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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Mar 12. 2024

경계에 서서

삶과 죽음, 일상과 일탈의 경계에서 

작은 언덕이라 생각했다. 

몇 발만 더 가면 언덕 꼭대기고 내려가면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을 거로 생각했다. 

브레이크 사뿐히 밟고 속도 줄이는 과속 방지턱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언덕이 산이 되고 산이 태산이 되는 것 같다.

눈 비비고 하늘 올려다보니  높이에 압도당한다.

고개를 아무리 들어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산 중턱에 깊게 늘어진 그림자는 하늘의 빛을 모두 가려 버렸다.

정상의 높이를 가늠하려고 목을 더 뒤로 재치다 바둥거리며 뒤로 자빠졌다. 

하늘이 온통 까맣다. 까만 하늘이 나를 짓누른다. 

화들짝 잠에서 깼다.  새벽 3시 30분. 


엄마의 응급 수술 시간은 8시.

애매하다. 다시 잠을 자기도 눈 부릅뜨고 기다리기도 시간이 어중간하다.

사건 사고가 일어난 이후 삶을 붙들고 있던 의도와 의지는 사그라지고 

상황에 이끌려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한다. 

아주 작은 상황에서도 무엇 하나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과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길 앞에서 

설렘과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잠을 다시 잘까 말까.... 

지금 이 새벽에 병원을 간다면, 

차 없는 올림픽 대로로 20분이면 병원에 도착할 것이고

지하철 첫차는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병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지는 사이 

엄마를 아주 잠깐  볼 수 있다 했다. 




새벽 첫차.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지하철 한 두 정거장 지나자 

온몸에서 클럽 음악이 배어 나오는 듯한 싱그러운 사람들이 우루르 올라탔다. 

밤새 잠 한숨 안 잤을 텐데 어쩜 저렇게 발랄할 수 있을까? 

마치 나는 한 번도 저런 시절이 없었던 냥 

마냥 신기하게 바라봤다. 

지친 기색 없이 조잘거리는 모습에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퍼졌다. 

애쓰지 않아도 솟아나는 생기와 명랑함.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절. 

엄마는 저 나이에 무엇을 했을까..... 


환승을 하고 다른 색의 지하철에 올라타니 

풍경은 사뭇 달랐다. 

중년이라기에는 나이가 있고 

노년이라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멍한 눈빛으로 드문 드문 앉아 있다. 

낯빛이 어두운 이들, 밤새 일을 한 사람들 같았다. 

한 사람이 핸드폰 게임을 한다. 그러다 잠이 든다. 

전화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에 같은 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마치 고요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을 방해받은 듯 

승객들의 시선은 다정하지 않았다. 


그들과 마주 앉은 내 모습이 그들 사이 창문으로 보인다. 

나는 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 애쓰는 무표정한 내 얼굴이 보기 싫어 

좌석 끝자리로 옮기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감정과 생각이 마치 물귀신처럼 

나의 발목을 잡고 늪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다.

저들의 고단한 표정을 마주하면서

나의 슬픔을 위로하는 게 차라리 나을까? 




이 모든 일이 잠시 잠깐의 일탈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탈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엄마와 수다를 떨고 

동생과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과 작품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단하지 않지만 자잘한 이야기로 나의 일상이 채워지기 바란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보낸 지난 2개월

완벽하게 홀로 글과 책으로 시간을 보내며  

가장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도시 우뚝 솟은 건물에 살면서 

이 시끄러운 도시 소음을 산사의 새소리 삼아 침잠했던 시간. 

그 시간이 계속될 줄 알았다. 

삶의 숙제를 끝내고 이제는 내가 나를 돌봐야 할 시간이라 맘먹고 

아이들 키우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치 20대로 거듭난 것처럼 하나씩 하려 했다. 

그 일상을 꿈꾸고 계획했는데.... 


원망과 희망의 끝을 무수하게 오고 가는 동안 

수술실 앞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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