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은 시각, 버스에서 내려 발을 바삐 움직인다. 찬바람에 내어놓은 코가 시린 줄도 모르고 주머니 속 열쇠에 닿은 손가락만 차갑게 느껴진다. 또각, 또각, 또각. 조용한 골목길에 들어서자 발자국 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가 왔다는 걸 벌써 알았겠지. 더 서두르자.’ 생각한다.
집 앞에 도착해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기 무섭게 안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현관 앞에 바짝 붙어 날 부르는 소리. 작지만 분명한 소리. 내 마음을 긁어대는 소리. 내가 이러려고 널 데려온 건 아닌데. 속상하면서도 목소리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놓이는 이상한 기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소리를 지르며 내 발에 바짝 따라붙는 나의 고양이.
“오구 겨울아 오래 기다렸찌? 오구, 오구, 그래쪄~” 나는 혀가 짧아져 인간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릴 내고, 겨울이는 고양이의 소리를 내며 누구보다 완벽한 소통을 한다. 그냥 반갑다는 뜻.
거실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면 겨울이는 내 온몸에 이마를 치댄다. 그리고는 무릎에 올라와 한참을 그릉그릉 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나는 그대로 거실에 누워버린다. 그럼 겨울이는 내 배에 발을 대고 한참을 꾹꾹이를 한다. 원 없이 꾹꾹이를 하고 나서는 배 위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한다. 꽤 요란스러운 광경이지만 이 정도는 해야 ‘제대로 반가움을 표현했군.’ 싶다. 성대한 집사 맞이 환영회가 끝나면 긴 시간 혼자 있었던 시간을 얼른 잊어버리도록 겨울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고 사냥놀이까지 이어진다. 이후로도 우리는 집안 어디서든 붙어 있는 편이다.
잠시 화장실에 가기라도 하면 문 앞에서 울어대다가 주저앉아 기다리고 있는 겨울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바쁘지 않은 시기에는 붙어있는 시간이 많지만, 일을 할 때면 꼭 늦은 밤까지 겨울이를 혼자 두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일이 아니어도 사람을 만나러 밖에 나가 있을 때가 잦으니까.
겨울이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일까? 이 공간이 겨울이에겐 유일한 세계고, 이 공간을 공유하는 나는 유일한 동반자겠지. 아마도 내가 없다고 생각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이기적인 사람인 건 자명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겨울이랑 잘 맞춰나가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곁에 누워있는 겨울이를 보며 매일 생각한다. 시간을 자르고 이어 붙일 수 있다면. 겨울이의 시간 속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잘라내고 함께 있는 시간만을 이어 붙여 놓고 싶다. 겨울이의 기억 속에는 내가 늘 곁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겨울이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조금 남겨두고.
겨울이와 함께하는 겨울밤은 깊어 가고, “겨울아 옛날이야기 해줄게. 옛날 옛적에 겨울이가 살았는데, 겨울이 되면 겨울밤에 겨울잠을 잤대. 이야기 끝이야.” 실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다 괜히 엎드려 있는 겨울이의 배 밑으로 손을 넣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겨울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