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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Mar 26. 2024

신의 손바닥 뒤집기

다시 뒤집어 달라고요!!!

전화기가 방바닥에서 요란하게 진동한다.

분명 머리맡에 두고 있었는데 언제 바닥으로 떨어졌는지

외부 세계와 거의 담쌓고 사는 나에게 이 새벽에 전화가 올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짧게 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새벽 4시 30분,  신경외과 담당 의사다.

제1 보호자로 등록해 둔 오빠가 전화를 받지 않아, 나에게로 했다고 양해를 먼저 구한다.

나는 오빠동의 없이 제1 보호자를 나로 바꿔 달라고 했다.

전화가 3번 울리기 전에는 무조건 받는다고 말했다. 의사가 살짝 웃는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로 봐서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건데 의사가 살짝 웃는 걸 보니

퇴근 전에 확인차 전화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갑자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도심 한복판에서 핸드폰이 터지지 않다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놀라지는 마시고요.'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구나.....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워서 전화를 받고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방 불을 켰다.

방을 서성이며 전화를 받다가 거실로 나가

온 집안의 불을 켜고 서성이기 시작했다.

의사는 거의 30분을 설명했다.

이따 저녁에 면회 오면 다시 한번 더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의사의 담담한 말투가 더 무서웠다.

아직은 어두운 밖을 뚫어지게 보기만 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 알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의사 말대로 오늘 하루 지켜봐야 하는 걸까?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깨워서

나의 불안을 함께 나누자고 울어야 할까?




식탁에 노트북을 펴 놓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나의 지식과 정보를 재확인해가면서

의사와 전화하면서 머리에 박힌 몇 가지 의학용어를 초록창과 색동창에

한국어와 영어로까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검색하는 행동 그 자체로 나의 불안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검색한 정보를 엄마의 상태와 앞으로의 일들에 적용해 가면서

나의 마음과 오늘 하루를 보정해야 했다.


재활과 전원을 준비하라 했던 어제와 다르게

몇 시간 만에 뒤집혀 버린 상황.

상태가 이렇게 순식간에 급격히 나빠질 수도 있는 걸까?

산소 포화도, 염증, 혈당, 혈압, 체온, 호흡 모든 바이탈 사인이

정상범위를 벗어나 밤새 약물 투입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했다는 것이

새벽까지 엄마 곁에 남아 주었던 의사의 요약이었다.




제주에 계신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늘인지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나는 모르겠다.

6개월 전에 호스피스 병원으로 전원 하시고

삶의 마무리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남편도 아들도 먼저 보낸 고모곁에

촌수가 제법 먼 조카가 오며 가며 현지 보호자 역할을 했고

엄마와 아빠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고모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는데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고모가 언제 가실지 모른다면서

가을에 베트남 여행 가는 것도 취소하고 고모를 돌보고 있었다.


고모가 엄마를 유독 믿고 좋아했다.

아빠처럼 다들 한 가닥 승질머리 내세우는 집안사람들과 달리

엄마는 수더분하고 묵묵하게 평가와 판단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타입이다.

호스피스에 들어간 암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상대였다.

그런 고모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다.

아빠에게 전화로 물었다.  가족이 없어 5일장은 아니고 3일장인 것 같다면서

발인은  내일이고 고모의 유언에 따라 고모부의 선산으로 모셔지고,

이후에 근처 절에서 마지막 천도재를 한다고 설명하셨다.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특정 종교인은 아니다.

종교와 믿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또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사고와 감성의 복합체다.

종교는 인간이 난관에 빠졌을 때

삶과 존재에 대한 여러 가르침과 깨달음과 의미를 가져다준다.

초월적인 존재와 소통하면서 도움을 구하기에

어떤 정신상담보다 실용적일 수 있다.


난 아이들에게 자주 말했었다.

살면서 너희들이 신을 찾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신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최선의 노력으로도,

인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봉착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은 대부분 고통과 슬픔을 동반한다.

부모맘으로 아이들의 삶이 기쁨과 웃음으로 가득하기 바라기에

아이들이 종교와 신을 찾지 않는 인간 존재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기를 바란 것이다.


지금 나는 세상의 모든 신을 소환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들이시여,  제발, 들으소서!

당신들의 위대한 능력으로 사람 생명손바닥 뒤집기처럼

돌려놓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처음에 시작한 기도와 바람이

마지막에는 신에게 따져 묻는 요청과 강압으로 변했다.

누군가 그 상황을 지켜봤다면 분명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야 한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오직 나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듯한

초월적인 존재들과 대화하며  집안을 서성였다.

그리고 각각의 신과의 대화끝에

내일이면 발인으로 세상을 완전히 떠날 고모의 영훈에게 말을 붙였다. 신들도 들으라고.


'고모, 제발 혼자 가세요. 엄마가 고모의 삶을 아름답게 정리해 드렸잖아요.

엄마 아빠 회복하고 나면 다 함께 찾아뵐게요, 제발 지금은 외로우시더라도

편안히 혼자 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네?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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