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능동적으로 취해보세요
정말 취향에도 분수가 있나요
- 취향에 능동적으로 취해보세요
EP1.
"그거 감성값이야. 이쁜 건 비싸. 몰라?"
주말에 홈리빙 소품을 파는 매장에 들렸다. 작은 방 안에 큼지막한 쓰레기통이 있는데 화장대 위에 둘 작은 쓰레기통을 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소비인가 아닌가를 2년 동안 고민했다. 이 정도로 매번 쓰레기통이 있으면 좋겠다고 떠올랐으면 충분히 사도 좋다고 흔쾌히, 죄책감 없이 매장으로 향했다. 아메리카노 주문하면서 얼마인지 가격 확인도 잘 안 하게 된 주제에(반성한다는 뜻이다) 이걸 2년 동안 고민하다니 아이러니하구나 싶으면서도. 둘러보는데 딱 마음에 드는 작은 쓰레기통을 발견했다. 한 3,000원 정도 생각하고 왔으나 이건 이쁘니까 5,000원 정도는 당연 더 쓸 의향이 있어, 얼마지 했더니 18,000원이었다. 손바닥만 한 데스크용 쓰레기통을 18,000원 주고 사려니까 선뜻 손을 뻗을 수가 없었고 뒤에서 남자 친구가 저렇게 말했다. 감성값이라고. 결국 3,000원짜리 플라스틱 다용도용기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작고 예쁘지만 그렇지 못한 가격의 쓰레기통은 사지 못했다.
EP2.
"야 분수껏 살아. 자동차도 아니고, 그런 걸 돈을 모아 산다고? 취향에도 분수가 있는 거야. 우리 정신 차리자."
브랜드가 평소에 추구하는 철학이 마음에 들어서 가격대가 조금 높더라도 돈을 모아서 구입하는 제품들이 몇몇 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핸드크림이나 티셔츠처럼 소모품이거나 생활용품이라 주기적으로 구입을 할 때가 오면 유념하고 있다가 예산을 모아둔다고 했더니 친구가 한 소리 했다. 그리곤 내가 말한 브랜드와 비슷한 느낌의 저렴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줬다. 가격 차이 보라면서 나는 이런 쪽에서 돈이 새고 있는 거라고 진단까지 내려줬다.
EP3.
"가난은 가난의 품위를 낳는다. 임금 대비 고된 노동을 마치고는 당장의 기쁨과 보상을 위해 푼돈으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거나 치킨을 시켜먹는다. 가난한 사람은 문화와 여가에 돈을 투자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 푼돈을 아껴모아서 계급 상승을 위해 노력한다거나 더 나은 여가생활을 하기 위해 집중한다는 건 힘든 결정이기에 그들이 항상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P4.
"난 그냥 여기가 좋아. 여기서 태어난 것 같아. 결혼식도 여기서 한 것 같고."
영화 <기생충>에서 지하 3층 정도 되는 것 같은 방공호에 숨어 살고 있는 문광의 남편이 뱉는 말이다. 고작 위대하신 예술 건축가 남궁현자님의 작품 속에서 누린다는 게 술 쳐 먹는 것뿐이냐고, 하기사 햇살과 어우러지는 고풍의 아름다움을 너희들이 알리가 있냐고 소리 지르면서도 결국은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서의 삶이 좋다고 한다. 만족스럽고 살면 또 잘 살아진다고 답한다.
-
취향과 자본에 관련하여 최근 경험했거나 보고 들은 이야기이다. 세 번째는 에피소드라기보단 SNS에서 본 누군가의 사견이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라 더 편하게 대했나 보다 싶어 나도 가차 없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 말은 막역한 사이에서 나온 네 예의 없는 발언이었음을 주지 시켰다. '감성값'이니 '품위유지값'이니 하며 이쁘고 멋진 건 다들 비싸다. 맞다. 비슷한 디자인을 카피한 저렴이들은 개인적으로 꽤나 싫어하기에 안 가지면 안 가졌지 저렴이는 최대한 지양하는 편이다. 여기서 품위유지라는 것이 분수나 생활수준과 일맥상통한 개념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배경지식을 공부하던 중,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문화자본이란, 사회적으로 물려받은 계급적 배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속적인 문화적 취향을 의미하며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개념화하였다. (문화산업의기초이론, 2014. 4. 15., 김평수)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부여받았다는 계급에 의해 얻게 된 취향은 운명론 마냥 타고나 바꿀 수 없다는걸까. 이 역시 동의할 수 없다.
'문화예술 교육 경험이 문화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연구(문화정책논총, 2011. 02., 이호영. 서우석)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 소비에 관한 연구들은 상류층은 고급문화를 선호하고 하류층은 저급문화를 선호한다는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 이론이 한국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가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왔다고 한다. 특히 연구를 통해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 교육의 경험이 현재의 문화 소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부모의 상승지향적 실천의 일환으로서의 문화적 투자의 의미를 밝혀 보고자 했다. 단어가 낯설어서 그렇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에게 ‘교양’을 위해 쓰는 돈의 목적이 결국 계급 상승이 맞는지와 그것의 달성 여부와 정도를 알아보겠다 이 말이다.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정규 교과 과정 이외의 사적인 문화예술 교육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고 이 경험의 질과 양을 좌우하는 것이 상당 부분 부모의 경제 자본, 문화 자본이기 때문에 문화적 재생산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문화예술 교육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은 공교육에서 배우는 문화예술 교육은 매우 한정적이며 이는 개인의 취향을 함양하는데 근본적인 힘이 되기 어렵다고 해석해볼 수 있겠다. 그러기에 부모가 돈을 써서 학교 수업 외 시간에 문화예술 사교육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그 경험이 문화취향의 계층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문화예술 교육의 확대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취향을 결정짓는 정규 교육 이외의 문화예술 경험은 꼭 비용을 지불하는 사교육만이 답일까. 글자 하나만 쳐도 원하는 정보가 밀물처럼 밀려오고, 원하지 않아도 정보 입력을 강요당하는 인터넷 만연 시대에 '사회적 계급'에 연연해하지 않고 스스로 취향을 고취시킬 수는 없는 걸까. 인터넷이 괜히 있느냔 말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했다. 무엇이 좋고, 더 좋은지는 데이터베이스가 쌓여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건 단순 이론이 아닌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있다 한 들 들어보지 못했다면 알 수가 없다. 경험의 깊이도 중요하겠지만, 얕은 경험일지라도 다양하고 반복적인 기회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런 사색의 누적은 내가 어쩔 수 없이 부여받은 사회계급을 벗어나 상당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해 준다. 취향마저 노력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라 말하겠다. 이런 곳에서 살면 살아지냐고 혀 차는 소리를 들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기가 편하다고 말하는 <기생충>의 근세는 시나리오 안에서 성공적인 반전을 보여준 멋진 캐릭터이면서도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웠던 캐릭터였다. 저들이 뭘 알겠냐고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마스터피스 건물의 운치를 말하는 자가 거기서 만족하고 멈춰버리다니. 내가 비록 방공호에 살지만, 나는 라디오에서 종종 틀어주는 리처드 용재 오닐이 연주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좋더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거다. 맛봤다면 즐길 수 있는 거고, 더 자주 맛보기 위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능동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취해보길 권한다.
관련 글들을 읽어보다가 발견한 읽을 거리가 다채로운 글 하나를 공유한다.
https://brunch.co.kr/@soulstory/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