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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May 26. 2022

그녀들은 밤마다 어디로 갔나

아무튼, 창고살롱




나 야근, 혹은 지루한 회식이 끝난 후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되는 밤 10시. 마음 같아서는 무거운 몸뚱이를 침대로 던지고 싶다. 하지만 그녀들이 먼저 향하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모니터 앞이다. 화상 회의 앱 ‘줌(Zoom)’을 켜고 ‘창고살롱’으로 접속한다. 까만 창에 하얀 동그라미가 뱅그르르 돌다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잠시 긴장했다가 다른 그녀들의 얼굴을 마주하자 이내 편안해진다. ‘다들 나처럼 편안한 티셔츠를 입고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네.’ 생각하면서.





창고살롱’은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일과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들의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다. 멤버십 온라인 커뮤니티 전성시대라지만 그중에서도 ‘창고살롱’은 빛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여성들이 주로 속해 있는 커뮤니티로서는 흔하지 않은 무드를 지녔다. ‘우래기’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하지 않는다. 책과 영화에 대해 젠체하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배제되거나 앞세워지지 않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눈이 반짝거리고, 서로의 이야기는 공감과 연대를 불러일으킨다. 창고살롱에서는 정말로, 정말로 모두가 레퍼런서이며 나의 서사가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된다.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나는 창고살롱 초반, 급성 허리디스크 재발로 ‘누워서’ 줌 화면에 주로 등장했다(이 때문에 열정의 아이콘 ‘프로눕방러’등극기도 했다). 아이를 재우고 좀비처럼 다시 살아나 꾸역꾸역 핸드폰을 열었다. 창고살롱 신청을 취소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미 허리디스크가 주는 정신의 뒤틀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퀭한 눈으로 매일 밤 통증에 시달리며 미드를 정주행하는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줌 모임 첫날에 알아버렸다. 나에게 창고살롱은 정신의 목욕탕이란 걸. 창고살롱에 갔다 오면 볼이 어느 정도 발그레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잠이 확 달아나 있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길 한 모금의 달콤한 바나나 우유처럼, 창고살롱을 다녀오면 그렇게 달콤했더랬다.     


그렇게 맛을 본 후에는 창고살롱 정규 프로그램 외에도 <시작을 시작하는 소모임 살롱>, <글쓰기 살롱>, <노션 살롱> 등을 추가로 신청했다. <시작 살롱>에서는 스스로 만든 목차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서 소모임 멤버들과 공유했다. <글쓰기 살롱>에서는 주어지는 주제에 대한 글을 써서 올리고 서로 피드백을 거쳐 퇴고까지 완성했다. <노션 살롱>에서는 노션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를 소개하는 노션 페이지를 만들어 서로 나누었다. 지루하고 어렵고 빡셀 것 같은 이 모든 과정에 ‘사람’이 있었다. ‘내 글을 누가 봐?’ 생각했지만 정말 많은 이들이 글을 읽고 반응을 해주었다.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내가 노션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이들을 생각하며 조금씩 진행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10개의 글과 노션 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사실은 아직 진행 중이다).      


소소한 것이지만 해냈다는 성취감,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의 뜨거움, 그 순간에 있었던 '나'를 자꾸 떠올려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장면 속에 여러분들이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 누워서 갈비의 <글쓰기살롱> 후기


글쓰는 사람
학문적 글쓰기에서 사유하는 글쓰기로. 글쓰기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중입니다.
- 누워서 갈비의 노션 자기소개



그 외에도 멤버들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재미있는 소모임들이 많이 생겨났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창고살롱의 멤버들은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었다. 나는 각종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최다참여러’에도 등극했다. 내가 참여한 소모임에서 다룬 주제만 하더라도 커리어 전환, 팟캐스트 제작, 그림책 제작, 은유 훈련, 시간 지키기, 예술가 되기, 책 읽기, 쉬기 등 다양했다. 이 광경을 보며 창고살롱이 ‘관광지, 밤의 전통시장’이라고 느꼈다. 왁자지껄한 열정과 기분 좋은 흥분이 있는 여행지. 하루 종일 걸어 조금 쉬고 싶지만 가볍게 옷을 갈아입고 다시 야시장으로 향한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술도 안 마셨는데 취할 것 같은 밤. 창고살롱의 그 밤들에 나는 엄마이기도, 책과 영화의 비평가이기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낭독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5월은 창고살롱 소모임 터지는 달


이처럼 창고살롱이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연대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세 명 창고지기의 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힙하고 트렌디한데 또 묘하게 아날로그적이라 그들에게는 편안함 공존한다. 자신의 ‘구멍’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메우는 파트너를 은근슬쩍 높여준다. 유쾌하고 즐거운데 모두를 안고 가니 따뜻하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웃고 떠들며 끝나지 않도록 의미 있는 어디론가로 자꾸 이끈다. 우리들의 삶 속에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것, 여러 모양의 레퍼런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도록 하는 것이 창고살롱의 비전이었다면 적어도 나는 완전히 그것을 경험했다. 늘 모든 것을 괜찮다고 말해주는 창고살롱에서 ‘아, 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해볼 수 있나?’하며 내 안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모든 것은 세 분이 치열하게 만들어 놓은 단단한 판 위에서 이루어졌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세 분, 완전 천재…?’     





어쩌다 보니 창고살롱 예찬으로 이어졌다('아무튼, 창고살롱'을 쓰기로 했는데 정말 썼다). 그만큼 좋다. 정말 좋은데 말로 표현이 안되네…. 창고살롱 2기가 끝나고서야 내가 창고살롱에 정말 많이 의존했다는 것을 알았다. 의존. 그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독립해서 우뚝 서야만 훌륭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나는 창고살롱에 의존하며 살아냈다. 책을 읽으며, 영화를 보며, 글을 쓰며, 그것을 나눌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온라인 커뮤니티, 그?’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예전의 나였다) 꼭 하나 정도는 해보시길 권한다. 그게 창고살롱이라면 더 좋겠다(이러다 너무 많아지면 안 되는데… 이럴 땐 내 브런치 구독자 수가 많지 않은 게 장점이겠다). 나만 알고 싶은 창고살롱, 3기 모집은 9월 중순이다. 어서어서 가을이 돌아오길. 다시 모두와 뜨거울 가을을 기다린다.





이 글은 창고살롱 매거진 <레퍼런스가 쓰다>에 재발행 된 글입니다. 참여작가로 활동할 수 있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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