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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Jan 24. 2023

해피 크리스마스

또는 글루미 원

지난 크리스마스에 쓰다가 지운 글이에요. 오늘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다 보니 글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마무리해봅니다.




평생을 살면서 성탄절에 교회를 안 간 날이 있었을까.


오늘이다. 오늘은 내생에 늘어지게 자다 일어난 최초의 성탄절이다. 장로로 은퇴하신 아버지가 봤다면 당장 경을 쳤겠지만 오늘은 갈 교회가 없다. 성탄절 새벽에는 성가대가 각 교인들의 집을 돌면서 그들의 성탄 새벽을 깨우는 '새벽송'이라는 전통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파트 생활이 주는 여러 복잡함 때문에 가능한 일이 전혀 아니겠지만. 아무튼 여러모로 낭만은 사라져 버린 거 아닐지.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특별히는 공연계를 초토화시켰다. 공연계뿐인가.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한 모든 것을 파괴했다. 전쟁 때도 멈추지 않았다는 예배조차도 멈추게 했다. 물론 나는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 시절을 경험한 아버지로부터 그 시절의 어려움을 기도로 예배로 극복했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우리 부모님의 덕담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로 항상 끝이 난다. 아무튼 전쟁도 아닌 이 시절에 사람들은 모이는 것을 그만두고 온라인 예배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각자 모였다.


성가대의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었던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지휘할 성가대가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교회는 성가대를 없앴고 나도 지휘할 일이 없어지고만 것이다.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과정 덕분에 나는 교회에 나가기 어렵게 되었다. 내 존재가 누구에겐 가는 불편한 일일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의 오랜 경험을 통해 이런 때는 사라져 주는 것이 덕이라고 체화해 왔다.  


덕분에 이 성스러운 성탄절에 갈 교회가 없어지고만 것이다. 지금까지 지휘자로 열개의 교회에서 헌신해 왔고 그 교회들을 모두 사랑해 왔지만 떠난 교회는 다시는 가지 않는다는 철칙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로 인해 생기는 작은 분란도 어떠한 작은 오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이제는 평신도로 섬길 교회를 만나길 기도한다. 한평생 하나의 교회만 섬기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그것도 복이었구나 생각한다. 사라지는 것이 매너고 다시 나타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는 상황이 아닌, 서로 대화하고 교감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에 놓이길 바란다.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성탄절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임재를 함께 축하하고 경배할 좋은 교회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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