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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May 10. 2021

나의 자몽한 일주일

꼬리에 꼬리를 물어버린 맥락 없이 몽롱한 생각들

오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지나고 있는 지금, 무얼 해도 쨍하니 좋을 오후건만 애석하게도 나는 지금 졸리다. 평소라면 그대로 엎드려 단 5분이라도 달게 자고 일어났을 텐데. 이 상태로 잠깐 눈이라도 붙였다간 그대로 밤이 될 것만 같아서 그냥 이대로 밤까지 버텨보기로 한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꾸벅이고 있는 강아지 두유가 마침 잠든 틈을 타 해야 할 일도 몇 가지 있으니까. 바닥부터 쓸고 빨래를 돌려두고 오늘까지 읽어야 할 시나리오 pdf를 클릭한다. 새하얀 화면 위에서 갈 곳을 잃은 마우스 커서처럼 두 눈도 깜빡깜빡 느려진다. 으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졸린 눈꺼풀이라더니. 졸린 김에 어디 딴생각이나 좀 해볼까.


“아 졸려~”라고 했다가 귀여운 척한다는, 애먼 타박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딱히 귀여운 척하지 않아도 귀여웠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 내게 아니 땐 귀척(귀여운 척)을 지적한 사람은 포항 출신의 동기 언니였는데, 언니의 고향에서는 ‘졸려’는 아이들이 주로 쓰는 애기어고, 보통은 “아 잠 온다~”라고 한다는 거다.

엥? 서울에서 나고 경기도에서 자란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잠 온다’가 더 애기어 같지 않나? 귀척할 때 흔히 저 자신을 3인칭 화하는 것처럼 ‘잠’을 의인화하는 것 같잖아.

마치 “(귀여운 하품) 아햠~ 이마는 잠이가 온다요 뿌잉~”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의 이런 반박은 그 자리에 있던 동기(광주 출신)의 가세로 졸지에 귀척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적이 있더랬다.

그 후에 알았지만 이 논쟁은 온라인상에서도 꽤 핫한 이슈였다고 한다. 나 역시 주변에서 한번 짚어주고 나니 어느 날 또렷하게 들렸다. 엄마(대구 출신)와 아빠(남원 출신)가 늦은 밤 TV를 보시다 “아이고 잠 온다~”라고 하시는걸. 그렇게 끄덕였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졸리면 잠이가 온다는 걸. 다른 지역도 그런지 문득 궁금해진다.


곁에서 꾸벅이던 두유가 스르륵 몸을 기대온다. 우리가 이렇게 졸린 오후를 보내고 있는 이유는 아침부터 강아지 마라톤(댕댕런) 5km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하루에 두세 번 산책을 하기 때문에 무난한 거리였지만 이렇게 피곤한 건 아마도 좋은 날씨에 흥분한 우리가 7km를 뛰어버린 탓이리라.

함께한 지 이제 막 반년이 된 우리의 첫 마라톤을 위해 나는 본가에서 새벽 6시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어쩐지 두유를 라이벌(?)로 여기는 부모님은 어버이날이 지나자마자 아침 댓바람부터 돌아간다는 말에 적잖이 서운한 기색이었지만, 같이 뛰는 친구와의 선약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신의 딸이 심각한 강아지 분리 불안을 앓고 있어서 달리 어쩔 도리가 없으셨다.


본가에는 지난 목요일부터 와 있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갔던 게 보통인지라, 놀래 줄 속셈으로 아무 말 없이 목요일 본가로 퇴근했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너무나 좋아하시는 거다. 예상보다 훨씬.

고백하자면, 부모님에겐 ‘하루 더 빨리 보고 싶어서’라고 했지만 실은 일요일에 나서야 하니까 하루 더 먼저 가야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그저 집에서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아하시다니. 셈 없는 부모님의 사랑은 가끔 날 너무 멍하게 만든다.


같이 있던 3일간이라도 부모님과의 시간에 집중했다면 지금 이렇게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것 같다. 밀려있던 대화는 잠시, 그보다 더 밀렸다고 생각한 내 일들부터 해나가기에 앞섰고 바빴다. 또 다른 일에 밀려 평일에는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읽고, 썼다.

어버이날에는 또 마침 전주국제영화제의 폐막날이라, 하필 딱 그날까지만 볼 수 있는 상영작을 내리 8편을 봤더니 하루가 끝나버렸다. 최악의 황사가 집콕의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되어줬지만 그걸 핑계 삼아 틀어박혀 내 일만 하는 내가 최악의 불효녀가 된 것 같았다. 8편의 영화 속 캐릭터와 줄거리가 뒤섞인 악몽으로 뒤척이던 4시간이 지난 후, 부모님을 뒤로하고 부랴부랴 역으로 향하는 내 뒷모습을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에 담았을까.

점처럼 사라지는 내 뒷모습을 아빠는 바라봤나 보다

지난주에는 미팅이 잦았다. 앞으로 기획개발 예정인 아이템과 잘 맞을 작가들을 찾기 위한 미팅이었다. 각자의 노하우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무조건 만나본다. 필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소통이 되어야 한 배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가 한 방향으로 항해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는 수밖에는 없다.

길어야 두 시간 정도. 문답이 오가고 나면 대충 어떤 분인지 윤곽이 드러난다. 여전히 희미한 실루엣 수준이기 때문에 단정 짓기에는 섣부르지만 11년 차의 촉이 그 간극을 채워줄 거라 믿는다. 실제로 그 촉으로 찾아낸 작가들이 작고 큰 성과를 쌓아가고 있어서 든든하기도 하고. 기획자와 창작자로서의 우리의 지반을 더 튼튼히 채워나갈 작가를 만나고 싶다.


코시국인지라 사무실보다는 주로 카페에서 미팅하다 보니 하루에 커피 한두 잔은 기본으로 마신다. 실은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한다. 정확히는 늦은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벌렁벌렁 뜬 눈으로 뒤척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드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조심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카페인을 잘 받는 체질인 거다. 가만, 잘 받으면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괜찮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정정한다. 카페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인가 보다. 나는 뭐든지 무던하게 받아들이고 싶은데, 나이를 먹어도 쉽지가 않다.


더듬어보면 직장인이 된 후부터 평일 아침 커피를 챙겨 마셨던 것 같다. 출근길에 커피를 마셔야만 그날을 각성한다고 생각해왔고,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 출근길에는 쓰리샷 아메리카노를 마셔왔다. 11년간 줄곧 출근길 커피를 챙겨 마셔 온 카페인 취약체는 지금, 주말 출근길 커피를 마시지 못해 자몽한 채로 누워있나 보다. 이대로 좀 더 버티면 찾아오는 밤에는 몸 한구석에 닿은 온기에 기대어 잠을 청해봐야겠다.

하루를 지탱해주는 출근길 커피와 과일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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