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제 기술은, 유행을 선도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제 기술은, 유행을 선도한 것이지요.”
-2011년 이그노벨상 수상소감 중
2011 이그노벨상 공공안전 부문
캐나다의 존 센더스
보통의 운전
1960년대 어느 날, 존 센더스는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센더스의 직업은 연구원이었고, 캠브리지 대학 내 BBN 테크놀로지스라는 연구용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용역이란 말 그대로 연구를 의뢰받는 일입니다. 사람, 혹은 기관에서 “저, A터널에서 차들이 나올 때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이 원인을 알 수 있을까요?”라고 의뢰를 하면, 연구자는 연구비를 받아 실험을 설계하고 예상되는 원인을 알려줍니다.
이번 전화는 미국 공공도로국에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도로국에서는 “일반적인 운전상황이 어떤건지 이해하고싶은데, 혹시 아이디어 있으신가요?, 그냥 안전한 운전이요.”라고 센더스에게 물었습니다.
센더스는 이 막연한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곧 “네 있습니다”라고 답했죠.
존 센더스는 잠깐 사이에 어떤 장면을 떠올렸던걸까요? 그는 예전에 라이트필드에서 클리브랜드 지역으로 운전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엔 비가 많이 왔고, 와이퍼 속도에 따라 주기적으로 앞이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그는 한 가지 신기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시속 약 51km(32마일)로 달릴 때는 별 무리 없이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시속 약 55km(34마일)로 달리면 과부하가 걸린 듯 운전이 힘들어졌던 겁니다.
이 경험을 통해 센더스는 ‘일반적인 운전’을 분석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실험을 하나 설계한 후, 공공도로국에 관련 내용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공도로국은 센더스에게 연구비 30만 달러, 한화로 약 3억 7천만원 정도를 보냈습니다. 1963년 미국 집 가격 평균이 20만 달러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꽤 큰돈이었네요.
눈을 가려가면서 운전해주세요
존 센더스는 운전자의 시야를 제한하며, 즉, 운전자의 눈을 가리며 운전을 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서 센더스는 움직이는 눈가리개가 달린 헬멧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투명한 눈가리개가 달린 오토바이 헬멧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눈가리개를 불투명하게 칠해 완전히 눈 앞을 가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헬멧에 공압튜브를 부착해 눈가리개를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헬멧 위에 달린 눈가리개는 설정해놓은 시간에 따라 아래로 내려오고 위로 젖혀지며 주기적으로 운전자의 눈을 가렸습니다. 이 눈가리개를 덮으면 차선을 비롯한 도로상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네요.
그 헬멧을 쓰고 고속도로를 달려주세요
주기적으로 눈을 가릴테니 최대속도로 한번 밟아보시지
쭉 펼쳐진 광활한 고속도로 앞에 존 센더스를 포함한 다섯명의 사람들이 마음의 준비를 마친 채 모였습니다. 이들은 헬멧을 쓰고 차에 올라, 한 명씩 운전을 시작할 사람들이었죠. 이들은 차례로 눈을 주기적으로 가리는 헬멧을 머리에 쓸 예정이었습니다. 헬멧은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이미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헬멧은 0.5초간 앞을 보여주고 1.5초간 눈을 가리는 식이었습니다. 센더스는 눈을 가리는 시간과 보여주는 시간을 바꿔가면서, 사람들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를 측정했습니다.
첫 실험은 운전자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속도로 달리는 것이었는데요, 지원자들은 어땠을까요? 당황했죠. 누구든 처음부터 눈을 가리는 헬멧을 쓰고 운전하는게 매끄럽게 될 리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실험 참가자들은 헬멧에 적응할때까지 연습을 거쳤습니다.
놀랍게도 참가자들은 결국 적응했습니다. 그리고 결과 또한 놀라웠습니다. 0.5초간 앞을 보여주고 1.5초간 눈을 가리면서 달리는 조건에서, 참가자는 무리없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눈이 가려진 1.5초동안, 운전자들은 마치 앞을 보고 운전할때처럼 신경써가며 길을 따라갔습니다.
어떻게 운전이 가능했던걸까요? 사람들은 전방을 볼 때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눈을 가렸을 때 그 정보를 단계적으로 소모해가며 운전을 하는 것이죠. 앞을 보았을 때 길이 직선이라면, 핸들을 조작하지 않으면 된다는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없이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곡선이라면 핸들을 얼마나 돌려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보일 때 운전 하듯 행동합니다. 그래서 앞은 보지 못하더라도, 마치 앞을 보고 운전하는것처럼 신경을 쓰며 핸들과 엑셀레이터, 그리고 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0.5초는 사실 인간이 시각정보를 파악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센더스가 참가자들의 눈앞 개방시간을 0.5초 이상으로 늘려봤기 때문입니다. 더 오래 앞을 보여주더라도 속도가 아주 약간 빨라질 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럼 앞이 보이는 시간은 최소 몇 초까지 줄일 수 있을까요? 센더스는 앞을 보는 시간을 절반 0.25초까지 줄여버렸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단 0.25초만 앞을 보면서도 운전을 해냈습니다. 속도가 조금 줄어 시속 80 킬로미터정도로 달렸을 뿐이었습니다. 충분히 빠른 속도죠.
더 오래 눈을 가리고 달린다면
더 오래 눈을 가리면 어떻게될까요? 운전자들에게 앞을 보여주는 시간은 0.5초로 일정하게 유지하되, 눈을 가리는 시간을1.5초에서 2.5초, 3초...9초까지 늘리면서 최대 속도로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눈 가리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사람들이 달릴 수 있는 최대속도는 줄어들었습니다. 1.5초간 눈을 가릴 때는 시속 100 킬로미터로 달리던 사람들이, 2.5초간 눈을 가리자, 평균 시속 76 킬로미터까지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눈을 오래 가릴수록 낼 수 있는 속도는 점점 떨어졌는데, 4초간 눈을 가리자 시속30km, 자그마치 9초간 눈을 가리자 시간당 8킬로미터 정도로 아주 느리게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시간인 0.25초동안 앞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0.25초 앞을 보여주고 1초간 눈을 가릴 땐 시속 80 킬로미터 정도로 달리던 사람들이, 가리는 시간을 2.5초로 늘리자 속도가 약 시속 53 킬로미터까지 떨어졌습니다. 9초간 눈을 가리자 시간당 8 킬로미터정도 속도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 실험 다, 9초간 눈을 가린 상태를 끝으로 중단했습니다.
‘안되겠다’싶을 때 앞을 까는 실험입니다
이번 실험에서는 운전자들은 헬멧을 쓴 채 일정한 속도로 달려야했습니다. 운전자는 눈을 가리고 최대한 일정한 속도로 달리다가, 이제 꼭 앞을 봐야겠다 싶을 때 버튼을 왼발로 밟아 눈가리개를 젖힙니다. 운전자 왼발쪽에 있는 스위치를 밟으면 눈가리개는 0.5초간 위로 젖혀진 뒤 다시 내려옵니다. 피험자들 입장에서는 좀 덜 겁나는 실험이었겠네요.
이를 통해 센더스는 사람들이 눈을 가린 채 얼마나 오래 운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주의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따져보고, 더 나아가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주의력이 필요할지를 최대한 가깝게 따져보고자 했습니다. 실험 1과 비교했을 때 어떤게 더 현실을 잘 반영할까요?
우선 실험결과, 반전은 없었습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이 눈을 가린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그러나 실험 1과 비교했을 때 재밌는 점이 있었죠. 사람들은 같은 속도일 때 실험 1보다 더 일찍 눈가리개를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눈을 가린 시간이 줄어든 거죠.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이 자동차보다 즉각적이기 때문입니다.
차량의 브레이크 반응속도는 상대적으로 사람과 눈가리개보다 느립니다. 따라서 센더스는 자동차의 속도로 판단하는 실험 1보다 눈가리개가 올라가는 것으로 반응을 판단하는 실험 2의 결과가 실제 운전상황 분석에 더 유용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젠 길도 구불구불
산넘어 산, 이제 구불구불한 길에서 실험을 합니다. 구불구불한 길에서는 사람들이 눈을가리고 얼마나 버티는지 그 시간과 곡률 반경 사이의 관계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센더스는 더 어려운 길인 브라이언 모터사이클 파크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실험 2때처럼 눈가리개를 쓰고, 눈가리개를 0.5초간 올릴 수 있는 발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경주 트랙을 달렸죠.
브라이언 모터사이클 파크는 약2.6km였고, 길은 잘 포장되어 있었으며 군데군데 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리핀이라고 부르는 직선-곡선-직선 구조가 약 10회 등장했습니다. 각 머리핀구조의 곡률은 다양했고요.
낮은 속도 구간의 경우, 운전자는 고속도로에서처럼 행동했습니다. 즉, 도로가 휘어져있든 말든 관측간격은 직선도로때와 비슷했습니다. 반면 충분히 빠른 속도에서는 아무리 자주 눈가리개를 들더라도 적절한 조향을 유지하기 힘든 경향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실험은 시속 35, 40, 50킬로미터(시속 22, 25, 30마일) 3가지 속도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사실 센더스는 더 빠른 속도에서도 실험을 해보았으나, 피험자들이 정확하게 운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 측정값들만 분석했다고 밝혔습니다.
센더스는 재밌는 점을 하나 발견합니다. 트랙 전체를 도는 데 관측한 횟수는 속도가 달라져도 비슷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운전자가 일정한 거리마다 데이터가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한번 앞을 보았을 때 기억한 데이터가 다 소모되면 다시 앞을 봐야 하는데, 그 기준이 거리였던 거죠.
속도가 빠를수록 들어올리는 횟수가 증가하기는 했으나, 그 차이는 생각보다 미미했습니다.
시속 35킬로미터로 달렸을 때와 50킬로미터로 달렸을 때 각각 79회와 80회로 1회밖에 차이나지 않았거든요.
다른 운전자들도 속도에 따른 앞 보기 횟수가 비슷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속도와 볼때마다 이동한 거리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빨라질수록 눈을 가린 채 더 짧은 거리를 갈 수 있었습니다. 더 빨라질수록 운전자가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 영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회전의 크기는 어떨까요? 예상대로 방향이 많이 꺾일수록 시야 간섭이 증가하기 때문에 운전자는 더 많은 주의를, 그러니까 더 자주 앞을 보아야 합니다. 곡률도 곡률이지만 시야가 얼마나 제한되는지가 더 중요한데요. 따라서 비슷한 각도로 약간만 꺾는 구간보다 180도 꺾는 구간에서 운전자는 더 자주 앞을 보았습니다.
보통의 운전이란
생각해보면, 운전자들이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미러를 한번씩 보고, 카오디오를 조작하고, 잠깐 조수석을 쳐다보고, 심지어 휴대폰을 조작하면서도 운전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정보를 다 써버리곤 합니다. 그때부턴 정상적으로 주행할 수 없게 되는 거고요. 센더스가 비오는 날 일정 속도 이상을 내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그리고 휴대폰을 보며 정신을 팔면 사고가 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치 한편의 시 같았던 샌더스의 수상소감>
1963년,
누가 평범한 운전을 조사해 달랍니다
다들 사고만 쳐다 보던 때
교통공사 장관 고든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이
제게 평범한 운전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더이다
용감한 과학자, 존 센더스는 케임브릿지 근처 고속도로로 나섭니다
고속도로란 차들이 달리는 곳입니다
젊고 용감한 과학자, 존 센더스는
반은 눈을 가려가며 가며 차를 몰았습니다
그리고 자동으로 눈을 가려 주는
운전 헬멧을 발명했지요.
절반이나 눈을 가리고 운전하다니,
몇몇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기대에 부합하며, 그는 ‘명백한’ 관계를 하나 발견합니다
넓은 길, 느린 속도, 더 많은 연료.
다들 알잖아요, 넓은 길에는 느린 속도가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느린 속도와 넓은 길은, 더 많은 연료를 쓰게 한다는 걸.
요즘 제 헬멧은 핸드폰이 대신합니다.
다음으로 문자메시지가 그 역할을 이어받습니다.
사망자와 소송은 요즘 운전자들의 유행인가 봅니다.
그러니까 제 기술은, 유행을 선도한 것이지요.
발표 이후 40년,
제 눈가리기 기술은 국제 기준이 된 셈입니다.
감사합니다.
저자 주: 의역이 있습니다. 전문이 궁금하신 분
들은,
https://youtu.be/j_wu19NA4yo?t=5503
에서 샌더스의 수상소감 장면을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