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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Mar 29. 2024

낯선이들의 위로

엉뚱한 시공간에서 무너져 버린 방어벽

20분의 중환자실 면회를 끝내고 다시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면회가 끝나면 가족들에게 일종의 보고처럼

톡을 보내 안심을 시키는 게 나의 일이었다.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있지만 몸은 저절로 숙여졌다.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고 고개를 푹 숙였다.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만 보인다.


'뭐라고 써야 할까?..'


눈에 보이는 엄마의 모습과 의사의 설명은 일치했다.

의사는 엄마의 몸에 매달려 있는 온갖 장치와

그 장치들이 나타내는 수치를 언급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새벽 보다 상태가 조금 더 악화되었다고 했다.


마음속에 있던 깊은 희망과 절망이 눈과 귀를 막아 버린다.

의사의 설명을 수긍하고 싶지 않아 진다.

객관적 상태와 주관적 판단의 괴리가 깊어만 간다.

점점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생에게 톡이 왔다.


'면회 끝났지? 엄마 어때?'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사실 중에서도 

충격적이지 않을 내용만 건조하게 전달했다.

문자를 쓰면서 과연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계속 의심이 들었다.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지금 쓰는 내용은 거짓처럼 여겨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내가 애써 나의 의도를 배려였다고 말하다고 한들

곧이곧대로 받아 들려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되면 형제자매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것이 될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무겁고 버겁다.


독점과 공유,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

어떤 돌발 사태라도 생기면

처리하고 책임져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에

우선은 심각한 말은 아직은...  아직은 말하지 않는 게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동생은 내 문자에 안심했고, 동생에게 보낸 문자를 복사하여

나머지 형제자매들에게도 보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문이 열렸다. 탈 자리는 충분히 있었지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비상계단으로 갔다.

휘청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주면서 터벅터벅 한 계단 씩 내려왔다.




운이 좋은 걸까, 시간이 늦은 걸까? 지하철에 앉을자리가 있었다.

그것도 내 모습이 창문으로 비치지 않는 구석 자리다.

온몸의 힘이 빠진다.  

강화 유리 벽면에 머리를 기대고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힘껏 웅크렸다.

이른 새벽 눈을 뜨고 이제 눈을 붙인다.

의사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 말의 무게에 내가 점점 쪼그라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중환자실의 풍경이 마치 연극 무대세트처럼 무너져 내린다.

그 밑에 내가 깔려 버렸다....


옆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괜찮아요?'




앞으로 쏠린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이 뿌해서 나이를 잘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큰 아들 나이 또래 같았다.

어색하지만 아주 큰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온 표정이다.

감정을 추스르고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고 손바닥으로 눈과 볼을 닦았다.

코트 앞섭도 축축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으로 툭툭 털어 버렸다.

멍하니 그 청년을 봤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청년이  물었다.


'괜찮으신 거죠?'


무해하고도 다정한 그 눈빛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꾹꾹 눌렀던 울음이 통곡처럼 터져 나왔다.


'엄마가... 죽을 수도 있대요... 오늘 밤 잘 넘겨야 한대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앞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안고 있던 자신의 배낭에서 무엇인가를 급하게 찾는다.

가방을 자리에 두고 '끙' 하고 일어나더니 

내 앞으로 와서 휴지를 건넨다.


'사람 목숨 그렇게 쉽게 안 가요, 울지 마요, 아휴, 딱해라'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던지는 따듯한 한마디 두마디가 

나의 어깨와 마음에 놓인 돌덩이를 하나 둘씩 들어내 준다.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와 감정을 추스르고 주변을 돌아봤다.

앞과 옆 모든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보고 있거나,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칸으로 옮겨가는 사람도 있었다.

순간, 사회적 방어벽이 다시 세워진다.

고개 인사를 하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보였다.

휴지를 건넨 아줌마는 자신의 배낭이 놓인 곳으로 돌아가 

 아기 보듬듯 배낭을 다시 품에 안고 자리에 앉았고

아들 닮은 청년은 자신이 내릴 곳이 되었는지

목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문 앞에 섰다.

지하철 도착 방송이 이제야 다시 귀에 들린다.

내가 환승해야 할 역은 이미 한참이나 지났다.

도대체 몇 분을 그렇게 잠이 든걸까?


민망하고 어색한 감정은 이제 오직 나만의 몫이다.

나도 다음 역에 내릴까 말까 하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가족들에게 차마 보이지 못했던 감정들, 그 무게에 지쳤던 나는

지하철 쪽잠에도 악몽에 시달릴 정도였고,

그 모습에 걱정된 처음 보는 사람들의 위로가 얼마나 따스했는지

꺼이꺼이 울어 버린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보낸 무해한 다정함에

온몸의 긴장은 봄날의 서리처럼 녹아내렸다.


그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고 

또 건너고 세 번째 건너서야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를 위로해 준 사람들, 나를 힐끗 봤던 사람들

모두 다 내리고 사라져 다시 낯선 익명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던 동안

나는 가족들에게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무거운 감정과 책임을 훌훌 다 털어냈다.


바뀐 건 하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하나 없다.

하지만 이 변치 않는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 시선이 달라진 것 같았다.

다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아스러져가는 희망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다.

엄마는 분명 오늘 밤을 이겨낼 거다... 힘내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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