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과 Jan 31. 2021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바꾸는 레시피

초보 연구자에게 찾아온 행운?

“저는 곧바로 생각했죠. 내가 기계를 망가뜨렸구나.”
-캘럼 올몬드의 TEDx 강연중


2015 이그노벨상 화학 부문

호주의 캘럼 올몬드, 콜린 래스톤, 미국의 그렉 와이즈 외




세상에 없던 연구결과가 나왔을 때, 과학자들이 언제나 “유레카! 신세계를 발견했다!” 라고 외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갓 연구실에 들어간 대학교 막학기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 캘럼 올몬드의 배경에 대해 잠시 얘기하자면, 그는 의사와 혈액학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 보니 올몬드 집안의 저녁식사 시간에는 T셀이니 ACG니 하는 어려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오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캘럼 올몬드가 과학자가 되기로 한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해부학과 생리학을 복수전공하는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올몬드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연구경험을 쌓기 위해 서호주 대학교의 래스톤 교수 연구실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래스톤 교수의 연구실에서 맡은 일은 ‘와류 유체 장치(vortex fluidic device) ’라는 장치였습니다. 와류 유체 장치는 래스톤교수가 발명한 장치로 시험관이 비스듬하게 놓인 채 빠르게 돌아가는 장치입니다. 시험관 안에 액체를 넣고 와류 유체 장치를 돌리면 시험관이 빠르게 돌아가며 액체가 시험관 벽을 타고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액체는 마치 필름처럼 시험관 벽에 얇은 막으로 퍼지게 됩니다. 만약 흑연을 와류 유체 장치 안에 넣고 기기를 돌린다면, 막이 얇게 펴지면서 흑연의 각 층이 밀려나, 흑연을 이루는 탄소의 단일막인 그래핀으로 펼 수 있습니다.



올몬드는 와류 유체 장치를 이용해 항암치료를 위한 새로운 약물을 설계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약효가 있는 비싼 단백질을 기기에 넣고 돌려야 했죠. 아직 실험이 서툴렀던 올몬드는 비싼 단백질을 기기에 넣고 돌려보기 전, 테스트로 계란에 포함된 흔한 단백질인 라이소자임을 와류 유체 장치에 넣고 장치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단백질의 상태를 분석해 보았죠. 그때는 밤이었고 올몬드는 혼자 연구실에 남아 있었습니다.


패닉되다


그러나 곧 캘럼 올몬드는 당황하고 맙니다. 와류 유체 장치를 거친 단백질의 분석 결과가 이상하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단백질 분자들이 와류 유체 장치를 거쳤더라도 저온에서 접혀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와류 유체 장치를 거친 단백질 분자들이 일부 펴져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연구 초짜였던 올몬드는 비싼 기계를 다루느라 잔뜩 긴장해있던데다 하필 실험실에 혼자 있어 물어볼 데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올몬드는 ‘내가 기계를 망가뜨렸구나’ 라며 패닉에 빠졌습니다.


올몬드는 야밤에 혼자 실험을 계속 반복해보며 결과가 ‘멀쩡하게’나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계속 이상한 결과만 나왔지요. 다음 날 그는 콜린 래스톤 교수를 찾아가 기계를 망가뜨린 것 같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나 잔뜩 겁먹었던 올몬드는 점차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래스톤교수와 길고 긴 논의를 해보고, 기기를 검사 해보니 와류 유체 장치도, 분석장치도 고장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석 결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올몬드가 예상하지 못했던,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됩니다. 

올몬드는 세계 최초로 ‘기계적 에너지’를 이용해 단백질을 다시 접은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화학물질이나 열 등으로 단백질을 펴고 접은 적은 있었습니다만, 기계적 에너지를 이용한 사람은 올몬드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연구실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올몬드를 비롯한 연구팀은 이제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걸로 뭘 하지?’


그렉 와이즈를 만나다


이 무렵, 한 미국인 부부가 호주로 휴가를 옵니다.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교의 교수 그레고리 와이즈 내외였습니다. 와이즈는 화학과 생물학을 공학, 물리학, 약리학 등과 연결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특기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는 단백질 분자 하나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이크에 붙여 단백질이 팩맨처럼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잡아내기도 했죠.


천상 연구자였던 와이즈는 아내의 배려 덕에 서핑의 성지인 서호주까지 와서 대학교 화학과들에 찾아가서 교수들을 만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올몬드의 지도교수였던 콜린 래스톤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와이즈는 래스톤이 발명한 장치 와류 유체 장치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와류 유체 장치가 단백질을 대량 생산할 때 일어나는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단백질이 원하는 기능을 하려면 원하는 모양으로 잘 접혀있어야 하는데, 단백질을 대량생산할 경우 개개의 단백질 분자들이 펴진 채 서로 얽혀있는 모양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젤리나 단단히 삶아진 계란 같은 모양으로 단백질이 나오기 일쑤죠. 


이렇게 얽혀있는 단백질들을 원하는 모양으로 접으려면 기존 방법으로는 며칠에서 몇 주가 걸렸습니다. 와이즈는 와류 유체 장치가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와이즈와 래스톤의 논의 끝에, 2달 후 캘럼 올몬드는 와이즈의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니다. 그는 비행기에 와류 유체 장치와 함께 몸을 싣고 캘리포니아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와이즈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올몬드는 라이소자임을 이용해 단백질의 접힘을 펴는 연구를 지속합니다.


라이소자임의 재접힘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의 피드백을 받은 와이즈는 이 실험이 “내 단백질에서도 될까?”하는 수많은 질문을 받는게 지겨웠다고 합니다. 그가 모든 과학자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고민끝에 ‘라이소자임의 재 접힘'보다는 누구나 알고있는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되돌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구가 와 닿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됩니다. 정제된 라이소자임 단백질이 아닌, 그냥 익은 달걀을 다시 날달걀로 되돌려보기로 한 겁니다. 


펴진 단백질과 접힌 단백질


달걀이 익을 때, 달걀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단백질 분자 하나하나는 여러종류의 아미노산이 길게 연결된 사슬처럼 되어있죠. 그리고 그 사슬은 정해진 모양대로 접혀있습니다. 체인을 접혀있게 만드는 힘은 주변 아미노산끼리 끌어당기는 것에 따라 정해집니다. 그 결과 하나의, 혹은 여러개의 아미노산 사슬이 접힌 단백질 분자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이해하기 쉽게 공 모양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날달걀 안의 단백질들은 이렇게 접혀 공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접한 달걀 단백질들끼리는 어느정도 점도를 가지고 흘러다닐 정도로 서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왼쪽 : 날달걀(접힌 단백질), 오른쪽 : 삶은 달걀(펴진 단백질)

그런데 열을 가해 달걀을 익히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뭉쳐있던 사슬, 즉 각각의 단백질이 펴집니다. 펴지는데 왜 단단해지냐고요? 주변 분자에 있는 다른 아미노산과 서로 끌어당기며 크게 한 덩어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익은 계란을 다시 안익은 상태로 돌린다는 건 아미노산 가닥이 주위 가닥과 상호작용하는 힘을 어떻게든 끊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원래 아미노산 사슬 한 가닥이 만들고 있던 모양대로 돌려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옆에있는 아미노산 사슬과의 결합을 끊을 수 있을까요? 경험에서 알다시피 삶은 달걀을 냉장고에 넣는다고 해서 날달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대로 분자의 움직임이 줄어들죠. 열을 더 가해봐야 각 사슬은 더 풀리고 주위와 달라붙을 뿐입니다.


그런데 와류 유체 장치를 쓰면 어떻게 될까요, 와류 유체 장치는 기울어진 채 돌아가 용액을 얇게 펴면서 각 단백질이 서로 눌리며 밀려나게 만듭니다. 즉, 단백질 가닥을 각 가닥으로 떼낼 수 있게 되는 거죠. 떨어진 단백질 가닥은 자연스럽게 고유한 모양으로 접히게 됩니다.

연구팀은 달걀 흰자를 90℃로 20분간 가열해 익혔습니다. 그리고 익힌 단백질을 투명한 요소 수용액에 넣었습니다. 요소는 단백질간의 결합을 약간 약하게 만들어 흐물흐물하게 해 주거든요. 용액은 달걀 흰자가 녹으며 흐려진 상태가 되는데, 이때까지 달걀 단백질들은 약간 흐물흐물해졌지만 여전히 펴진채 엉겨붙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 다음으로 연구팀은 달걀 흰자 단백질들이 얇게 펴지면서 서로 잡아당겨지도록 이 용액을 와류 유체 장치 안에 넣고 빠르게 5분 간 돌렸습니다. 그러자 뿌옇던 용액은 투명해졌습니다. 과연 삶은달걀은 날달걀이 잘 되었을까요? 확인하는 방법은 다시 익혀보는 겁니다. 용액에 열을 가하자 용액은 하얗게 굳으며 익었습니다.


미디어의 주목을 받다


삶은달걀을 날달걀로 바꾼 이 연구논문은 2015년 늦은 1월 출간됐습니다. 그리고 즉시 유명해졌죠. 수 많은 언론사들이 되돌려진 달걀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2주만에, 이 논문은 논문 역사상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논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는 한번 웃고 그 다음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에게 주는 상인 이그노벨상을 받기에 이릅니다. 노벨상의 패러디 상이죠.


이그노벨상 수상소감을 하고 있는 그렉 와이즈, 콜린 래스톤, 캘럼 올몬드


맛은 있나요?


그렇다면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되돌리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다시 먹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연구팀중 아무도 다시 익힌 계란을 먹지 않았습니다. 일단 실험 과정 중 요소를 첨가하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이 실험에서 날달걀로 만들었다 다시 익힌 달걀은 몸에 유해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다시 익힌 달걀의 맛은 모르지요.

그러나 실험의 의의는 다시 먹을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단백질을 다시 접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큰 단백질분자를 합성해 약 등으로 쓰는 경우, 단백질의 모양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백질이 3차원적으로 잘 접혀야 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연구실에서 원하는 단백질을 합성했지만 예쁘게 접히지 않고 마치 익힌 달걀처럼 주변 단백질들과 꼬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펴져서 엉겨있는 단백질을 하나하나 다시 제대로 접는데는 며칠의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이 연구는 펴지고 엉겨버린 달걀 단백질을 단 몇 분 만에 접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의가 있는 거지요. 


연구진은 앞으로 더 많은 단백질을 빠르게 접는 데 와류 유체 장치를 이용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고있습니다.



참고자료 


Yuan, Tom Z., et al. "Shear‐Stress‐Mediated Refolding of Proteins from Aggregates and Inclusion Bodies." ChemBioChem 16.3 (2015): 393-396.

Callum Ormond : Unboiling an egg https://youtu.be/1BfMMoLYMlg

Gregory Weise: Unboiling the egg https://youtu.be/5VArb8kGnew

레딧 질의응답 https://www.reddit.com/r/science/comments/2tu16v/science_ama_series_im_gregory_weiss_uc_irvin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