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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Dec 31. 2022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때

버리지 못한 이름, LP


가방처럼 생긴 포터블LP 플레이어를 어느 마트에서 보고선 한달이 넘게 들락거리다 결국 사버렸다.

민트색 외관도 마음에 들고 깔끔한 디자인이 기능까지 기대하게 했던 걸까.

소리가 기대만 못하다.

그럼그렇지.

실망한 마음은 민트색 예쁜 가방을 소가 쳐다보는 닭으로 만들어 버린다.

뉴욕에 일이 있어 갔을 때 길거리에서 파는 LP판에 꽃혀 돌아갈 가방의 무게도 잊어버린채 무작정 이것도 저것도 샀더랬다. 그도 그럴것이 명반이랄 것들이 길거리 노점상에 널려 있는데 그게 노다지가 아니면 뭐가 노다지란 말이냐며 속으로 만세를 불렀던 것이다.


LP판은 아날로그의 집합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겁다. 많이 무겁다. 같은 양의 음악을 usb에 넣자 치면 무게는 제로에 수렴한다. 돌아오는 길 내내 무거운 가방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하나씩 다 들어볼 생각에 그 수고로움을 다 견뎌냈다.


하지만 사람은 간사하다. 아니, 나는 그렇다. 집에 돌아와 일에 치이다 보니 저만치 밀어놓은 그것들은 결국 창고 신세가 되었고 간만에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자치니 만족스러운 소리가 아니다. 맨하튼 길거리에서 나는 꿈을 꾸었지만 현실의 나는 그닥 무겁지도 않은 LP판 한 장도 턴테이블에 올려 놓을 마음도 가지지 못한다. 게다가 명반의 음악은 듣지도 못한채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치워버린다.


사람을 대하는 나도 그러지 않는지 생각해본다.

명품일 그 사람으로 꿈을 꾸다가 막상 현실에서는 여기서 흠 저기서 흠을 억지로 발견하고는 이리 저리 치워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무겁고 불편한 아날로그 대신 가볍고 편한 디지털의 마음이 사람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사를 하면서 무겁고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들을 버린다. 그 많던 CD들을 다 치웠다. 환경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장 불편한 LP를 들고는 고민하다 가져가기로 한다. 마지막 아날로그의 마음을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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