성의 요추는 남성과 두 가지 차이점이 있어 허리의 부담을 줄여줍니다. 참고로 요추란 허리 쪽 척추를 말합니다.

먼저 위 그림의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을 보시면 차이점이 보입니다. 남성의 경우 배 쪽과 등 쪽의 높이 차이가 없는 반면, 여성의 요추는 등 쪽으로 갈수록 좁아집니다. 즉, 쐐기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거죠. 둘째로 해당 자세를 담당하는 뼈의 개수가 다릅니다. 임신부의 자세를 취하면 남성의 요추는 두 개의 뼈가 앞으로 움직여 곡선을 만드는 반면, 여성의 척추는 세 개가 움직입니다. 이 덕분에 여성의 요추는 각각이 받는 부담은 줄이면서 전체 척추의 굽은 정도는 더 증가시킬 수 있게 됐습니다. 각 후관절이 받는 부담은 자그마치 30%나 감소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한 가지 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직립보행에 따른 진화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인 침팬지에게서는 성별에 따른 요추의 차이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침팬지의 경우 앞다리 두 개, 뒷다리 두 개를 이용해 4족 보행을 하기 때문에 임신했을 때 앞으로 엎어질 염려가 없고, 따라서 뒤로 몸을 젖힐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침팬지는 이런 최적화가 필요하지 않아요

반면 체중이나 태아의 크기가 침팬지와 크기가 비슷했던 최초의 직립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뼈에서는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성 요추는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며 위와 같이 최적화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직립 인류가 나타나며 요추의 구조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임신부의 허리 통증 해결은 굉장히 중요한 생존 요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성이 가지고 있는 쐐기 모양 척추뼈는 허리가 많이 아픈 임신부들이 포식자로부터 탈출하거나, 음식을 구하는 등 생존활동이 쉽지 않아 후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현재 우리 같은 척추를 가진 개체는 생존해낸 거죠. 


아직까지도 인간은 임신부 요통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진화한 척추뼈 덕분에 조금은 덜한 거라고 위로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Whitcome, Katherine K., Liza J. Shapiro, and Daniel E. Lieberman. "Fetal load and the evolution of lumbar lordosis in bipedal hominins." Nature  450.7172 (2007): 1075.


-Youtube: The 19th First Annual Ig Nobel Prize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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