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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Dec 14. 2022

자전거 탄 풍경

배터리야 고마워

전기자전거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아니 자전거는 원래 재미있었다. 하지만 자전거가 가장 싫은 이유는 오르막길에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즐겁고 여유롭던 자전거의 시간은 오르막을 만나면서 달라진다. 오르막이 좀 길다 싶으면 자전거 따위 그저 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전기 자전거는 오르막이 즐겁다. 이제는 '저따위 언덕'이라는 표현이 저절로 나오는데 아마도 든든한 배터리만 있다면 오르막이 계속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에는 섬에 자전거를 타러 다녔다. 혼자서. 긴 산책과 같은 마음이었다. 길이 좋지 않을 때도 좋았다. 특별히는 배터리가 있어서 그랬다.


그런데 이 배터리라는 녀석이 알수록 개구쟁이다. 3.7v 짜리 원통형 충전지 열개를 묶어서 그걸 두 묶음 혹은 세 묶음으로 연결해 놓으면 한 50km 정도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의 비실한 허벅지를 도울 녀석들이 바로 이 조그만 놈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총 서른 개의 충전지 중에 한놈이라도 역할을 못하면 전체가 힘을 잃는다. 아, 이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유선생과 네선생의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나의 허벅지를 도와 열심히 일하던 녀석들이 언젠가부터는 태업을 하더니 이제는 파업에 돌입이다. 어르고 달래서 충전해도 막상 일을 시키면 금방 삐치기 시작하는데 그게 마침 언덕이든지 오르막이라면 비실한 허벅지가 뇌에 경고를 날린다. 힘들어 죽겠다고.


배터리를 공부하다가 알아낸 사실이 바로 서른 개 중에 하나를 찾는 것이었다. 배터리만큼의 돈이 들긴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는 배터리 걱정 없게 실전에 들어가 본다. 옆 나라 상점도 돌아다녀보고 요즘 시대의 참 선생일지도 모르는 유선생 네선생의 신세도 져본다. 다른 배터리 팩도 주문했지만 때마침 겹친 화물연대의 파업이 중국에서 주문한 것이 아프리카쯤에서 발송된 물건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도록 만들어버렸다. 호기심이 뭔지 생전 생각도 안 해본 니켈 플레이트에 스팟용접기에 전지용 켑톤테이프까지 책상 위에 모인다, 결국.


시작은 어디였을까. 호기심에 미친 '나'라는 놈을 탓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다가 오늘 아침의 길거리가 스치면서 생각난다. 아직까지 올겨울의 가장 추운 날인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짜증이 좀 나긴 하지만 햇살이며 공기며 그리고 엉덩이 밑 든든한 모터와 배터리는 직선으로 육백 미터 가량의 오르막을 즐겁게 했다. 동시에, 길을 건너는 초등학생 무리가 눈에 보였다. 아이들이 길을 건너면서 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좌우를 살피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길을 건넌 후 슈퍼마켓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그 아이들을 지나친다. 그런데 그 슈퍼마켓의 입구를 지나치자마자 내 등 뒤로는 외침과 같은 짧은 질문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함성이 있었다.


"포켓몬 빵 있어요?"

"우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이 길을 건너는 모습이 일상이라면 등 뒤로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의 함성은 나도 저렇게 열광하는 게 있었지라는 깨달음을 준다. 그런데 그게 자전거 위에서 인 거다.


생각해보니 일상의 아름다움은 내가 힘들 때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서른 개 작은놈들의 도움을 받으니 어쩌면 그냥 지나치고 몰랐을 아이들의 함성이 귀에 들리는가 보다. 그래서 나는 그놈들의 태업과 파업에 그렇게 깊게 파고들었나 보다.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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