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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Nov 07. 2022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1

말이 통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말이 통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인기가 많았다. 시퍼렇던 열일곱 살에 인기 없는 소녀가 어디에 있었겠냐만, 자기를 위해서 스튜디오를 빌려(무려 그 시절 스튜디오라니!) 자기만을 위한 노래를 작곡해서 녹음해 바친 얼빠진 놈을 한 번 훑어보지도 않고 차 버렸다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그의 같잖은 자존심에는 '저런 아이와 나는 말을 나눌 일도 없겠다' 싶었다. 함께 일 년 여 시간 동안 수 십 차례를 만나 연습하고 놀았으나 역시 시퍼렇던 그의 17세 시절에 그녀는 없었다. 그 도도하고 콧대 높은 얼굴은 다시 볼일 없는 지나가는 다른 동네 처녀와 같은 것이었다.


말이 통 할리 없었다. 같은 관심사가 있었으랴. 우연이었을지 모르지만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그녀는 꿈을 접고 교사가 되기로 하였고 발명가를 꿈꾸던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대에 서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공통점을 빼고는 다시 만날 일도 말을 섞는 일도 없었을 만큼 관심도 안부에 대한 궁금함도 없었다. 그 사이 각각은 대학에 진학했고 그도 짧은 군생활(그 시절 있었던 마지막 방위, 그것도 무려 동사무소 방위였다)을 하고 있었다. 군생활의 고단함에도 그의 오지랖은 지역의 고아들에게 합창을 가르치겠다고 발 벗는 정도로 여름철 찹쌀떡처럼 퍼져있었는데 넓은 오지랖에 비해 도움을 요청할 주변인은 좁쌀 만했으니 여기저기 피아노로 도와줄 사람을 찾았더랬다. 지금이야 인터넷 게시판 어디에 글을 올리거나 하다못해 알바라도 구한다고 앱에라도 올리면 삽시간에 도움받을 사람을 찾았겠지만 1990년을 이제 몇 년 지난 그 시절에는 적혀있는 전화번호만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뜨거운 여름 몇몇 지인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아이들에게 합창의 즐거움을 주기에는 너무 열악했던 탓에 밀가루 반죽처럼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그의 오지랖 탓을 안 할 수 없었다. 도움을 받을 사람들의 목록 맨 아래 그녀가 있었고 말은 안 통해도 사람이 나빠 보이지 않았던 그녀에게 전화를 넣기로 맘 먹지만 무슨 면박이 있을까 고민했더랬다. 그러나 당연히 차갑게 거절할 줄 알았던 그녀의 대답은 너무도 쿨 한 '예스'였던 것이다. 군복을 입고 토요일 그 더운 날 지금은 값어치가 전자레인지 안의 팝콘처럼 튀어버린 아파트들로 둘러 쌓인 그 전철역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철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 시절 어디는 안 그랬을까만, 그 주변은 황량했다. 개발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예정뿐이었고 그런 개발의 계획이란 일 년 육 개월짜리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는 그에게는 그 해에 있었던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죽음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고아원은 보육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보육원의 총무는 손가락이 몇 개 없는 완고한 인상의 중년 아저씨였는데 두툼한 얼굴과 어두운 낯빛은 쉽게 다가갈 종류의 사람은 아니라고 크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기대하게 만들지만 마세요. 그 아이들은 상처받은 아이들입니다.”


고아원이라지만 사실은 고아 아닌 고아들이 태반이었고 총무의 말에 의하면 부모의 손을 잡고 와서는 얼마간 맡아달라고 얼마 후에 꼭 찾으러 온다는 말을 모두가 똑같이 남기고서는 다시 나타나는 사람들이 사실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도 혹독하게 느껴졌던 바로 그 IMF시절, 그렇게 망해버린 사람들은 아이들을 두고 도망쳤던 것이다. 그러니 주말만 되면 아이들이 창가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언제 올지 모르는 자기를 버리고 간 그 사람들을 목을 빼고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총무의 말은 ‘너도 꽁무니 빼고 무책임하게 도망갈 거면 하지 말라’였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위로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더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해서  조력자 하나 없는 그는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철역에서 내려오는 그녀는 청바지에 면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파릇한 스물한 살 처녀는 지금은 유행으로 가지고 다닌다지만 그때는 할머니들이나 가지고 다닐 만한 양산을 쓰고 있었다. 청바지에 면티셔츠 그리고 양산. 그의 입이 근질거렸지만, 정말 매번 누구를 만나든지 실없는 웃음이 나오게 하는 말장난이 하고 싶었지만, 이곳까지 왕림하신 그녀를 욕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을 한다고 칭찬을 받거나 급여를 받거나 상을 받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시절 그는 자기의 돈을 써서라도 고아원 아이들이 노래하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아무런 조건없이 돕겠다는 그녀에게 떠오른 망측한 농담이라니! 개찰구를 나와 사십 개는 족히 될 만한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 양산과는 상관없이 천사의 모습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그녀를 예쁘다고 했을 때도 그는 콧대 높은 그녀의 말투나 눈빛이 싫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터였다. 아마도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본 날이 바로 그날이었을 것이다. 피아노로 합창을 도와줄 반주자로 모시는 바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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