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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싶은 대로 Jul 14. 2022

다 때려치우고 제주에 가서 살겠다는 너에게

우리에게 제주가 없었다면 Part 2.

우리에게 제주가 없었다면 Part 2.

술김에 집을 떠난 나의 가출기를 이리도 장황하게 설명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고작 숙취와 배탈, 옷에 묻은 새똥 따위를 핑계로 나 홀로 바다 여행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힘없이 무너졌다.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보고 싶다며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결국 아이와 남편이 모두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함께 해장국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혼자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늘 나 홀로 조용한 곳으로 가길 꿈꾸지만 정작 기회가 왔을 때 실현시키지 못하는 타입이다.  

 


정말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홀연히 자리를 비운다. 정작 떠나지 못하는 이들만 요란스럽게 푸념을 늘어놓고 주변에 티를 낸다. 전 직장 동료는 첫인사를 했던 날부터 자기는 줄곧 퇴사할 사람이라며 자기에게 정을 주지 말라고 말했다. 그 후로 5년이 다 되도록, 그는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종종 면접을 보고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자리를 지켰다. 심지어 내가 퇴사하던 날에 자기도 곧 퇴사할 거니까 그때 다시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도했다. 그는 아직도 그 회사에 남아있다.


어떤 후배는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회사를 그만두고 방콕으로 가겠다고 했다. 언제 준비를 했냐고 하니 그리 오래 준비를 하진 못했다고,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고 했다. 아끼던 후배의 결심이 내심 섭섭하면서도 그녀의 용기가 부럽게 느껴졌다.


그녀가 방콕으로 떠난 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갔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어린 아들을 남편과 친정 엄마에게 맡겨 놓고 나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나 혼자 뭔가를 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전에도 나는 혼자이기를 즐기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해외여행을 갈 때의 심정은 고등학생 때 대산 청소년 문학캠프를 참가하기 위해 엄마,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수련원으로 가던 관광버스에서의 그 불안하고 불편한 느낌과 비슷했다.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내 가족들을 걱정하고 낯선 경험들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공항에 내려 마중 나온 후배의 얼굴을 본 순간 그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방콕에서 보내는 3박 4일 동안 나는 매일 3시간씩만 자며 관광을 즐겼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집에 돌아가는 게 아쉽기까지 했다.


홀연히 방콕으로 떠난 그녀는 그곳으로 떠난 지 1년 만에 몇 개의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고, 새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이미 그 나라의 언어로 택시 기사와 흥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적응했다. 그녀는 슬슬 그곳을 지루해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실행력과 적응력이 부러웠다. 나도 그녀처럼 이민 가방 하나만 챙겨서 제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수도 없이 많다. 매년 두세 번씩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가지만 다 정리하고 제주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늘 제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며, '다음번에 제주도에 올 때에는 아주 와야지.'라고 마음먹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지만 늘 작은 캐리어 하나만 들고 제주에 잠시 들를 뿐이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8년 동안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 둘 거라고 했다. 후배의 일은 준공무원과 같아서 안정적이긴 했으나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8년이라는 긴 시간 한 직장에 출근과 퇴근을 하면서 힘든 순간마다 수도 없이 남편에게 "여차하면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로 가자."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박수를 쳤다. 그 말은 내가 늘 남편에게 점심 인사처럼 하던 말이었다.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여보,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힘이 드네. 우리 다 접고 제주도에 가서 살면 어떨까?" 나는 방송에서 연예인이 제주로 한 달 살기를 가는 장면이 나오거나 이미 제주에 정착한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제주에 삶을 동경하곤 했었다.


처음 제주에 여행을 가 본 뒤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제주에 갈 핑계를 찾아 여행을 갔지만 아주 가지는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힘이 들 때 제주로 가서 살자는 말을 제일 먼저 내뱉는다. 나에게 제주는 현실의 도피처이다. 현재가 싫고, 두렵고, 불안하고, 답답할 때 나는 제주를 꿈꾼다.


그런 제주로 아주 가지는 못할 이유는 뭘까? 제주에 산다면? 제주에 살면서 현재가 싫고, 두렵고, 불안하고, 답답한 순간을 만날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그 순간 무엇으로 나를 달래고 위로해야 할까? 제주만 한 가깝고 그나마 실현 가능하며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대안을 찾지 못했다. 우리에게 제주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꿈꿔야 할까?

무엇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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