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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Jan 24. 2023

말을 기억하는것과 음악을 기억하는 것

인생의 멘토가 한 말이 음악처럼 느껴졌다면.

모짜르트는 음악을 잘 기억했다지? 어릴적 16성부의 합창을 듣고선 집에 와서 그대로 필사해냈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학생 시절, 재능이 부족한 나에게는 청음이라는 과목은 정말 어려웠지. 4성부의 음악을 그대로 쓰라고 하면 멜로디도 구분이 안되는데 그걸 척척 다 해내고 휙 나가버리는 학우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런데 우리 모두는 음악을 잘 기억해. 기술적으로 음을 기억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 스무살 때 길거리에서 스쳤던 노래들이 들리면 그게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음악과 함께 길거리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처럼. 어떤 때는 음악과 함께 냄새도 기억이나. 같이 들었던 사람의 향기같은 거 말야.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음악과 함께 추억이 떠오르는 것이지. 때로는 그 냄새가 불쾌하고 기분 나쁜 것이었어도 기억이나지.


그런데 그런 일이 말에서도 일어나는 것 같아. 이를테면, 평생에 기억이 남는 스승님의 말씀이라던지 존경하는 목사님이나 스님의 말씀 같은 것 말야.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은 예배 중에 '사람은 40이 될 때까지는 살 준비를 하다가 40이 넘으면 죽을 준비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때 그 순간의 조명도 기억이 나는 것 같아. 죽을 준비를 해야하는, 아니 마땅히 해야 하는, 이 시절이 되고 보니 그 말이 꼭 어떤 음악의 한 부분 처럼 느껴져.


어떤 할 일없는 과학자는 베토벤이 내뱉은 숨을 우리가 다시 마실 수 있는 확률을 계산했다지? 우리는 이미 베토벤의 숨을 다 경험했는데 말이야. 아 물론 그 과학자의 창의적인 호기심을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야. 그런데 혹시 내가 내 뱉은 말을 음악의 한 구절처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그 말을 퀴퀴하고 역겨운 냄새와 함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졌다'던 어느 노래 가사가 얼마나 재미있고 곱씹게 되던지. 흔들리는 꽃들이라면 얼마나 많은 향기와 냄새가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너의 냄새가 느껴졌다면 그게 얼마나 강렬했다는 거지? 그게 같은 샴푸를 쓴 다른 사람의 냄새라해도 그것은 얼마든지 지나간 기억을 생생하게 살릴 수 있는거잖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셀 수 없이 많은 분자들의 존재 중에서도, 게다가 갇혀있는 공기가 아닌 흐르는 공기 중에서도 내가 뱉은 미세한 분자 한 두개가 흐르고 흘러서 누군가의 기억에서 나의 말을 되살리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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