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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Aug 10. 2020

아이 없는 우리 집

배경은 그저 단순하고 납작하게 생략된 채였다. 주변에 내 가족과 남편 가족 중 몇 명쯤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의사가 내 어린 딸을 두고 하는 말임은 분명했다. “이 아이는 곧 죽을 겁니다.” 혹은 “이미 죽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소리를 나는 듣는다. 갑자기 왜! 그때는 이유 따질 겨를도 없었다.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없다는 말이니까. 일단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꼬옥 안아본다. 아직 아이는 말랑하고 따뜻하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남은 일상을 밀도 높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아이의 보호자로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병원에 정식으로 설명이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문득 아이의 코에 손을 갖다 대어 보고 아직 숨을 쉰다는 것에 안도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때 알람 소리에 침대 위의 잠 깬 나로 돌아왔다. 눈앞엔 잠든 아이가 있다. 내 눈가엔 진짜 눈물이 맺혀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개똥 같은 꿈이 있나. 상상만으로도 슬픔과 절망이 억수같이 몰려와 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제 읽다 잔 SF소설 때문에 이런 꿈을 꿨나 보다 생각하며 식탁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 아이가 방문을 스스로 열고 나온다. 아이에게 엄마가 안 좋은 꿈을 꿨다고 아이를 꼭 안아본다. 스스로 움직이고 자유롭게 말하는 건강한 아이에게 그저 끝없이 고마운 마음이 되어버리는 아침이었다.

올해 8월엔 유독 아이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이를 낳고 두 번째로 아이와 오래 떨어져 있어서다. 이번 여름에 나의 방학기간과 아이의 방학기간이 서로 맞지 않아, 12일간 서울의 시어머니께 딸을 부탁드렸다. 딸을 시가에 두고 남편과 둘이 내려오는 차 안에서 문득문득 조용한 뒷좌석의 카시트를 의식하게 되었다. 당연히 비어있는 뒷자리를 보며 아이의 부재를 점차 실감하게 되었다. 그 시간 차 안에서 그동안 아이에게 짜증내고 못해준 것이 자꾸 생각나,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창으로 얼굴을 돌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없었던 2주 가까운 시간을 떠올려 보면, 분명 여유로웠다. 출근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고 쫓기는 일 없이 천천히 퇴근했다. 유치원 하원 시간 걱정 않고 저녁 약속을 잡아도 되었다. 끼니를 위해 바삐 준비할 필요 없이 그저 간단히 때워도 나에게만 미안해하면 됐다. 집에선 책을 읽던 핸드폰을 하던 방해받지 않고 하다가 말다가 자유롭다. 요가원 갈 시간이 되면 남편이 오던 오지 않던 가면 됐다. 저녁엔 남편과 통 자몽 빙수도 사 먹고 독특한 맛의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을 치즈를 곁들여 마셨다. 와인을 마시곤 둘이 새벽에 편의점에서 msg 잔뜩 든 달고 짠 간식을 사 먹기도 했다. 아이랑 먹을 수 없는 날 것의 술안주를 사 먹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오랜만에 작은 소극장에서 연극도 봤다.

일주일이 넘어 일탈과 같은 시간에 적응되자, 이젠 일상이었던 딸과의 시간이 기다려졌다. 내 주변에서 종종거리던 아이가 너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안 자냐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자기 전에 물먹고 싶다고 나를 귀찮게 침대에서 일으키는 이도, ‘쉬 마려워’ 허락을 받는 이도, ‘응가 다했어’ 하는 소리에 화장실로 불러들이는 이도, ‘응가 싸는 소피’ 이야기를 하고 또 해달라고 조르는 이도, 젤리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고집 피우는 이도, 싱크대 앞에 서있을 때 캐릭터 역할놀이하자고 매달리는 이가 없다. 또한 뒤에서 내 목을 감고 놀아달라고 애교 부리는 이도, 선물이라고 색종이에 정성껏 그린 그림을 주는 이도, 자기가 써준 편지를 왜 꺼내보지 않냐고 자꾸만 보여주는 이도, 내 얼굴에 얼굴을 비비며 좋다고 뽀뽀해주는 이도 없었다. 아이가 없지만, 아이로 가득 채워진 집에서, 그저 아이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울의 아이도 나를 찾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하면 끊기가 힘들고, 영상통화를 하면 울면서 끊기 십상이라 전화도 마음 놓고 해 볼 수도 없었다. 시어머니의 소식이 기다려지고 궁금한 소식을 남편에게 대신 연락해보라고 할 뿐이다. 랑랑한 목소리가 아른아른, 생각날 때마다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사진만 보고 또 볼뿐이다.

다행히 2주를 채우지 않고, 남편과 나 둘 다 연차를 낼 수 있어서 아이를 데리러 이틀 일찍 갈 수 있었다. 헤어지는 날, 아이는 생각보다 매우 태연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아이를 꼬옥 안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잘 있어. 엄마 언제 올까?” 했더니 “엄마 올 수 있을 때 와.”라고 어른스럽게 말하고는, 킥보드를 타고 휙 돌아서서 쿨하게 인사하던 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다고 연락을 한 이후부터 아이는 엄마, 아빠 언제 오냐고 할머니를 들들 볶아댔단다. 벨을 누르자 아이는 신이 나서 먼저 보인 아빠(평소에는 본채 만채하는) 다리에 찰싹 매달려 헥헥거리며 좋아했다. 뒤이어 나를 보고는 내 품에 폴짝 안겼다. 그리웠던 아이의 꼬물꼬물한 몸이 만져지고 목소리가 생생하게 내 귓가에 다시 들린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오랜만에 만난 아이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진 것이 변한 것 같고 모습도 조금은 달라진 것만 같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도 놀다가, 먹다가 자꾸 나에게 와서 안기고 다시 가고 한다.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 돌아오면 화 안 내고 짜증 안내고 소리 높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 안된 아침이었다. 늦게 잔 아이를 힘겹게 깨워놓으니 어찌나 꾸물대는지, 지각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대는데도 여유 넘치는 아이에게 조급해진 나는 큰 소리까지 내버렸다. 이내 후회하고 엄마가 푹 못 자게 하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하자 “엄마가 늦게 자게 했으면서 나보고 뭐라 해.”하고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지각에, 아이에게 성질까지 부린 못난 엄마는 핸들을 잡고 출근하는 내내 미안해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다짐했다. 무조건 일찍 재우리라. 아이 컨디션이 좋으면 내가 화낼 일이 확 준다.

그날 하원 해서는, 아이의 숙면을 위해 퇴근 후 일과를 남편과 분담하여 서둘렀다. 9시가 좀 넘었을 때, 양치도 하고 책도 읽고 자기만 하면 되는 시간의 불이 꺼진 침실에서다. 이대로만 자면 아이는 푹 잘 수 있다. 침대에서 아이를 옆에 눕히고 이제 진짜(!)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이도야 잘 자. 사랑해.” 귀여워 잘 자라는 마음으로 이마에 쪽 뽀뽀를 했으나 이내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시작한 ‘사랑’에 이어, 질세라 사랑고백을 늘어놓는다. “엄마 나는 음. 음. 지구가 백만 번 터지고오.. 어..어. 우주가 이백 개 터질 만큼 엄마를 좋아하고 사랑해. 사람이 백 명, 아니 우주가 백개, 천백 개 있는 거보다 더 많이 좋아해요. 엄마 뽀뽀 백번 해줘.” 그러면 안된다고, 뽀뽀하느라 일찍 못 자면 내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바쁘니까. 그러면 엄마가 짜증을 낼 수도 있어서 일찍 푹 자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약속했다. 내일 아침에 뽀뽀 백 번 해서 깨워줄게. 꼭 일어나야 해. “지금 백번 해줘.” “아니 내일 아침에 해줄게.” 몇 번 더 행복한(?) 실랑이 끝에 겨우겨우 아이를 재웠다. 시계를 보니 21:50 와 성공이다. 10시 이전에 재우기! 잠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어쩜 이 아이는 이리도 금방 잊고, 나에게 과분한 사랑을 아낌없이 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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