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과 Oct 15. 2020

쏟아지는 커피에 대응하는 누군가의 자세

이그노벨상 한국인 수상자



“무슨 생각들 하시는지 압니다. ‘이게 실제로 쓸모가 있을까?’ 당연히 아니죠, 그래서 우리가 ‘뚜껑’이라는 걸 발명했잖아요.”

2017 이그노벨상 수상소감

2017년 이그노벨상 유체역학부문

대한민국의 한지원


커피를 쏟지 않는 법:


커피를 들고 서성이는 고등학생,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새벽 강원도 횡성군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 한지원이라는 남학생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커피를 쏟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1년째 맨땅에 헤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들 커피를 엎지릅니다. 그리고 커피 양 탓을 하곤 하죠. 적당히 따르지 그랬냐던가, 빨리 윗부분을 마셔버리든가, 그런 반응을 합니다. 한지원은 이 일차원적인 반응 이상의 것을 분석해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담는 양이 적어도 충분히 넘칠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커피가 넘치는 데 다른 요소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요소가 있는가


그래서 한지원은 먼저 ‘다른 요소가 있는가'를 실험을 통해 간단히 증명해 보았습니다. 양이 유일한 문제였다면, 다른 조건이 바뀌어도 커피는 똑같이 넘칠 겁니다. 예를 들어 같은 양의 커피를 와인잔에 담든 머그잔에 담든 상관 없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한지원은 와인잔과 머그잔 모양의 유리컵을 각각 기계에 연결해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한 초당 2회씩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와인잔 쪽에서는 커피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넘쳤고, 머그잔 쪽에선 커피가 부드럽게 찰랑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이보다 2배 빠른 1초에 4번씩 흔들어보자, 그러자 와인잔 쪽에서는 부드럽게 물결치며 넘치지 않던 커피가 머그잔에서는 격렬하게 넘쳤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아한 점이 또 발견됐습니다. 우리는 와인잔보다 머그잔과 비슷하게 생긴 컵에 커피를 담아 다닙니다. 그런데 사람 걸음걸이인 초당 2회에서 넘치지 않는다니요? 이는 사람 걸음걸이에 초당 4회 근처의 진동이 숨어있다는 뜻 아닐까요?


운 좋게도 민사고에는 꽤 괜찮은 연구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물리동아리에서 구입한 장비들도 쓸 수 있었죠. 이미 한지원은 물리대회를 준비하며, 그 장비들을 자기 연구에 맞게 이리저리 조합해서 반쯤 만들어 실험하곤 했습니다.


물론 모든 장비가 준비되어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연구실에 없는 장비는 새로 맞춰다 썼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지원의 아버지는 차에 아들을 태우고 횡성에서 청계천을 열심히 왕복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한지원은 유리나 금속 등을 원하는 모양으로 주문 제작해 쓸 수 있었습니다.


커피는 그럼 언제 쏟아집니까?


커피를 쏟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강한 충격량, 즉 어디다 갖다 박았거나 급정거, 급출발했을 경우 커피가 쏟아집니다. 이걸 분석하는건 너무 쉽지요. 두 번째는 찬찬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커피의 움직임이 점점 격해져서 넘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몸과 손, 컵과 커피가 각각 어떻게 흔들리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한지원은 훨씬 더 복잡한 두 번째 경우에 중심을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죠.


커피는 어떻게 찰랑거리나


복잡한 실험은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경우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다닐 때 달랑달랑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다닌다는 점이죠. 즉, 커피잔은 손을 흔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지원은 문제를 훨씬 단순화시켜 진동 장치에 컵을 바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머그잔을 대신해서 투명한 원기둥 모양 통에 커피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흰 벽 앞에서 커피를 흔들었습니다. 통의 반지름은 4.1cm, 높이는 9.5cm였습니다. 그리고 기계를 이용해 한번 확 흔들고 멈춘 뒤, 커피가 어떻게 자연스럽게 흔들리는지를 분석했죠. 흔들리는 진동수는 반지름이 작아질수록 빨라집니다. 한지원은 계산상 커피가 초당 3.95번 흔들릴 것으로 예상했고, 측정치는 그와 비슷한 초당 3.8번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움직이나


다음으로 한지원은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해보았습니다. 먼저 그는 카메라로 사람이 걸어가는 움직임을 찍은 뒤,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분석해서 가속도가 어떤지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초당 많은 장면을 찍으면 사진의 퀄리티가 낮고, 사진의 퀄리티를 높이자니 충분히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같다고 논문에 이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한지원은 실패를 발판삼아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는 스마트폰에 가속도 측정 어플을 다운받고 컵과 함께 쥐었습니다. 그리고 걸으며 사람 걸음걸이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을 파악해보았죠.

사람의 걸음걸이는 눈에 띄게 패턴화되어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흔들리는 건 위아래 방향이었으며, 그 다음은 앞뒤, 가장 작은 진동은 좌우 방향이었습니다. 사람의 걸음걸이는 컵에 초당 2회 정도의 진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재밌는 점이 있었습니다. 컵에서 2회의 배수인 초당 4회, 6회, 8회… 의 진동도 동시에 발생한 것입니다. 진동의 세기는 초당 2회일 때 가장 셌고, 초당 4회, 6회, 8회가 될수록 줄어들었습니다.

핵심은 2번째인 초당 4회 부근의 진동이었습니다. 초당 3.5~4회였는데요. 머그잔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측정치인 초당 3.8회와 겹칠 때 공명현상이 일어나 넘치기 때문입니다. 한지원은 사람 걸음걸이에서 커피가 넘치는 원인을 찾아낸 겁니다.


난 커피를 엎지 않을 수 있어


그렇다면 이제 커피를 엎지르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한지원은 몇 가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먼저 뒤로 걸으면 됩니다. 뒤로 걸으면서 흔들림을 측정한 결과, 흔들림이 현저히 감소할 뿐 아니라 초당 2회, 4회, 6회… 에 해당하는 진동이 특히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커피잔 옆이 아니라 위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축을 바꿔 컵이 마치 이중 진자처럼 흔들리게 하는 거지요. 그는 이 방법을 ‘발톱자세’라고 불렀습니다.

한지원은 두 가지 방법을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함께 선보였습니다.




세번째, 가장 효과가 좋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컵을 쓰는 겁니다.


공명현상은 커피가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타이밍에 맞춰 컵을 흔들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진동수는 커피 컵의 반지름이 작을수록 빨라지지요. 따라서 반지름이 작은 여러 개의 원기둥에 커피를 따르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진동수가 사람 걸음걸이에서 나타나는 진동수와 차이가 벌어집니다. 따라서 공명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죠. 물리적으로 가장 효과적이지만 설거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도 저도 애매하면, 카푸치노를 마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거품을 올리면 진동의 세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걸 꼭 니가 해야겠니?


그는 1년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합니다. 아무리 민사고였지만 대한민국 땅 안에 있는 학교라, 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논문을 완성해서 물리 선생님께 검토를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니 말 다 했죠. 그는 굴하지 않고 영어 선생님께 검수를 부탁했고 결국 도움을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물리가 좋아 시작한 연구는 적절한 지원 받지 못해 생긴 반항심의 도움을 받아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감성적으로 연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농담조로 ‘학교도 사회도 날 버렸지만 나는 연구를 버리지 않겠어’라면서요.


한지원과 이그노벨상


그는 연구 중 2012년 이그노벨상을 받은 메이어와 크레체트니코프의 논문을 발견하고 이를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접근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커피가 넘치는 것을 분석해냅니다. 그리고 그 또한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고등학생의 연구가 이그노벨상을 받은 건 역사상 2번째였습니다. 민사고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에 유학가있던 한지원은 얼떨떨하게 ‘이그노벨상에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릴 때 지식채널 e에서 보았던 이그노벨상을 자기가 받게 될 거라곤 상상해본적도 없는데 말이죠.





<한지원님을 직접 만나 인터뷰 해 보았습니다>


2019.12.29, 서울의 한 카페 대면 인터뷰


이 주제로 연구를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리고 왜 그 생각이 드셨나요?  

    연구 시작은 IYPT(국제 청소년 물리 토너먼트) 였어요. 12가지의 물리 문제나 현상에 관해 토론하는 대회였는데요, 주제를 팀원과 나눠 가졌는데 그중 하나였어요.  

    이후 연구를 1년 동안 이어서 했죠. 그냥 재밌어서 완성했어요.  

커피 쏟기를 막는 여러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셨잖아요? 어떤 게 가장 맘에 드세요?  

    제일 효과적인 건, 실린더 여러 개가 꽂힌 컵입니다. 물리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인데, 현실성은 제일 없어요. 닦는게 문제입니다.  

실험할때 열심히 닦으셨나요?  

    전 안 닦았어요 :)  

제일 주목받은 방법은 뭐였나요?  

    주목받은 건 발톱 잡기였어요, 그리고 이그노벨상 쪽에서는 뒤로 걷는 게 웃기니까 자꾸 강조해서 좀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마크 에이브러햄스가 절 소개할 때마다 뒤로 걷는 걸 시켰거든요. 그래서 뒤풀이 강의 때는 뒤로 걷기 싫어서 문 워크를 해버렸죠.  

민사고의 연구환경은 어떤가요?  

    비유클리드나 복잡계를 공부하고 싶었을 때, 수학 선생님이랑 IRE 자율공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원하는 과목을 더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구에 적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본 연구 재료는 물리실험실, 물리동아리에서 해마다 구입한 장비로 DIY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고등학교에 가든 선생님들의 연구 지원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민사고니까, 자사고니까 유연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도움이 안된 건 한국, 사회적 요소가 크죠. 좋은 환경인데 사회적 압박 때문에 좀 아쉽습니다. 논문 초고를 완성해서 봐달라고 하고 싶은데, 학교에서 잘 안 해줬습니다. 물리 선생님 도움을 못 받아서 영어 선생님한테 봐달라고 하고 그랬죠.

미국은 좀 나은가요?  

좀 나은 수준이 아니라 차원이 달라요. 잘한다 싶으면 잘한다고 해주고, 자기가 모르는 부분이라도 적극적으로 서포트를 해준다던가, 알 만한 사람과 이어주는 방법을 찾아줍니다.


연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버지께 도움을 많이 부탁드렸죠. 연구 장비 몇 가지는 주문 제작했는데 아버지께서 유리 공방이나 금속가공 하는 데 연락해주시고 청계천도 많이 데려다주셨어요.  

    자석 만드는 아저씨랑 전화할 일이 많았는데 아저씨 말이 진짜 많으셨어요.  


수상소감 마지막 말로 “만약 당신이 커피를 많이 마시고, 운이 없다면, 보스턴에 오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인가요?  

커피를 많이 마신다 : 연구를 열심히 한다.

운이 없다면 - ‘운이 좀 따라주면’을 비꼼. 이그노벨상이니까.

보스턴에 오게 될 것이다- 이런 상을 받게 되겠지.

연구 많이 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 모두 이런 인정을 받게 될 거야, 같은 뜻이었어요.

민사고 졸업 이후엔 어떻게 지내셨나요?  

옥스포드에 붙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가고, 버지니아 대학을 전액 장학금으로 들어갔습니다. 첫 학기부터 스위스 입자가속기 쪽에서 연구했습니다. 영화 콘택트에 나오는 망원경 오퍼레이트 하는 곳 헤드쿼터가 버지니아에 있어서 거기서도 연구하고... 병렬적으로 동네동네 잘 다녔어요. 가르치는 걸 좋아해서 대학교 마지막 2년은 조교도 열심히 했습니다. 취미로 암벽등반이랑 스윙 댄스 하고, 대회도 나갔습니다. 음악도 좋아해서 곡도 썼고요.

그리고 천문학으로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요, 하버드에서 스윙 댄스 가르치면서 용돈도 법니다.


커피연구를 하시면서 커피는 많이 드셨나요? 하루 다섯잔?  

    하루 5잔은 훨씬 넘죠. 어릴때부터 많이 먹었어요. 지금 하버드 연구실에도 핸드그라인더, 핸드드립, 프렌치프레스, 모카포트를 구비해 뒀고, 콜롬비아에서 온 박사 선배 한 분의 고향 집에서 재배하는 원두를 납품받고 있습니다.

  

이그노벨상 받기 전후 삶의 차이가 있었나요? 이그노벨상은 어떤 의미인가요?  

    받고 나서 한 반년은 삶이 달랐어요. TV 인터뷰 요청도 왔고요. 인터뷰, 특히 어린이 과학잡지 인터뷰는 꼭 했습니다. TV 퀴즈쇼 는 아닌것같아서 안 나갔고요.


연구하시면서는 어떠신가요?  

    천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선 대단하다고 하고요, 필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칭찬을 해야 하나, 까야 하나…? 하고 어려워하는 게 느껴집니다. 다른 논문도 많이 썼는데 데뷔작이 이렇다 하는 게 있네요. 얘기 안 하면 모릅니다.  


더 해주실 말이 있으신가요?  

    이그노벨상의 철학 자체가 맘에 듭니다. 겸손하거든요. 자기가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두고 보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 시켜 줍니다. 넌 니 생각보다 중요한 사람이 아니며 너무 진지하게 굴지 말라고요. 가끔 생각해보면 넓은 마인드를 가지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존재가 하찮다는 걸 느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웃음거리가 될 만한걸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 일에 꽂혀서 주변은 생각하지 않게 되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기도 힘드니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런 겸손함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그노벨상에서는 그걸 지향하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