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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싶은 대로 Jul 11. 2022

누구나 가슴속에 섬 하나쯤 품고 사는 거 아닌가

우리에게 제주가 없었다면 Part 1.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나 가서 살고 싶다는 너에게.. 혹은 나에게


지금 하는 일도 충분히 차고 넘치는데 상사가 새로운 일을 맡길 때, 나의 동료들이 앞질러 승진할 때, 누구는 사이드 잡이니 뭐니 떠들며 멀티플레이어로 성과를 잘만 자랑하는데 나는 내 자리조차 분명하지 않다 느낄 때,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사람에 질릴 때, 돈에 치일 때...


어떤 이유이 건 간에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한동안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무한 반복으로 플레이해놓고 영화 '안경'의 타에코처럼 조용한 해변에 홀로 앉아 있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홀짝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때의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동시에 무엇도 할 수가 없는 번아웃의 상태였던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불편하게 느껴졌고, 열정은 커녕 일에 전혀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경력의 절반 이상을 여행업, 호텔업에서 쌓아왔던 내가 갑자기 금융업, 핀테크에 뛰어들었을 때 어느 정도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시작했었다. 공부도 열심히 해보겠다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한 달도 버티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 와중에 대형 증권사의 광고 계약을 따냈고, 출판 일도 배우고, 유튜브 브랜디드 콘텐츠 기획서를 썼다. 나를 믿고 기다려준 대표님 덕분에 6개월은 근근이 버텨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출근길엔 윤상의 '달리기'를 들으며 공항철도에 올랐고, 점심시간에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GOD의 '길'을 들으며 홀로 점보 사이즈의 커피를 마셨고, 퇴근길엔 박정현의 '미아'를 들으며 다시 공항철도를 탔다.      


10년 동안 마케터로 마케팅 에이전시, 정유사, 호텔, 스타트업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그중의 절반은 타인의 경험, 여행 등을 기획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매년 천안, 서울, 해운대 심지어 해외까지 새로운 호텔을 오픈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고, 분기마다 마케팅 전략을 짜고, 호텔에서 고객들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거나 빠르게 바뀌는 트렌드를 캐치하기 위해 매거진과 신간 도서들을 붙잡고 살았다. 밤에는 한 아이의 엄마로 물티슈 하나도 주문할 시간이 부족해서 쿠팡 정기 배송으로 생필품을 공급받는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빠듯한 삶의 루틴을 지속했고, 정작 나를 위한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일과 삶에 대한 가치관이 나와 달랐던 동료는 철마다 발리로 떠났고, 연휴마다 동해로 서해로 여행을 다녔다. 그런 동료를 시샘하고 바쁠 때만 골라서 휴가를 떠나는 그 혹은 그녀를 마음속으로 증오했다. 밀린 업무를 하나씩 쳐내며, 분노하고, 미워하며 매일 내상을 입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치료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경제적인 여건을 탓하거나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나의 치료를 후일로 미루며 버티던 나날들이었다.


매년 회사에서는 생일 선물로 호텔 숙박권을 주었다. 지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예약이 가능한 티켓이었다. 언제 써야 할지 몰라 그냥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나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비행기 티켓을 끊고 아이와 남편, 친정엄마까지 모두 데리고 제주도로 휴가를 갔다.


그때 처음으로 바라본 협재의 바다와 가까이 보이는 비양도의 풍경과 차가운 바닷물은 물파스처럼 여기저기 지끈거리던 마음을 시원하게 훑고 내려갔다. 늘 고객들에게 호텔 패키지를 홍보할 때 쓰던 '힐링'이라는 말은 단언컨대 딱 이럴 때 써야 하지 싶었다. 누군가 무심코 툭하고 던진 말에 입었던 타박상과 내 손으로 벅벅 긁어 부어오른 마음속 상처까지 제주의 바람과, 파도, 햇빛이 말끔히 소독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나 가서 살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실제로 매년 많게는 4번, 적게는 두 번은 꼭 제주로 갔다. 제주에만 가면 모든 시름을 다 털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라면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고, 시련이 와도 드라마 주인공처럼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생겼다.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아이 유치원쯤이야 옮기면 되고, 제주도에 일할 호텔은 많고, 남편 직장은 구하기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찾다 보면 못 찾을 리 없을 테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엄마를 위해 큰 병원 가까이에 전세를 얻으면 어찌어찌 제주에서 네 식구가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팬데믹이 찾아왔다. 목전에 두었던 과장 승진은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무산되었고, 연봉은 동결되었다. 더 싸게 가보겠다고 6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두었던 제주 신라호텔로의 여행도 회사의 권고사항으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승진이라는 목표 하나로 쏟아지는 일들을 전사처럼 쳐내며 견뎠는데 무릎이 푹하고 꺾였다.    


절박한 심정으로 사람인, 잡코리아를 뒤지며 제주 있는 호텔이라면 무조건 이력서를 냈고, 몇 군데는 면접을 보러 갔다. 안타깝게도 막상 면접을 보면 근무지는 서울이라고 했고, 연봉이 너무 적었다. 팬데믹으로 채용을 하는 호텔들도 줄었다. 그 사이 아이는 동네에 친구들이 많아졌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으며, 친정엄마는 아팠다. 이렇게 나의 섬 살이의 꿈은 서서히 힘을 잃고 접혔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처럼 가슴에 제주를 품고 '언젠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에는 과감히 서울을 떠날 거'라는 다짐을 한 채로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그럭저럭 살만해졌다. 살아졌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제주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하니 정말 하루하루가 고문 같았다.


억지로라도 변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스타트업으로 전혀 다른 산업군으로 이직을 했다. 다른 세계에 살다 보면, 다른 일에 도전하다 보면 공허한 마음이 채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새로운 일을 배우는 동안은 마음이 바빠 불안한 마음도 답답한 마음도 잠시 활동을 멈췄었다. 그 효과가 그리 길진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나는 "도망가자"를 외치며 떠날 궁리를 했고, 6개월 만에 다시 여행업으로 돌아왔다. 네 번의 면접 끝에 다시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면서 나의 불안과 답답한 마음은 정점을 찍었다.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상사의 가스 라이팅을 경험하며 나의 멘털은 3개월 만에 완전히, 철저하게 붕괴되었다.


자발적 퇴사 후에 6개월을 꼬박 쉬었다. 그 사이 친정엄마는 목디스크 수술을 했고, 아이는 1학년 2학기를 시작했다. 쉬는 동안은 서툰 집안일을 하고, 가끔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심리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어렵사리 전화를 걸었던 병원들은 몇 달치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나의 쓸모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다시 어떤 일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규모의 스타트업에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나의 지원 동기에는 힘이 없었다. 내가 면접관이라도 뽑고 싶지 않을 만큼 나는 지친 소처럼 자리에 앉아 지난 세월을 읊었다. 나는 점점 깊은 무기력으로 빠져들었다.


아이와 가족들과 다투기 시작했고, 곱지 않은 말들이 입 밖으로 자주, 수시로 튀어나왔다. 나답지 않은 나를 보는 게 가장 힘든 하루였다. 어느 날 새벽, 밤새 넷플릭스로 '겨우 서른'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와인 한 병을 홀짝 다 마시고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바람 좀 쐬고 올게. 전화하지 마" 짧은 메모를 남기고 이른 새벽 가벼운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술기운에 지하철을 탈 때까지만 해도 혼자 바다든 어디든 호텔을 예약하고 하루쯤 전화기 꺼놓고 푹 쉴 작정이었다. 선유도역을 막 지날 무렵부터 그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속이 거북했고, 역에 내려서 마신 술을 다 비워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어디를 갈까 예약 앱을 보는데 다시 속이 불편했다. 몸이 너무 힘드니 바다고 뭐고 다 생각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가장 빠르게 체크인할 수 있는 저렴한 호텔을 찾았다. 혜화역에 있는 호텔로 가는 길에도 몇 번을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화장실을 들렀다. 호텔 입구에 편의점에서 깨수깡과 생수 한 병을 사들고 체크인을 한 뒤 나는 전화기를 꺼놓고 기절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 대학 4학년 때 조연출로 일하던 극장 주변에 해장국집을 찾아 걸었다. 걷는 내내 아들 생각이 났다. 보고 싶고, 이게 이렇게 까지 할 일이었던가 싶었다. 그래도 기분 전환을 좀 해보자고 마음을 먹던 찰나에 오리털 패딩 어깨 위로 새똥이 떨어졌다. 그 뒤로는 어떻게 걸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새똥을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근처 화장실에서 응급처치를 마치고 나니 밥맛도 사라졌다. 근처에 서점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아쉬운 대로 텐바이텐에 들러서 바다 사진이 있는 엽서를 여러 장 샀다. 호텔에서 읽으려고 '히치하이커' 매거진과 펜, 노트도 하나 샀다.


그때에도 나는 바다로 떠나기 위해 출발했지만, 결국 바다에 도착하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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