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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미 May 18. 2021

1711번 버스를 기다리며

톡톡, 당신의 옆자리로부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은 제 친구를 소개해볼까 해요. 왜 자기소개가 아니라 친구 소개냐구요? 제 친구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마 저를 일부분 알게 된 것과 다름없을 거예요.


우리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으로 거슬러~ 2010년 8월, 첫 회사 면접이 시작이었죠.

우리의  회사는 영화를 수입/배급하던 곳이었는데, 저와 친구는 그곳에서 수입하는 영화의 마케팅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면접자였어요.

최종 1인을 선발하는 면접이었으니 사실상 경쟁자로 처음 만난 셈이죠. 까맣고 긴 곱슬머리에 굵은 아이라인, 목에 선명한 나비 모양 타투. 당시 경쟁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봤던 건지 친구에 대한 첫인상은 이 정도였습니다.

친구를 가운데로, 오른쪽에는 제가, 왼쪽에는 다른 면접자 이렇게 세 명이 나란히 면접을 봤고 자기 PR로 주어진 시간에 버벅대던 우리와 달리, 왼쪽에 있던 면접자는 화려한 언변을 갖춘 사람이었죠.

세상에 심지어 그 회사에서 수입한 영화들의 전단 묶음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하는 순간, 여지없이 탈락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이튿날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 다음 주에 출근해보니 제 책상 옆자리에 친구가 앉아 있었어요. 후에 알았지만 저도, 친구도 일단은 서로가 탈락했을 거라 생각했더라구요. 역시 친구라면 이심전심!


솔직히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친해질 거라 생각은 못 했어요.

일단 우리는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과 분위기부터 달랐습니다. 결이 비슷한 사람을 곧잘 알아보고 친해져 왔던 저로서는 다가가기 쉬운 인상은 아니었죠. 그런 우리가 친해진 계기가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회사 욕하면서부터였던 것 같긴 한데...

입사한 지 일주일쯤 됐을까요. 친구가 컴퓨터에 붙은 빨간색 차압 딱지를 보고 제게 일러주면서 우리에겐 모종의 동지애 같은 게 생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들어올 때 같이 들어왔으니, 기왕 나갈 거면 같이 나가야 한다는 류의 동지애 말이죠.

그 시절 트렌드(?)였던 88만원 세대에 걸맞게 월급은 꼴랑 80만원 쥐여주면서 온갖 일은 다 시키고, 당연하게 서류를 위조하고, 아침부터 업체에서 밀린 돈 달라는 연락을 받고, 직원들 임금과 퇴직금은 체불하면서, 그 돈으로 지 영화를 찍는. 참 시트콤 같던 그곳은 우리들의 잠들어 있던 투쟁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습니다.

2010년 겨울의 강릉 일출여행

신기하게도 성도, 나이도, 키도 같았던 우리는 알고 보니 닮은 구석이 더 많았어요.

친해지면 애칭을 만들어 부르곤 하는 제가 친구를 ‘미나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할 즈음,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는 사장과 마주 보고 밥 먹기가 싫어 사무실 근처 놀이터 정자에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어요. 한숨과 눈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던 도시락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퇴근 후 닭꼬치 트럭에서 맥주 한 잔이나, 잔뜩 취해 갔던 새벽의 노래방, 야근하던 나날들은 여전히 생생하지요.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1년 반을 보내고, 무언의 약속처럼 우리는 한날 한시에 동반 퇴사를 했습니다.


위조 서류를 만들어 천벌 받은 걸까요?

우리의 두 번째 회사는 더 혹독했습니다. 첫 회사에서 만난 사수가 차린 영화 홍보사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말 그대로 마른 땅에 헤딩하고 비비고 굴렀지요. 1년을 일했던 미나상이 퇴사하고 난 후에도 저는 2년이나 더 일하고 도망쳐 나왔어요. 동기도 없는 마당에 대체 어떤 생각과 무슨 정신으로 버틸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냥, 이 죽일 놈의 책임감으로 3년은 채워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20대의 끝자락, 소중한 청춘을 쏟아부었다는 말밖에는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 시기의 제게는 일 외에 생각나는 추억은 없네요. 그저 새벽 퇴근길, 다른 홍보사에서 야근 중인 미나상과 종종 나눴던 메마른 통화만이 기억날 뿐입니다.

사진은 페스티벌의 추억을 남기고~

그렇게 20대를 떠나보내고 30대를 맞이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겨워졌던 것 같아요. 2018년, 퇴사부터 하고 언젠가로 마냥 미뤄뒀던 것들을 시도해봤어요. 미나상은 오키나와로 워킹홀리데이를, 저는 영화 시나리오 공부를 하며 채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미나상을 만나러 오키나와로 갔어요. 2019년 새해를 같이 맞이하면 어쩐지 없던 용기도 불끈할 것 같았거든요. 흐린 날씨 탓에, 기대했던 1월 1일의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실컷 편의점을 털어와 놓고 오프너가 없어서 와인병에 수건을 돌돌 말아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치던, 파자마 차림에 배 잡고 깔깔대던 12월 31일의 밤은 이제 다시는 없겠죠. 지금 떠올려도 정말이지 없던 용기도 불끈해지는 풍경입니다.

2019년 1월의 오키나와
2019년 12월의 콘서트

생각해보면 2018년이, 오키나와에서 맞이한 2019년이 지금의 우리가 새로운 곳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또 같이 사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해요.

2019년 저는 영화 기획 제작일을, 미나상은 뮤지컬 홍보에 도전했고 2020년 저는 크랭크인을, 미나상은 무사히 개막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5월부터 같이 살고 있는 우리는 2020년 11월에는 강아지 두유를 입양해 세 식구가 되었습니다.

너와 나와 우리의 두유

2021년 5월 18일, 오늘은 우리가 동거한 지 딱 2주년이 되는 날이네요. 지난 2년간 서로가 익숙해지는 바람에 내가 절친이랑, 미나상과 같이 살고 있다는 행복을 잊고 지내기도 해요.

그러다 집에 와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을 때, 맛난 케이크를 포장해갈 때, 예능 보면서 야식 먹을 때, 상담해올 때, 아이디어를 구할 때, 자기 전 누워 영화 볼 때, 두유와 셋이서 산책할 때 등등. 문득문득 행복해집니다.

오스카 수상 기념 봉준호의 밤
퇴근길과 밤 산책길의 콜라보
야식과 두유 아련눈빛의 콜라보

놀랍게도 우리는 2년 동안, 아니 11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물론 때때로 샐쭉해진 적은 있겠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대차게 싸운 일은 없습니다. 아마도 배려심 많은 미나상 덕분이겠죠.

뜨개장인 미나상의 선물

놀이터에서의 짠내나던 도시락이, 또 여러 식사들이 모여 두유와 함께하는 소풍 도시락으로,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흘러왔습니다.

일명 ‘만찬’의 날
두유와의 첫 소풍

어디선가 인간관계는 버스 같다고 하더라구요.

각자의 정류장에서 올라타 만난 우리가 앞으로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을지, 어떤 동행자를 만날지, 또 어떤 길로 향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겠죠.

11년 전에도 바로 옆자리에서 면접 보던 친구랑 지금 이렇게 강아지까지 키우며 살고 있을 줄 어찌 알았겠어요. 그저 오늘과 내일을 감사하며 기꺼이 동승할 뿐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우리도 앞으로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모를 일이랍니다. 이렇게 잠시 들른 정류장에서 만났지만 말이죠.


아, 이제 1711번 버스가 왔어요. 저는 이만 미나상과 두유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볼게요.

건강히, 곧 또 만나길 바라요!

강아지 마라톤(댕댕런) 5km 완주 기념샷


/ from 에세이드라이브 글감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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