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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Nov 08. 2022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3

그녀의 이야기 혹은 엇갈림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항상 질투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그녀에게는 오빠가 하나 있었다. 문학소녀였던 어머니와 비록 완고하긴 하였으나 존경받는 교사 아버지 사이에서 사랑만 받아도 모자랐을 그녀는 ‘오빠 먼저’가 항상 익숙했다. 학교에 가면 누구의 딸이라며 관심받고, 어디 뒤떨어지는 성적은 아니었던 탓에 칭찬받으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촉망받는, 말 그대로 엄마 친구 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관심은 주목이며 주목이 되면 꼬투리를 잡힌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오빠는 오히려 부모님들의 과한 사랑과 돌봄을 독차지하였고 이것은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혔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일제 항거에 앞서다 일제의 계략으로 순국하신 독립운동가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죽음이 헛되었다 한탄하였는데 만주에서 독립군을 준비시키다 지역의 마적 습격을 받아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이다. 제대로 맞서 보지 못했기에 한탄하였으나 사실 습격한 이들은 마적으로 위장한 일본군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던 사람들의 자손들이 그랬듯 그녀의 어머니는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재능을 살릴 기회를 찾지 못하였고 가정 주부로써 한 가정에 헌신하였다. 그러한 헌신에 대한 신의 축복이었을까. 그 재능은 딸에게 이어졌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뭐가 다른지 얼마나 다른지, 혹은 알고 봤더니 별거 아니더라 라는 후일담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 사람이라는 종의 특징이 아니었던가. 그녀 역시도 가깝게는 친구, 근처에는 선생님, 혹 멀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어느 날엔가는 스토킹에 가깝게 연락하고 기다리는 어쩌다 알게 된 오빠 한 명이 그녀를 위해 만들었다는 카세트테이프-아주 잘 포장되어 있었던-를 건네고는 도망치듯 꽁무니를 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 작자의 의도와 마음을 받아줄 상태가 아니었다. 뭔지 모를 압박과 차별, 은근한 기대와 정신적 학대는 한가한 사랑놀이에 빠질 이유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그녀에게도 그 녀석은 첫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유머가 있었고 그녀와는 다르게 주변의 보이지 않는 압력 따위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생각과 의지가 행동에 배어 있는 녀석이었다. 그녀의 중창단 기수와 옆 남학교 중창단 기수가 처음 만나 인사하는 자리에서도 그 녀석은 단연 모두의 눈을 사로잡았다. 작지 않은 키에 커다란 눈, 약간은 거뭇한 피부이지만 그 피부에는 반짝임이 있었다.


“나는 상이야. 반갑다!”


콧방울에 맺히는 좋은 목소리다. 이런 목소리로 싱긋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녀는 그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미소로 맞아주었다. 그날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반대의 관심이 생긴 것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음에 만나면 먼저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땐 두 번째의 만남까지가 영원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거다.



무언의 압박과 따돌림 그리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았기에 반작용으로 나타난 반항심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도 하였지만 성실하신 어머니는 항상 학교에 갈 준비가 되도록 부드럽게 그녀를 달래고 지지해 주셨던 거다. 완고하신 아버지는 별말씀이 없으시다. 대화인지 요점 정리인지 모를 말의 주고받음이 끝나면 그다음까지는 보통 이틀이 걸렸더랬다.



두 번째 만남이다. 남자도 꽃으로 보일 수 있다고 그 녀석을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은 안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지 더욱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에 준비했던 인사를 건넬 참이었다. 순간 그 녀석은 그녀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었음에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그 녀석은 그녀 가까이 있던 조용하고 차분함이 눈에 또렷하게 보이는 옆 친구에게 활짝 웃어주고 있다. 뭔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처럼 굳어지고 차가워진다. 어제 있었던 교실에서의 부당함이 떠오르고 그녀에게 못되게 굴었던 한 아이의 말이 떠오른다. 참을 수 없던 그녀는 그만 자기를 따라다니는 부잣집 오빠에 대한 이야기, 녹음테이프며, 뒤도 안 돌아보고 차 버렸다는 이야기를 앞에 앉아있는 한 남자아이에게 책 읽듯이 말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그냥 착하게만 생긴 그는 여기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안절부절한 모습이었지만 지금 그녀에겐 허연 얼굴에 아직은 소년 같은 조그만 그에게 아무렴 어떤가의 태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도록 그 둘은 대화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밑도 끝도 없이 도와달라니. 고등학교 때 중창단 활동을 같이 했다고 해도 합동 공연 두어 번에 같은 파트도 아니었고 비록 쾌활하고 밝은 모습이었으나 사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그 녀석’에만 있었기 때문에 별 관심 두지 않았던 그였다. 그 무렵 그녀는 여러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하던 학교에는 떨어졌고 재수를 하면서 아버지의 강한 권고로 선생으로 살아보겠다는 결심인지 결정인지를 해버렸었다. 당시 졸업만 하면 중등교원으로 임용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명문 사범대학에 다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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