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몰두하지 말 것
밤새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그대에게
그런 날이 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잠들 수 없는, 밤새 이런저런 걱정들이 연이어 떠올라서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검색의 검색을 거듭하는 날. 지난 기록들을 뒤지고, 평소에 부러워하던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탐색하고, 취업 사이트를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밖은 환하게 밝아오고, 출근 시간은 가까워져서 연차를 써볼까 망설이다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이대로 숨고만 싶은 날.
작은 불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 나를 여기저기로 질질 끌고 다니다 날이 밝아서야 놓아주는 그런 날.
언제부턴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유튜브에서 타로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구독 채널을 늘리다 보니 이제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는 타로카드와 사주, 마음 수련 같은 콘텐츠들만 추천하기로 작정한 듯싶을 정도가 되었다. 타로카드 점을 본다고 해서 완전히 믿지도 그렇다고 불신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타로 마스터들이 모든 걸 알고 있는 듯, 나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 "다 괜찮다." "당신은 잘 될 운명입니다." 이런 말들로 나를 안심시켜주기를,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한번 불안이 느껴지면 불안에 몰두해버리고 마는 특성이 있다. 특히 어떤 일에 실패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고 불안에 떨다가 스스로 그 일을 놓고 도망치는 결론을 내릴 때가 많다. 부딪혀서 이길 생각보다는 어떻게 포기하는 게 좋을지 스스로를 설득하는 작업에 더 공을 들인다. 나는 금쪽이가 맞다. 불안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건드려지면 여지없이 포기와 도망의 수순을 밟는다.
대학 4학년 때 남들보다 늦게 연극에 빠져서 조연출 일을 시작했다. 지도 교수님의 소개로 대학로 극단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와 함께 조연출로 들어간 동기는 싹싹한 성격에 부지런했고 열정도 대단했다. 그에 비해 나는 감이 좋을 뿐, 내세울 게 없었다. 나는 나의 결핍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고 빨리 성장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작품을 분석하고 배우들의 동선을 기록하고, 매일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과 미술, 조명, 음악 감독님들의 미팅 내용들을 메모하면서 그 시간을 나대로 참 열심히 보냈다. 그 사이 그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20년 가까이 배우로 일한 대선배들과 격이 없이 가까워졌고, 극단에 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먼저 찾았다. 시작은 같이 했지만 6개월 동안 나는 그녀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찾아왔다. 한 번 건드려진 불안은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종종 선배들에게 칭찬을 받는 날도 있었지만 실수를 하는 날에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절망했다.
한 번의 대극장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극단 식구들이 다 같이 워크숍을 가자고 했다. 어디에 가기로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나는 워크숍을 떠나기 전날 밤, 밤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불안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검색하고 찾아 헤매고 다녔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이었고, 나는 워크숍에 무조건 가야만 했다.
그 무조건이 더 두렵고 싫었다. 그래서 가벼운 짐을 챙겨서 남자 친구 집이 있는 신촌으로 갔다. 그리고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무작정 속초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당시에 남자 친구, 현 남편은 나의 상태를 보고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극단에는 어설프고 무책임하며 실망스럽기까지 한 변명을 둘러댔다. 그리고 3시간 동안 속초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기절한 듯 잠을 잤다. 워크숍을 가는 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오히려 나는 더 편안해졌다.
나는 나의 실패를 감지했고, 도망을 쳤다. 처음부터 "가지 않겠다." 말했다고 한들 나무랄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나는 쉬운 길을 놔두고 또 어려운 길을 만들어 걷고 있었다.
갑자기 떠난 여행에 숙소도 여행의 코스들도 다 만족스러울 리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그때의 나는 모든 순간들을 행복해했다. 적어도 사진들을 보면 그렇다.
그때부터였다. 불안을 더 큰 일탈로 상쇄시키려는 나의 기이한 행보들이 시작된 건.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