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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Mar 25. 2024

세상의 모든 미사여구들이여

우리 엄마를 기적이라고 부르거라! 

어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다. 

일어나자마자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따듯한 우유거품을 만들어 

하루를 감당하게 해 줄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유난히 고소하고 따습다.


살다 보니 행복 속에서도 불행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내 앞에 예고 없이 터지는 일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나만의 방식이다. 

무엇보다 나의 의지와 삶의 괘도에서 벗어난 사건을 해결하려면 

강력한 자기 설득이 필요하다. 무적의 무기는 의미 부여와 착각이다. 

인생은 자기만의 해법으로 해석해 나가는 것이기에 

누구는 울고 누구는 남탓하는 상황에서도 나는 다행이라 끝없이 나를 다독였다. 

그럼에도 이번일에는 지나친 의미부여를 애써 피하려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만 되뇌면서 중환자실의 면회시간만을 기다렸다. 




드라마 세트장에 들어간 걸까? 낯설다. 

얼굴 반은 다 가리는 커다란 마스크에 파란색 비닐 방호복을 입고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보호자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른 보호자들의 한 줄 대열 속에 서 있다. 

20분 동안 2명이 방문할 수 있다. 나는 온전히 홀로 이 시간을 사용한다. 

퇴근이 늦은 사람도 있고, 선약이 있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있었도 엄마의 험한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가부장적 질서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나이가 주는 서열을 나름 지켰던 우리 집이었다.

하지만 무작위적인 사고로 만들어진 현실적 문제와 감정 앞에서 

가족서열은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 

다들 나만큼 거친 돌밭과 사막을 걸었을 텐데

인생의 난관이 모든 이들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일찍 독립해서 타국에서 살았기에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들 만큼 가깝지 않았고 가깝지 않은 만큼 좋은 기억이 주로 남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받지 못하고 주지 못한 시간과 정에 부모님의 자리를 늘 아쉬워했는데

막상 곁에 있던 오빠와 언니는 부모님과 가까이 지낸 만큼 멀어진 것 같았다. 




'20분 동안 무슨 말을 할까?' 

중환자실 입구 문이 열렸다. 

한 줄로 서 있던 보호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발맞추어 들어갔다.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보호자들은 순식간에 각자 가족들로 흩어져 환자들 곁에 섰다. 

중환자실 한가운데서 나만 길 잃은 아이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엄마를 찾는다. 


국민학교 1학년 소풍날, 엄마를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 

너무 신이 났었다. 오전 시간 내내 선생님과 친구들과 같이 하는 

노래와 무용과 게임에 홀딱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가 당신이 어디 있다고 말해준 것도 같은데...

점심시간이 되자 동그랗게 모여 서 있던 아이들이 모두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나만 혼자 달랑 남아 엉엉 울면서 엄마를 불러댔다. 

선생님이 내 손목을 잡고 일일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아 주었다. 

선생님의 손에서 엄마의 손으로 내 손목이 넘어가자마자 

난 등짝을 맞았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때 찍은 사진은 명절 때마다 꺼내 본다. 

먼지투성이의 뚝섬 유원지에서 흙먼지로 얼굴에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 

뭐가 그리 좋다고 김밥 한가득 넣고 웃고 있는 못생긴 내 모습. 

그 옆에는 빨간 치마를 입은 어린 동생과 분홍색 한복을 입은 할머니. 

사진 속에서도 카메라를 여유 없이 가족을 위해 음식을 챙기고 있는 엄마....

엄마가 어디선가 빨리  튀어나와 내 등짝을 때려줬으면..... 

중환자실의 다음 단계는 저 지하 어디쯤인데... 

두려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손목을 잡은 건 간호사였다. 

중환자실의 가장 구석으로 나를 안내했다. 

격리실 너머 보이는 엄마. 

입안에는 호흡을 위한 처음 보는 기구가 붙어 있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다리가 순식간 젤리가 되어 녹아내리는 듯 

힘이 빠져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벽을 짚었다. 

코로나 양성이라고 했다. 엄마는 기관 삽관을 했기 때문에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반수면 상태를 유지해 놓는다고 했다. 

창문을 통해 혹시라도 엄마가 볼까 싶어 과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 전공의는 계속 이야기했다. 

엄마의 수술을 정말 잘 되었고, 천운이며 기적이며 

모든 좋은 미사여구를 다 가져다 붙여도 좋을 만큼 

상태가 좋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폐렴끼가 조금 있지만 5일 뒤 격리가 풀리면 

준 중환잔실로 갔다가가 바로 전원을 생각해 보라고까지 조언헀다. 

다리에 다시 힘이 돌아왔다.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흔들림 없이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가족들에게 일일이 엄마의 상태를 알리고 

전원 할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 회복이 이렇게 빠른 건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천운' '천수' '기적' '운 좋은' 이런 온갖 말들을 

나 역시도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전화 속 아빠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평생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준 자존심을 다 내려놓은 것 같았다. 

아빠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엄마의 희생으로 다시 한번 가족 구성원들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듯한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가슴속 작은 열기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쌀쌀한 봄밤의 바람도 따듯하게 느껴졌다. 

'하늘의 덕을 많이 쌓았나 봐요' 누군가 말했던 이 말이 식상하게 들리더니 

나도 모르게 그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평생 착하게 살아서 그런 거야, 엄마' 


그 선물로 즉사, 사지마비, 식물인간 같은 모든 흔한 경우의 수를 비껴가고 

하늘이 평생 남 뒷바라지만 했으니 이제 침대에서 잠시 쉬어 가라고 선물을 받았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따듯한 물로 샤워하고 일찍 누웠다. 

병원에서 전화올 일은 없을 거라는 안도감에 전화기 소리를 진동으로 변경하고 

진통제 두 알을 삼키고 악몽 없는 잠을 자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잠에 들었다. 

단단하게 뭉쳐 있던 어깨가 약효가 퍼지면서 풀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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