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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Nov 08. 2022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4

그 녀석 혹은 인연

그녀는 그 학교에서도 지독한 시기와 질투에 시달렸다. 그런 그녀는 이런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한없이 밉고 싫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스트레스로 곱디 고운 얼굴에 여드름 꽃이 피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잘되었다 싶었던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에 보기 흉하게 올라와버린 여드름은 눈에 잘 보이는 장미의 가시처럼 어느 누구도 그녀를 쉽게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막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던 그 해의 여름방학은 시작부터 무료했다. 집에서 심심하던 터였다. 그것이 누구라도, 어떠한 제안이라도, 어떠한 유혹이라도 주어졌다면 아마도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받아 삼킬 참이었다. 메피스토텔레스가 앞에 있었다면 기꺼이 파우스트가 되려고 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받을까 말까.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날은 파우스트가 되기로 했던 날이고 그 전화벨은 그 순간 그녀에게는 메피스토텔레스의 속삭임 같은 것이었다.


“그래, 해줄게. 괜찮아, 나도 돕지 뭐.”


메피스토텔레스...전화를 끊고 생각을 멈추니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쿨하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시급 같은 것은 못 준다고 하는데도, 도와줄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고아원 아이들에게 합창을 가르치겠다니 흥미도 생겼다. 돈은 주면 좋지만 군 복무하는 그에게 무슨 돈이 있을까. 뭘 자꾸 사준다는데 오히려 그녀가 사줬으면 사줬지 받아내지는 못할 것 같다. 뭐 그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잘 살고 있나 보네.’라고 생각한다. 그를 다시 기억해 본다. 그때 떠오르는 한 사람. 그는 그 녀석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것이 떠 오른다. 혹시 그 녀석을 보게 될 수 있을까.



그 녀석은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더랬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녀석이 다섯살 무렵 그 녀석의 어머니는 그 녀석을 혼자 두고 교회에 가셨다. 잠에서 깬 그 녀석은 엄마를 찾아 교회를 갔고, 너무도 멋진 무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멋진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사회를 보고 있었는데 그 녀석의 머리에는 잠결에 봤던 전국 노래자랑이 떠 오른 모양이다.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 가서는 큰 소리로 슈퍼스타 남진의 힛트곡 한 구절을 뽑아냈다고 한다. 멋지게 마이크를 들고 있던 사람은 허허 웃으며 오히려 '고 녀석 노래 잘하네'라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 녀석의 엄마는 '목사님 앞에서 무슨 망신이냐'고 숨으셨지만 실은 속으로도 웃으셨을 것이다. 아, 물론 그 날의 그 녀석 엉덩이는 남아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 때부터 그는 무대에만 오르면 펄펄 날아다니곤 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는 그 녀석의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탕이 되는 화술은 어디에도 그를 아웃사이드에 쳐 박아 놓는 일은 없게 했다. 연극과 영화에 관심 있는 젊은 청춘들은 생각도 행동도 외모도 매력이 넘쳤다. 그렇게 모아 놓은 중에도 그는 단연 빛이 났다. 그중 여러 매력 있는 여자들과 짧기도 혹은 길기도 한 연애를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엔 두 번째 만남에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에 세 번째부터는 말도 제대로 걸지 못했던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이 있었다. 주변엔 사람들이 항상 가득했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엔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에겐 그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발명반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 그가 있었다. 키가 작고 얼굴은 허연 그와는 서로 성격이 달랐지만 자석처럼 이끌렸다. 그 녀석과 그는 발명반에서는 회장과 부회장으로 활약했고 나중에 중창단에서는 같은 파트에서 노래를 했다. 붙어다니다 보니 어쩔 땐 싸우기도 했다. 속이 좁쌀만 한 그와 싸우고 나서는 몇 주 동안 말도 안 했었다. 그 녀석은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그득했으나 그가 없는 시간은 너무 답답했다. 하는 수 없이 질 마음으로 '너 왜 그러냐' 한마디를 던졌고 아무렇지 않게 그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졌다. 순진한 그에게 담배를 가르쳐준 것도 그 녀석이고 졸업하면서 '소주 한잔 정도는 해야지'하고선 술을 먹인 것도 그 녀석이었다. 둘은 이후로도 나이들면서 술을 마셨다.


그 녀석은 의무경찰로 복무하고 있다. 비교적 움직임에 여유가 있었고 복무 중 그의 전화에 깜짝 놀랐던 것은 당연하다. 그녀를 만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는 괜한 기대라고 생각하고 곧 마음에서 그녀를 지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녀석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그가 어려움을 겪는다는데 어찌하랴. 그녀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 비록 나라에 묶인 몸이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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